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갈 수 있었잖니
올해의 첫 눈을 보았다.
우리 동네 빨간 벽돌 주택가의 지붕과 자동차들 위로 얇은 백색의 설탕가루가 뿌려져 있었고,
그렇게 얇은 설탕가루는 녹진히 축축한 도로 위에는 닿자마자 녹아 없어져 버렸다.
지면은 눈이 온 사실을 감췄지만 얄궂게도 다른 곳에선 티가 났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 회사 가기 싫다 ' 는 기분의 적립 쿠폰을 오늘도 도장 찍으며 죽어도 걷고 있는 좀비처럼
집에서 기어나와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다.
출근길은 매서운 칼바람과 흩날리는 얕은 눈발에 험난했고,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반죽은 시체에서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사람으로 되살아 났다.
모자를 뒤집어 써도 바람에 자꾸 뒤로 벗겨졌지만 악착같이 다시 끌어다 썼고, 콧물이 적정수위를 넘어 윗입술에 닿아 짭조름한 맛을 느낄세라 부지런히 코를 먹었다.
입으로 먹는 건 싫어도 코로 먹는 건 그다지 죄책감이 들지 않는 게 콧물이다.
그렇게 콧물 과다 섭취로 머리가 멍청해진 걸지도 모르겠지만,
요즘같이 ' 아무 생각 안 하고 사는구나 ' 하는 기분을 느낀 적이 없었다.
공부는 잘하지 못했어도 지적 관심과 욕심은 꽤 있는 편이라, 늘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꾸준하지 않아도 관심사를 넓게 두고 보는 편이었다.
그중 전시나, 공연, 영화, 미술 쪽에는 특히 재미가 있었고 그쪽 얘기를 보고 들으며 대화거리를 설정하는 게 내가 신나게 얘기를 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 반대로 아무것도 흥미가 없다.
그저 허영과 사치의 귀찮은 주제라고 생각할 뿐이다.
월급만이 목적이 돼버린 회사는 견디고 버티러 가는 곳이 되었고, 하루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그곳에서 고통과 인내심을 시험에 올리는 도닦는 기분으로 보내고 나면
마음도, 머리도 바삭하게 말라 시들시들해져 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본능으로 만들어낸 시간 흐름에 따라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출근시간이 되니 출근을 하고, 퇴근시간이 되니 퇴근을 하고, 집 청소를 조금 하고, 컴퓨터에 앉아 남들의 시시콜콜 웃고 떠드는 예능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게임을 하며 잘 시간을 맞추고 곯아떨어진다.
역설적이게도 하루에 몇 장 읽지도 못하는 책의 제목은 ' 글 쓰며 사는 삶 '이다.
내가 뭘 하고 싶은 건지도 잘 모르겠다만 말도 안 되게 한심스러운 모습이라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워진다.
그러니까
' 나는 무엇 무엇을 하고 싶다 '라는 명제 말이다.
막는 사람 하나 없는데, 한 문장도 채워 넣을 수가 없다.
쌓이지도 않은 오늘 같은 눈에도 눈 이불이 너무 두터워 올라갈 수 없다며 꺾여버린 잡초 마냥 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