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막물고기 Oct 12. 2020

실수 일기

한동안 잠잠하다 했다.


그동안 아예 업무실수가 없었다곤 할 순 없지만 크게 손해를 끼칠만한, 모두가 알아야 할 실수에선 잠시 해방된것 같았다.


그만큼 일이 조금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고, 스스로에게도 '이쯤은 뭐'할 정도의 용인 가능한 가벼운 것들이라 이젠 내 몫은 하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마음이 헤이해졌던걸까?


아니!


입사 이후로 편안하다고, 대충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도 제대로 눈은 뜨고 일한게 맞는지 싶을 초보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손바닥 만한 유아학습 교구 20개를 택배송장으로 출력해야 하는데 400개를 지시했다.


20개가 한세트인 상품이었는데 한번에 나갈 세트 묶음 수량만큼은 되지 않아서 5개씩 낱개로 입력해서 출력해야 했다.


묶음은 하나의 갯수로 보아놓고, 낱개로 찢어놓았을 땐 5개씩을 곱해서 나가야 한다는 터무니 없는 생각의 씨앗은 어디서 생겨났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뒤늦게 부랴부랴 택배를 찾으러 갔지만 이미 집화점쪽으로 나간 뒤였다.


고로 내가 수습해야 할 일은 잘못나간 상품을 회수하고, 다시 출고하는 것. 그리고 두번 다시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게 확실히 이해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 내 불찰로 수고로운 일을 반복해야 할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적어둔다.



내 자신의 실수가 세상에서 제일 이해되지 않고 한심하다 치부하며 좌절한다.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제법 알 법도 한 문제들 앞에서 자잘한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영못마땅해 죽겠다.


이런 등신, 머저리, 저능아 등등의 오만가지 밉살맞은 단어와 함께 머리카락을 쥐어 뜯었다.


어째서 이미 지나간 과오에 사로잡혀 허우적거리는 것 말고, 생산적인 후일책을 계획하지 못하는걸까.


나의 일기는 매일이 반성이고 왜그랬을까의 탄식이다.


괜찮아, 내일은 잘할 수 잇을거야 더 나아질 수 있을거야 라고 무심히, 혹은 열렬히 다짐을 해도 나는 또 실수를 저지르고 말 것이다.


확실하게.


어쩌다 나의 실수를 단정하는쪽에 더 많은 패를 거는 사람이 되어버렸나.


혹시 잘 해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의 패를 따먹히는 사람이 되어버렸나.

작가의 이전글 오디오북 한꼭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