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키 후미오
어쩌다 한 번씩 ' 활자를 읽지 못하는 병 '에 걸릴 때가 있다.
핑계 같지만 꽤 진지하고 독하게 앓고 지나가곤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에서 오는 심리적 변주기를 겪는 동안에는 책은 읽는 것이 아니고 눈에 찍었다가 머리 위로 날려보낸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읽는 것'빼고 다른 일에 집중을 넘어 집착하는 것도 그런 시기다.
청소를 하던가, 게임을 하던가, 자던가, tv를 보던가,
단순하면서도 현재를 생각할 수 없는 일들에 매달린다.
2015년 12월 말쯤에 새해가 밝으면 바로 읽어 보자고 카운터를 세며 아끼듯 책장을 넘겼던 책은
딱 3분의 1을 새해 초반까지 읽다가 활목병 핑계의 말뚝을 박아두고 한동안 책을 덮었다.
그러다 오늘에서야 ' 대체 이 재밌는 책을 왜 그동안 못 읽었던 거지? '라는 감탄을 하며 단숨에 읽어 가게 된 건 엄마가 집에서 막걸리를 만든 후 맛 보라며 건네준 한 컵이 제대로 효과가 있었다.
졸음이 오기전까지 알싸하게 취한 정신으로 보는 사람이 아닌 모든 매체는 참으로 사랑스럽고 진하게 보인다.
영화, 책, 음악, 등등.
간단히 정의할 수 없지만 정의해보고자 하면 '미니멀리스트의 삶에서 오는 행복 추구 법' 같은 책인데, 개인적으로는 물건을 정리하는 작가의 방식을 보면서 물건으로 압축시켜 놓은 사람과 마음의 정리 법 같은 처세술적인 면을 이입하며 읽게 되었다.
작가는 간소하게 사는 삶을 통해 '사람'을 '물건'으로 대하지 않는 관계의 깊이와 존중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정작 '사물'에 '사람'을 대입시키니 책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124페이지 룰 28 버리기 전, 물건과 다시 마주 하라 장에서는
' 지금 자신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이유도 생각해보자. 수고가 드는 작업을 거치면서 다시 한번 물건과 마주하는 것이다. 두 번 다시 이런 잘못된 구입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맹세할 수도 있다. 물건을 처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라고 쓰여있다.
이 부분을
지금 나에게서 사라진, 그러니까 필요를 다한 사람과의 아픈 기억을 꺼내 다시 마주하고 두 번 다시 이런 잘못된 인연을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할 수 있다. 끝난 인연과의 기억 처분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 갈 수 있다고 '사물'에서 '사람'으로 한 글자 바꾼 식으로 읽게 되었다.
맞지 않는 페이지들도 있지만, 정말 아이러니하고 완벽하게 사람과 대입해도 손색없이 구구절절이 다가오는 충분한 명분이 있었다.
하나 더.
145페이지 룰 49 구입한 물건을 빌렸다고 생각하라
산 물건을 빌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다시 누군가에게 빌려줄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돌려줄 때를 생각해 조심스럽게 다루게 된다. 물건을 함부로 하지 않고 순환시키는 셈이다.
물건을 산 게 아니라 일시적으로 빌렸다고 생각하는 것. 이는 단지 물건을 순환시킬 뿐 아니라 겸허한 마음까지 갖게 해준다.
이 부분도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한때의 나의 연인을 생각해 조심스럽게 이별을 고한다.
그간의 추억과 마음을 함부로 하지 않고 순환시키는 셈이다.
마음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일시적으로 빌렸다고 생각하는 것. 이는 단지 헤어짐의 자멸감을 순화 시킬 뿐 아니라 겸허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해준다
라는 확대 해석.
146페이지 룰 50 싸다고 사지 말고 공짜라고 받지 마라
공짜라는 이유로 받는 것도 위험하다. 물건은 갖고 있기만 해도 신경이 쓰여서 그만큼 자신의 기억 용량을 소모하게 된다. 게다가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들인다.
라는 책의 말은
무조건 적인 호감을 받는 것도 위험하다. 호의는 갖고 있기만 해도 신경이 쓰여서 그만큼 보답할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하게 만든다.
라고 느껴졌다.
작가의 의도대로 읽진 않았지만, 이미 책의 논조를 동감하고 이해한 뒤였다.
책을 읽기 전에도, 물건에 감당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자유자재로 정리하고 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 물건이 집에 있는지, 어디 있는지, 계속 필요할지에 대한 생각과 정리는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굳이 책을 읽고 바뀌었던 점은 없다.
삐딱한 감상주의식 책 읽기였다.
나 혼자 산다의 황치열 씨처럼 이 이 책을 보면서 물건정리에 도움을 받고자 보는 사람도 있다면 이미 이렇게 살고 있으나 한번 더 정리된 다짐과 확인, 동질감에서 오는 반가움에 책을 고른 사람도 있다. (내 경우엔 후자)
정리에 대한 팁으로 몇 가지 줄인 품목들이 있다.
음악 cd 들과 세일러문 세트 나노 블록이다.
음악 CD는 듣지 않은지 몇 달 째이고 세일러문 나노 블록은 CD 정리한다고 부서졌다.
시대는 점점 편하고 간편하게 디지털화되고 있고 물건의 정리도 콘텐츠를 이용하면 굳이 가지고 있어야 될 품목들은 사라진다.
작가도 이 기준에 의거하여 모아둔 편지, 사진 등을 정리해나갈 수 있었다고 했다.
내 기준엔 편지는 아직까진 디지털화해두고 원본을 정리하고 싶진 않다.
자기 기준과 가치를 세워 소신껏 역량껏 정리해 나가면 된다.
책도 그걸 강조하고 있다.
뭣보다 그동안 물건을 많이 버린 나로서는 ' 낭비'라는 죄책감과 비난에 시달릴 때가 있었는데, 그 짐스러운 마음이 책을 통해 해소가 되었다.
한번 본 책은 두 번 읽지 않을테니까 " 얘는 뭘 자꾸 갖다 버리는 거야! "라고 비난에 일조했던 엄마에게 이 책을 정리해야겠다.
물건을 줄인 후 찾아온 긍정적 변화에 대해서도 십분 공감을 한다.
다만 아직까지 나에겐 변화의 기분은 환기 같은 잠깐의 순간으로 머물다 간다.
꾸준히 실천하고 있어도, 실천 후의 효과도 그러란 법은 없는 것이니까.
그게 내가 책을 읽고 다짐한 내 몫의 숙제이자 이유가 되었다.
조금 더 줄여 나갈 것이다.
물욕도, 사람들에 대한 실망도.
매일 울상이었던 걱정투성이에서 '오늘 하루 깔끔하게 살다가 자 '라는 기분으로 가볍게 지내보자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