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으면 허전할뿐인 사람은 이제 갈게
새벽 4시 33분을 넘어서고 있다.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었고, 쓰고 풀어내지 않으면 영원히 잠에 들지 못할 것 같았다.
누군들 잡고 하소연 하기에 마땅치 않은 주제와, 기분과, 내용과, 길이였고 누군들 몰라주길 그중에 내가 제일 몰라져 가길 바라고 있었다.
별일 아닌 거라고, 빨리 잊게 해 달라고 간절히 원할수록 기억은 짙은 농도로 몸 구석으로 피어오른다.
내 뜻과 올바른 이성을 갖추고 제 때에 대응하지 못한 현실에서 벗어나면 모든 결과는 내가 만들어낸 불행들로 찾아왔다.
내가 너를 너무 쥐어짜 낸 나머지 헤어짐을 통보받고 말았다는 자책.
내가 너의 기분을 예민하게 잡아내는 탓에 헤어짐의 징조를 알아챈 탓.
그동안 소홀했던 태도들을 비난했고, 섭섭함을 토로했고, 한없이 넓은 사랑은 아니었던 한계가 보였다.
우리, 두 번째 헤어지고 다시 만날 적에 ' 이번에는 네가 먼저 이별을 말하지 말기를 '이라고 약속받았다.
자신만이 최고 사랑이던 그는 자신의 시시때때로 변하는 감정들에게도 일일이 발언권을 주며 귀를 기울였다.
종종, 이런 기분으로 만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하였다.
이런 기분이 뭔가 스무고개 하듯 내가 싫어? 내가 귀찮아? 내가 말을 잘못한 것이 있어? 다른 여자를 만나고 싶어? 나와는 미래가 안 보이는 것 같아서? 등등등..
내 몸에 칼 을 꽂는 것만 같은 질문들을 하며 그 기분이란 게 뭔지 함께 알아보고자 했다.
그 자신도 똑 부러지게 설명할 수 없었으면서, 대체 그 암흑 같은 ' 이건 아닌 것 같은 기분 ' 에 내 존재와 사랑이 흔들린다는 것이 분하고 억울하고 하염없이 슬펐다.
헤어짐을 먼저 말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결국은 헤어짐을 이야기했다.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한다.
너무 편한 사람이라고, 자신에게 잘 대해주어 고맙고 미안하다고 한다.
좋은 말은 잔뜩 하면서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결론은 바뀌지 않고 있는데, 나는 뭐가 그리 두렵고 무서운지
몇 번을 잡고 잡았다.
그 앞에서는 내 짐들을 싹싹 챙겨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뛰어왔건만, 현관문을 열기 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물어보고 싶었다.
정말 이대로 되돌아가지 않아도 되는지..
머리는 어서 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가 펑펑 울던가, 욕을 하던가 당차게 문을 잡아당기라고 하였지만 마음과 손은 바짓가랑이가 걸레가 되도록 잡고 늘어졌다.
오늘은 정말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다른 날이라도 마찬가지 일 것 같지만 오늘은 정말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1월 1일부터 나는 백수생활을 하고 있었고, 16일 오늘까지 만난 사람은 그와 엄마뿐이었고, 오늘은 새 직장의 면접날이었다.
얼굴만 아는 가벼운 사이에서 인사치레라도 잘 보고 오라는 말, 안부 문자 하나 너에게 받지 못한 오늘 밀려나는 기분으로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 자존감 '이란 단어와 그에 딸려 있는 일련의 사건, 피해의식, 망상이 몸을 차곡차곡 덮어온다.
나는 왜 이다지도 나에게 멀어진 마음을 집어내는 감각만 발달해 있단 말인가.
아버지와 유대관계가 좋지 못한 딸들이 가지고 있다는 자기애 결여, 자존감 부족, 등이 키워낸 촉수인가, 그렇다면 내 아버지는 나에게 얼마나 잔인한 사람이란 말인가.
울고 싶지만 생각보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눈만 따끔따끔한 것이 눈물이 나올라 치면 화가 나고 화를 누르며 다시 생각해보라고 부탁을 한다.
징조는 있었다.
휴대폰 메신저들의 잠금과, 화장실을 갈 때도 악착같이 가지고 다닌 점.
이쯤 되면 내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를 비워달라는 뜻이었을 거다.
내가 더 화가 나는 건 분명 알고 있었는데, 헤어질 당시에는 우리 좋았던 것들만 생각하느라 자리 문제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나 자신에게 뻥을 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 시간이 지나서야 그때 알았으면 한 번에 돌아섰을걸, 왜 질척거렸을까 하고 생각하는 거다.
그때도 알았고 지금은 더 잘 알게 된 것이지 다시 돌아가도 질척 거릴 내가 뻔해서 짜증이 난다.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 너 없이 홀로 어떻게 살아가니 ' 가 의례 헤어진 연인이 없는 상태가 아닌 정말 문장 그대로 오롯하게 홀로가 되어버려서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숨 막히게 외로웠던 끝에 내 아버지와 달리 유하고 순했던 그를 만났다.
우린 참 많이 달랐고 다름을 대하는 태도도 극과 극이었다.
나는 맞춰가면 될 거라고, 내가 많이 맞춰가겠다고 생각하는 반면 그는 넋 놓고 부정했다. ' 이렇게 다르니 어떻게 맞춰가겠어 '라고.
참 귀여운 행동과 말을 많이 한 사람이지만 나에게 화낸 적도, 울었던 적도, 싫은 소리 한적도 없다.
기질이 온순해서 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보니 누군가에게 맞추고 애쓰는 것 없이 무기력했었단 생각이 든다.
짧고도 긴 2년 남짓의 연애였다.
나라고 2년의 시간을 항상 사랑했었겠는가, 밉다가 좋다가 싫다가 예뻐 보였다가 온갖 감정과 마음이 널을 뛰었다.
그래도 함께 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에게 난 밉다가 좋다가 싫다가 예뻐 보였다가 한 순간순간이 고비로 다가왔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관되게 차갑고 냉정했었나 보다.
앞으로 어떻게 남자를,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언제 어떻게 내가 싫어져 버릴지 이별의 시한폭탄을 품고 있는 상태로 누굴 믿을 수 있을까 싶다.
변심할 마음이 너무나 무섭다. 열 손톱을 다 빼주고도 아픈 줄 모르고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