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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Oct 05. 2020

엄마와 나의 바퀴달린 집

세번째 차박캠핑

1. 첫째날 장대 캠핑장




길도고 아쉬운 추석 연휴 6일중, 3일은 집에서 3일은 바깥에서 보내기로 한다.

대 코로나 시대로 웬만큼 집을 좋아하는 집순,집돌이들도 슬슬 기가 질려가고, 어딘가로 떠난다는 마음가짐이 매번 개운하지 못하고 죄를 짓는 느낌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전보다 더없이 자연에서 받는 싱그러움과 편안함에 기대고 싶어진다.


장항 송림 산림욕장에서 길을 걷고, 장대 해수욕장 캠핑장에서 1박을 하는 것이 목표였다.

고상히 고부라진 소나무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촘촘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소나무 아래 푸른 융단은 만개했을 때 보라빛을 띄는 맥문동이 지나간 자리였다.

엄마 친구분이 맥문동이 만개했을 때의 이 산림욕장 사진을 찍어서 보내준 적이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보라빛의 향연, 은은한 보라등불이 밝혀진 맥문동의 비밀서식지 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맥문동이 필 철이 지났기 때문에 손톱만큼의 보라도 찾을 수가 없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낮고 풍성히 내려 앉은 구름, 멀리 도망가버린 서해 바다의 빈 여백이 무한히 펼쳐질 수묵화를 담을 거대한 그릇처럼 느껴졌다.


바닷가를 즐기는 사람들을 구경하는건 깨알같은 재미다.

드넓은 모래사장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조개껍데기를 발견한것 처럼, 반가운 마음이 든다.

멀리 보이는 갯벌에 점처럼 박힌 사람들은 무얼그리 찾고 있을까.

단단히 적혀진 모래사장을 뛰노는 아이들은 뭐가 그리 즐거울까.

여러사람들과 함께 무리를 지어온 사람들은 서로 어떤 관계일까.

등등의 궁금하지 않은 질문들이 한번씩 스쳤다 다시 떠나간다.

산림욕장 길을 걸으면서, 멀리 섹소폰 연주 소리가 들렸다.

사랑의 미로였다.

낮게 따라 부르면서, 내가 아닌 가장 편한 타인인 엄마와 함께 손을 잡고 걸었다.


소나무 산책길이 끝나면, 바다를 옆에 두고 걸을 수 있는 데크길을 걸을 수 있었다.


산림욕장보다는 사람이 많이 지나지 않은, 한산한 길이었지만 고요해서 편안했다.

다수가 주는 안정감이 있다.

그 쪽이 빽빽한 군락의 소나무 그늘이라면, 소수가 되어야 들여다 볼 수 있는 각성의 시간은 갯벌의 빛을 닮았을 것이다.

장대 오토 캠핑장을 9월19일쯤 미리 예약을 했었는데, 예약시스템 오류와 나의 재확인 불차가 합해져 결국은 예약한 캠핑장을 이용할 수가 없었다.

그 곳의 사장님이 건너, 그리고 다른분을 한번 더 건너, 겨우 차박을 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았고

머무는 동안 집이 되어질 차와, 살림살이를 정리했다.

이번이 세번째 차박인데 갈수록 필요한 물건들이 생기고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며, 물건들은 다 샀다 라고 소비의 끝을 알렸지만 사람일은 모르는 거다.

러그와, 불멍 화로대,타프를 새로 장만했다.

살치살을 구워먹고,



술이 약한 엄마와 난 음료수와 맥주 그 중간쯤에 있는 과실맥주를 마신다.


밖에서 간단히라도 지어먹는 음식은 대게 맛있는 편이지만 배고플때 먹는 고기는 특별하게 맛있다고 할 수 있다.


엄마와 내가 닮은 점 중 또 하나는 작은 변화에도 전보다 나아진 면이 있다면 크게 기뻐한다.


그늘막이자 비를 막아줄 타프를 설치하고 우리차가 몇배는 더 아늑해졌다며 기뻐 마지 않고 타프와 차가 같이 담긴 사진을 똑같이 찍어둔다.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서해지만,해가 닿는 시간을 만나기 위해선 하늘의 힘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오늘은 날씨가 그리 맑지 않아서, 노을이 깔린 일몰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서해, 해변을 어떻게 즐기는지 여가를 보내는지 멀찍히 관찰하며 내 나름대로의 바다를 즐겼다.



밤을 위해 잠자리를 조금 더 안락하게 꾸미고,

밤의 해변을 산책했다.



그리고, 한번쯤 꼭 해보고 싶었던 불을 피워, 몸을 덥히고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뜨겁게 작열하며 타들어가는 소리가 일정하게 들리고 일렁이는 불꽃을 보니 아무 잡생각도, 부러 무얼 생각해보려 해도 그저 멍해졌다.

그래서 불멍이라고 하는가 보다.

그리고, 엄마와 나의 차박에서 비는 뗄수 없다는 듯, 조금씩 비가 내리는 밤을 맞고 있다.


캠핑의 목적은 참 단순하다고 생각했는데,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롭고 불편하다.

귀찮음과 약간의 고된 캠핑 준비 작업을 거치면, 가장 가까우면서도 멀리 일상의 찌든때를 털어내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게 세번의 차박으로 얻게 된 깨달음이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고, 한량 처럼 노닐다 오고 싶어서 캠핑을 가지만, 정말 바지런히 준비하고 정리해야 할 것도 많은 모순들이 짜증나도록 즐거운 캠핑인 것이다.





2. 둘째날 신성리 갈대밭과 난지섬 해수욕장 임시주차장



장대 해수욕장 인근의 솔향이 가득한 캠핑장에서 쾌적한 밤을 보냈다.

