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부끄러움

못나져 봐야 안다

by 사막물고기




스물여섯,일곱,여덜해쯤의 여자는 오만하다.


20대 초반의 미성숙한 사회 초년생을 졸업하고, 어느덧 막내 티를 벗게 된 것도 같고, 중요한 위치의 업무들도 하나 둘 맡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20대 중 후반에 걸쳐 있는 이 시기에 사람을 만나보는 연령대가 다양해지게 되는데

친구, 위아래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터울들에서 알음알음 지내게 된 대인 영역이

직장상사, 간부,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직장동료들, 주변 지인들의 경조사로 듣게 되는 앞선 세월의 사람 사는 얘기 등등으로 대인관계의 스펙트럼이 확연하게 넓고 다양해진다.


앞서 얘기한 오만함의 표현중 가장 큰 이유는, 업무 능력을 가장 잘 소화해 낼 수 있는 자신의 신체적, 직장 내 위치를 알고 본인이 정중히 대해야 할 사람과 막대해도 될 사람을

입맛대로 골라 넣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영악한 짓을 할 거면 티나 내지 말던가 감정표현의 속도는 실시간급이라 주변 사람들을 불편한 기분에 들게 하고 감히 눈치를 살피게 만든다.


꼬장꼬장한 말투로 자신이 아는 업무 지식을 뽐내며, 훈수와 고나리질을 할 적에는 위아래 무서울 것도 없이 스스로 독보적 존재로 군림한 것 같은 꼴값을 떤다.


모든 일에는 ' 절대 안 되는 것 ' 은 없다.


그럼에도 이런 표현은 절대 하면 안 되고, 이런 말은 절대 쓰면 안 되고, 부정적 언사의 주의를 주는 것은 한번 정도로 하지 마라 하면 족한 것이지 두, 세 번 추가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참 치사하고 꾸준하게 윗사람 티를 낸다.


정작 그 본인은 윗사람에게 ' 골라 ' 잘하면서 자신의 아래로는 예의와 선을 강조한다.


지랄 맞은 윗 상사에게 치이는 것보다, 나이 어린 아랫사람에게 들이 받치는 것보다 나이 적은 윗 상사의 미성숙한 태도가 더 힘들 때도 있다.


뭐, 회사란 게 이런저런 사정으로 절이 싫어 떠나게 될 중이 되면 그만이지만 몇 부분 겹쳐지는 과거 그 나이 때의 내 모습이 떠올라 괴로워질 때가 있다.


얼마나 아니꼽고, 버릇없다고 느껴졌을까.


나중 이렇게 부끄러워할 후회거리를 만들어 두고 산다는 것을 그땐 알았을까?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사과하지 못할 인연들에 미안함을 품는 발가벗겨진 기분에 자주 사로 잡히곤 한다.


그러니, 자신을 벌거 벗겨 놓지 않길 바라는 진심 어린 충고와 질책을 그녀에게도, 과거의 나에게도 다시 한번 일러둔다.


1449903466JyaXDL4AUO1eNe.jpg



한편으론 감사하다.


나를 분노케 했던 철없는 그녀의 행동들이 나를 다시 고개 숙이고, 옷을 갖춰 입게 했다.


사람은 못나져 봐야 스스로의 과오를 반성하고 몸을 사리게 된다.


긴 시간 부끄러움에 치를 떨었고 더 이상 오만하고 싶어도 오만해질 수 없는 서른의 시간이, 이 회사생활이 열흘 남짓 남았다.


앞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또 몇번의 과거를 거슬러 가게 될까 숙연해지지만 한편으론 홀가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동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