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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Oct 06. 2020

오디오북 한꼭지

오늘이 내 인생의 봄날입니다

오늘은 '오늘이 내 인생의 봄날입니다'를 오디오북으로 들으며 걸었다.
뒤늦게 배움의 기회를 얻게 되어, 아니 조금 늦되었지만 이제서야 자신을 위해 글을 익힐 여력이 되신 16명의 할머님들이 써내려간 수필이다.


그 시절 가난한 살림살이에 배움은 사치라며 나중을 기약하고 생활 전선에 투신한 할머님들은 차근차근 한글을 배우고 인생사를 담백하게 들려주고 있었다.

오디오북의 초반부는 글의 당사자인 할머님의 음성으로 직접 쓴 글을 들려주는데, 그 동안 전문성우와 여느 목소리 좋다하는 배우들이 들려주는 세련된 음성과는 다르게 진솔함이 담뿍 묻어나 마음으로 할머니들이 목소리가 곧장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글도 그러했다.
유려한 문체나 수식어가 들어있진 않지만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을만큼 오래전에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가 무릎을 베개로 내어주곤 나근히 들려주는 목소리처럼 정답고 편안했다.

하지만 글자를 모르는 생의 설움이 어찌 목소리의 반가움만큼 무던했을까.

할머님들의 눈먼 생애는 서러움과 매순간 때를 놓친 공부를 안타까워하는 회한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특히 김동순 할머님의 '운동회'라는 글과 읽어주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눈물이 핑 돌았다.

몇십리를 걸어도 좋고, 틀려도 혼이 나도 좋으니 학교에 가고 팠고 배우지 못한 슬픔이 마음에 차곡차곡 쌓였다는 갈라진 고백의 목소리가 애틋했다.

그 한 맺힌 야속한 세월을 글자를 배우고, 문장을 만들어 글을 쓰는 결실로 피워내셨다.

자신의 목소리로 쓰는 글에는 그 사람이 담겨있다.

먼저 보낸 엄마를 그리워 하는 글, 어린시절 고향 친구들과 계곡에서 신명나게 놀던 글, 소꿉친구와 메밀 수제비를 만들어 먹던 글, 남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글 곳곳에서 할머님들의 생의 역사가 담겨 있고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게 할 읽는 이들의 추억을 살포시 끌어당겨 주고 있었다.

할머님들의 글은 수줍듯 투명했다.

더불어 내 주변 사람들의 글과 얼굴들을 떠올려 본다.

사람들의 의견을 취합하여 정보를 알리는 깔끔한 글을 쓰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의 고통이 생생히 그려질 정도로 자기 고백을 적어내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글을 따라가는 상상을 한다.

글이 그 사람의 얼굴에 쓰여지는 상상을 한다.

얼굴을 알고, 일면식이 있는 사람의 글을 훔쳐보며 티내지 않을 감탄을 보내고 글의 옷을 입은 모습을 새로이 새긴다.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을 특별히 애정하며 지지를 보낸다.

16명의 할머님들에게 팬레터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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