적당히 보송했고, 침낭속에 쏙 기어들어가 몸을 덥히며 잤다.

새벽부터 비가 한두방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자다 깨다, 차 천장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으로 빠져들었고 그렇게 해가 밝은 뒤에 눈을 떠보니 7시 반쯤 침낭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집이 아닌 곳에서 잘때면 어쩐지 피곤하고 몸이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곤 했는데 어젠 바깥잠 치곤 꽤 잘 잔 기분이 들었다.


아침은 간편 조리식 떡볶이를 코펠에 끓여 먹였다.

엄마가 체다 치즈를 석장이나 넣어줘서, 꾸덕하면서도 고소한 떡볶이를 배부르게 먹었다.

엄마와 나의 여행은 꽤 많은 여행지를 이동하고 이동하며 많은 구경을 해보자는 쪽이었는데, 오랜만에 찾은 서해바다는 발에 바닷물 한번 적시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이 조개를 잔뜩 캐오는 모습을 보니, 우리도 갯벌에는 들어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던, 오늘로서 2박을 맞게되는 밤은 다른곳으로 갈 생각이라, 밤새 빗물을 머금은 타프를 털어내고, 침낭을접고, 차 2열이 접힌 상태에서 대충 짐을 올려 정리한 뒤, 갯벌로 들어가보았다.

전날 밤엔 저 멀리 달 끝까지 밀려나 보였던 바닷물이 부쩍 다가온 밀물 때에 갯벌로 들어가게 되었다.

얕고 잔잔한 파도가 스멀 스멀 영토를 넓혀 오는것만 같았다.

이제 나의 자리를 찾으러 왔노라고 말하는듯 했다.

갯벌의 모래는 폭신했고, 발가락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되직한 질감이 낯설면서도 익숙한 옛 감각을 불러주는것 같았다.

아침 일찍 부지런히 갯벌로 나갔던 사람들은 두손 가득 조개를 캐왔다.

송송뚫린 구멍이 조개의 숨구멍인지, 갯벌 갯지렁이가 지나간 자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고, 너무 늦게 갯벌로 나온 탓에 엄마와 내가 열심히 호미질을 해도 헛손질이었다.

겨우 조개 두개를 캐고 나서야 더는 힘들게 허리를 굽히지 말자는 결론을 얻었다.

드넓은 갯벌에 물 반 고기반이 아닌, 사람 반 갈매기 반의 정겨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온몸에 검은 펄을 묻혀가며 깔깔거리는 아이들과 제 주인을 보고 힘차게 달려오는 강아지를 보면서 나도 그들의 그림처럼 닮아 있을 적이 생각나, 흐뭇해졌다.

장대 해수욕장을 떠나, 신성리 갈대밭으로 이동했다.

연분홍 코스모스의 띠를 두른 황금 들녘에서 고전적인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숲 해설가 과정을 이수한 엄마에게 갈대와 억새의 차이의 설명을 자주 들어도 매번 헷갈렸었다.

갈대, 억새, 핑크뮬리가 가득한 신성리 갈대밭 길을 걸으며 이제는 그 세가지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조금은 자부할 수 있을것 같다.

금강을 끼고, 갈대와 억새가 사람들 손을 간지럽힐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고 있었다.

쾌적하게 걸을 수 있는 데크길과 거칠게 벌레들이 따라 붙게 할 풀밭 사이사이길을 고루 골라보며 걸을 수 있게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파란 하늘은 아니었지만, 어디든 걸을 만한 정도의 날씨만 되어도, 불평하지 않기로 한다.

어느곳엘 가고, 누구와 함께 가는 여정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지만 꽤 많은 약조들이 쌓이고 모여야 이루어질 수 있는 귀한 시간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현재를 더 애틋하고 소중하게 즐겨보자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금강을 끼고 끝없이 갈대, 억새밭이 이어져 있을 것만 같다.

그만큼 넓고 아득해보였다.


갈대밭을 거닐고 나니 오후2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밤을 보낼, 그날의 정박지를 고르고 짐을 풀기에는 늦어도 3-4시에는 그 자리에 도착해야 짐정리도, 저녁 준비도 수월했다.

부랴부랴 약, 145키로를 달려, 왜목마을로 이동했다.

일몰과, 해돋이를 같이 볼 수 있다는 왜목마을은, 차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쓰레기들로 가득차 있었다.

사람들과 붙어 하루를 묶는다면, 안정감은 든다.

엄마와 나 말고도 가까운 곳에서 함께 밤을 보낼 사람들이 있다는 다른 텐트의 존재감은 꽤 든든하다.

하지만 길을 지나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붙어 있는건 복잡하고 여유가 느껴지지 않아, 피하는 편이다.

삼길포항에도 기웃거려 보다가, 그쪽도 아닌것 같고 다시 왜목마을로 돌아가는 길쪽에 난지섬해수욕장 임시 주차장쪽에서 두 셋 정도의 차박을 하는 자동차가 있는 풀숲으로 자리를 정했다.

풀벌레 소리가 가득하고, 간간히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의 말소리도 들려오지만 가로등도 없는 외진곳이라, 서늘한 무서움이 훅 밀려 들때가 있다.

아, 딜레마를 겪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이 많으면 피하고 싶고, 너무 없다 싶으면 불안해진다.

그 중간쯤의 공간과, 거리를 우선으로 차박지를 고르지만 늘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건,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을 느끼는 고민점과 매우 닮아있다.


혼란하면서도 같이, 비슷하게 살고 있다는 느낌이 주는 안정감을 따라가다 보면, 내 모습이 흐릿해지는것 같고, 홀로 자유를 찾아보겠다며, 고독에 고군분투하면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방법을 잊어버릴것 같은 불안함이 있다.


여러갈래의 길을 머릿속에 재지 않고, 용감해질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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