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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Aug 25. 2020

어쩐지 미안한것 같아 내가 풀이 죽어

다른 사람의 기분 따위 

지구 반대편 얼굴도 모를 이의 앞마당에 자라는 풀의 소리처럼 

들리지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람들 간의 미묘한 틀어짐, 

제 때 표현하지 못해 풀이 죽은 명랑함 같은 

어긋나는 분위기와 냄새를 시시각각 감지하는 '눈치'라는 감각을 꺼두고 싶을 때가 있다.


오로지 나의 높고 낮은 기분으로 

온몸을 울림통 삼아 웃고 울고 싶다.


사근한 말로 다가갈 용기도, 방법도 모르는 사람에게 

타인의 그늘은 꼭꼭 숨겨둔 내 것의 그을음과 닮아 있어 더 애달프다.


황소만 한 몸집과 거친 털을 뒤 얹고 있지만 

털 사이사이로 얕은 눈물방울에도 같이 수분을 토해낼 비늘을 감추고 있는 괴물이 살았다.


너는 파충류냐, 동물이냐, 확실한 신분을 밝혀라.


외면하지 못하고, 힘껏 안아줄 수 없는 나약한 이성이 물음을 던진다.


비늘을 수십 번 헐떡이고 나야 겨우 털 끝 일부가 젖을 수 있는 괴물은 말한다.


그저 자기가 울고 싶을 때 털이 젖었으면 좋겠다고.




그림 : aronwisenfeld

그림 출처 : https://aronwiesenfeld.bigcart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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