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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Sep 05. 2020

엄마와 함께 7번 국도 차박캠핑 3화


바다의 밤의 막이 끝나고 일출을 보는것을 시작으로 3일째의 개막을 해변에 앉아 지켜보았다.


덩달아 무덥고도 습했던 여름이 막바지에 다다른것 같았다.


아침 저녁이 제법 선선해진 것을 보면 말이다.


이곳은 너무 현실이라, 떠나지 않으면 생각한 방식을 깨뜨리기 어렵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매일을 마주보는 엄마지만, 같은 곳을 보고 나란히 앉은적은 참 오랜만인것 같았다.




경량 체어를 손에 달랑 달랑 들고, 무릎 담요와 따뜻한 커피를 내려 몇걸음 걷지 않아도 바다앞에 성큼 다가갈 수 있는 이곳이 나에게는 환기된 현실이었다.



햇살이 내려 앉지 않은 바다의 잔물결은 TV 방송이 모두 종료된 무의미한 전파신호처럼 색바란 이질감이 느껴졌다.




태양이 자기 위치를 찾아가면서 물결에 생명의 색이 덧칠해지는 것 같았다.


압도된 경관을 보면, 반복되는 자기 반성이든, 깨달음을 얻은척이든, 뭐라도 꼭꼭 눌러 채워 가야 할 것 같았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가져가고 싶지 않았다.


비워지면 더 좋을거라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려고 했던 고민과 걱정거리들은 별거 아닌것 같은데 싶은것들도 해의 뒤편으로 풍덩 던져버린다.



종종 ' 무슨 생각해 ? ' 라고 물을 때가 있었다.


그 물음 또한 묻지 않기로, 궁금해하지 않기로 다짐하며 멀리 던졌다.



레토르트 육개장에 햇반을 넣어 죽처럼 보글 보글 끓여 아침을 먹고 울진 금강 소나무길을 걸었다.

엄마도, 나도 길 따라 무작정 걷는것을 좋아한다.

전날 안전한 잠자리에 안도하며 포근한 잠을 자는 동안, 태풍이 할퀸 자리를 경건하게 마주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했다.

피해를 입은 자연에게,그리고 사람들에게.



논밭을 둘러 싼 주변, 바다 해변을 끼고 펼쳐진 곳곳이 소나무 길이라, 솔향을 찾아 걸으면 아주 멀리, 오래 걸을 수 있다고 했다.



돌아가야할 곳이 있는 나그네들은 그래서 멀리 가지 못한다.


소나무길을 찾아가는 길목에도 동해를 따라 쭉 이어지는 해파랑길 구간을 부분부분 마주하게 된다.




해파랑길도 언젠가 꼭 완주해보고 싶은 길이다.


구체적인 기약이 없는 약속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을 것 같지만 언젠가 해보고 싶었던 엄마와의 자동차 여행을 했고, 올레길을 완주한 것을 보면


마냥 희망사항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숲에 있을 때 가장 편안하고 너그러워보였다.


그리고 엄마의 꽁무늬를 따라 푸름으로 물드는 내 모습이 좋아지고 있었다.



울진군 후포면에 있는 등기산 스카이 워크로 갔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첫번째날 강원도 양양에서 시작한 7번국도 내리막길이 꽤 아래쪽까지 따라왔음을 알 수 있었다.


멀리서보면 바다 가운데서 육지까지 공중길이 이어진것 처럼 보였다.


몇십년 뒤쯤의 미래로 건너간다면 바다 위 하늘 아래 사이에 이런 건축물이 얼기 설기 얽혀 있을 것 같았다.




스카이 워커에 올라가면 뒤편 등기산 공원으로도 갈 수 있었다.



딱히 고소공포증이 있는것은 아니지만 바다위 20m 높이는 설핏 무서워지기도 했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이번 2박 3일 여행일 동안 대략 700km 넘는 운전을 한 것 같다.


그럼에도 7번국도의 마지막 종착지인 포항까지는 다다르지 못했다.


애초의 시작도 엄마와 내가 태풍을 피해 시작할 수 있는곳에서, 가 닿을 수 있는곳까지 였다.


내가 운전을 하는 동안,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녹음, 푸른빛에 눈을 떼지 못하며, 한시도 잠을 자지 않고 함께 해준 엄마가 있었기 때문에


무사히 집까지 당도할 수 있었던것 같다.





양평 내추럴가든에서 그동안 함께 쓴 여행 경비를 정리했고,



두물머리에서 알차게 3일이 꽉 채워진 여정을 마무리 했다.


집보다 편한 잠은 없었지만 떠나봐야 돌아올 곳의 소중함을 알 듯, 더 자유롭고 터프하게 전국 곳곳을 엄마와 누비며 조금 불편한 자동차 집과 편안한 우리의 집을 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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