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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Jul 13. 2021

필름 카메라를 손에 넣었다ㆍ

나는 색과 구도의 미묘한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한다.

디테일함을 분석하는 능력이라고 하던데, 그런 감각은 떨어지는 편이다.

감정을 우선으로 인식하는 편이라 현재 보고 있는 눈앞의 것들은 나라는 필터를 거쳐 느낌을 받을뿐

같은 위치에 어떤 점이 바뀌었는지 사실적 추론을 해보려는 의지 자체가 없다.


그래서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잘할 수 있는 일들은 손을 놓은지 오래고, 이런 생활습관이 관성적으로 굳어져버려 뭐든 대충 지나치고, 듬성한 갈퀴로 쓰윽 쓸어 담아 걸리는 것들만 쥐고 살아왔다.


며칠전 엄마가 지인을 통해 오래된 카메라를 2개 받아왔다.


하나는 후지 파인픽스 S9600으로 2000년대 초기 모델이었고 어쩌면 카메라 화소나 기술력은 거의 최상급에 올라와 있지 않을까 싶은 요즘의 눈으로 봤을 때는 거추장스러운 골동품이었다.


다른 하나의 카메라가 의외로 시선을 잡아 끌었다.


프락티카 MTL 5B 무려, 필름 카메라였다.

모델명을 검색해보니 1985년도에 독일에서 생산된 제품이라고 한다.

나보다 1살 더 많은 나이와, 살면서 메이드인 저머니를 마주쳐본적이 언제였던가를 갸웃거렸다.


앞서 언급한대로 대충의 미학이 삶의 모토인 사람으로서, 카메라는 단순 일상 사건 기록용 외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잘 찍어놓은 사진을 보는 것은 좋아한다.


그들은, 완벽한 찰나의 구도로 사진을 찍어놓고도 약간의 아쉬움을 파고들며  후보정을 하고, 포토샵이라는 기술 창작에도 손을 댄다.


치밀하게  카메라 시선을 보완하고, 무장을 해야

' 나 사진을 찍는게 취미야 ' 라고 말 할 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래서 사진찍기를, 카메라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잘 다루지 못한다고 말한다.


내가 정한 기준의 각오가 되어있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으면 시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엄격한 B사감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은 시작은 힘들고 포기는 빠르다.


프락티카 카메라를 찬찬히 쳐다본다.

손에도 올려보고, 스트랩으로 목에도 걸쳐 본다.

총알이 난사하며 오가는 종군 역사속에서 발빠르게 뛰어 다니며 셔터를 눌렀던 한 기자의 목에 걸려 있을것 같은 카메라다.


대중성과 편리함, 높은 기술력을 가진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굳이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겠다는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핸드폰과 디지털 카메라는 쉽고 간편하게 찍을 수 있고 쉽게 지울수 있다.

그에 비하면 필름 카메라는 번거로움의 극치일 것이다.

동네 사진관에 인화를 맡길 수 있었던 예전과 달리,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겠다고 결심하면 필름의 공급부터 사진 인화까지 ' 어디서 어떻게 해야하지 ? ' 가 고민될 것이다.


사장되어가는 사업의 유물을 건져 소수의 그라운드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취향을 고집과 소신이라는 이름으로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다 필름 카메라가 내 손에  들어오게 된건지, 이전까지는 전혀 발현되지 않았던 카메라의 호감이 왜 생기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결국 이들은 이렇게 만나 서로 사랑을 할 운명이었다라는 극적 결말의 개연성이 완성되는 것처럼 내가 시작하려는 활동의 한페이지는 좀 거창하게 만들어두어야 할 것  같다ㆍ


너를, 그리고 이 카메라를 쉽게 놓아버리지 않으려면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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