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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Oct 27. 2020

삼류가 되겠지만 그래도 나의 노래

반짝이던 창작가는 어디로 갔는가,

라떼라고 시작하기 싫은데 라떼의 어미가 익숙한 서른 중 후반의 세대에는 우리 나름의 싱어송라이터들이 있었다.

이소라, 도원경, 주영훈, HOT 등등

자신들만의 감성을 담아 가사로 시를 쓰고, 대중이 열광하는 멜로디를 만들어 시대를 풍미했다.


그들은 현재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가?


내 귀에 들리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휴식기로 속단하고 싶지 않지만 어디선가 활동을 지속하고 있어 준다면, 그리하여 시대의 바뀜과 나이에 지지 않는 모습을 간직해주길 바라는 욕심을 의문에 담는다.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물음과 고민에서 시작된 창작자들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나이가 들면 감수성이 둔화되고, 트렌드를 따라가기 어렵고, 업무능력이 전 같지 못하다고 한다.

실로, 이 같은 나이 편견에 하나도 빼놓지 않고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각 직업군마다 전성기로 발휘되는 평균 연령대가 있다고 한다.

그 평균 연령대 안에 들어차 있다고 하여 그럭저럭 다들 잘 따라가고 계신가 묻고 싶다.

난 아닌 것 같아서.


내 직군이라고 울타리를 두를만한 직업적 확신도 없지만 비슷할 법 한 직종의 현역 나이는 확실히 떠나 있음을 매일, 매시간 체감한다.

일처리 속도가 느려졌고, 업무 지시 파악도 두 번 세 번 물어야 파악이 된다.


단순히 결론짓자면 머리가 멍청해졌다.


조금이라도 더딘 멍청이가 되기 위해 했던 노력들은 언급해도 무의미할 듯싶다.

그중 성공했다고 할 만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이므로.


일을 떠나 사생활로 숨을 돌려도 전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둔해졌다.

사소한 일에 감사했고, 남들의 아픔에도 함께 눈물을 글썽였다면 지금은 앞에서 기쁜 척, 슬픈 척 연기는 할 수 있어도 집으로 돌아오면 시큰둥해졌다.


마음에 오래 남아있는 것들이 없었다.


얼룩이 들만한 상처를 쉽게 지울 수 있는 건 다행인 걸까?


희로애락의 사분면 안에서 작디작은 가운데 점하나를 찍고 어느 쪽으로든 파동이 일지 않았다.

심심한 감정들 뿐이었고, 추억으로 돌아보고 싶을 만한 긍정적인 서사도, 부정적인 신파도 없었다.


그런 중에도 부단히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며 발군의 능력을 뽐내는 사람들이 있다.

서두로 시작한 대중가요 쪽에서 찾자면 박진영, 윤종신, 윤상, 김이나 작사가가 있을 것이고 떠나온 직장에서 간간히 들리는 소식에는 진급을 하고 중한 직책을 맡아 동료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나 자신의 흐려지는 영민함, 빠릿빠릿하게 따라가지 못하는 업무 이해도, 뭘 말하고자 했는가 두서없는 작문실력의 퇴화를 넋 놓고 잃어가는 동안, 정교하고 세밀하게 스스로를 갈고닦는 사람들이 있었다.


20대의 자기 표현력, 시대를 읽는 주연의 감성은 참으로 부럽다.


배울 수 있다고, 따라갈 수 있다는 노력으로 그들의 뒤를 쫓아가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젊은 뮤지션의 탄생과 성공을 축하하고 부러워만 한다면 우리 시대의 감성을 노래할 주연들은 엉뚱한 세대에서 헤매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잃어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 탄식하지 않는, 현재의 나를 노래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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