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감상일지

베이비시터

by 사막물고기

KBS에서 무림 학교라는 드라마가 조기 종영하고 4부작으로 기획된 드라마라고 한다.

무림 학교도 관심 없었고, 이 드라마도 보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토요일 밤에 으레 그렇듯 이리저리 채널을 옮기다 얻어걸려 보게 된 드라마 중 하나였다.

제목만 들어도 어떤 내용인지 짐작이 될 거 같았다.

흔해빠진 유혹의 도착 알고리즘 같은 제목들.

베이비시터, 하녀, 가정부 등등의 단어가 들어간 뻔하디 뻔한 내용.

이 드라마도 짐작한 90프로가 들어맞은 그렇고 그런 내용이었는데, 특이한 연출과 구성의 10프로에 끌려 묘한 느낌을 받아 꽤 재밌게 보고 난 드라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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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천은주(조여정)의 고백부터 시작을 한다.
그리고 과거 시점으로 돌아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은주와 기자가 인터뷰하는 장소가 성당이라는 게 의뭉스럽다.
은주는 죄가 있는 것처럼 자신이 지은 죄를 말해주겠다고 했지만, 앞서 뉘우치는 언행 어떤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사방 공간의 창문은 열려 있으나 커튼은 드리워 심하게 너부대고 있다.

한 막 가려진 고해에 대한 예고 같기도 했다.

이런 상징성에 대한 연출과 기묘한 분위기의 배경음악이 어우러져 시선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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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것 그대로의 두 여자 대사도 자극적이었다.
그래서 평소 나쁜 말은 해선 안돼라는 도덕은 잠시 내려두고 머릿속으로 실컷 욕을 하고 있었다.
선악구도는 명확했다.


남편과 바람난 베이비시터에게 '도둑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남편밖에 모르던 여자에게 이와 같은 표현 말고 어떤 말이 적절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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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와 남편의 외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정전이 되었을 때 은주는 함께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어두운 서재에서 책을 읽어주며 손전등으로 그림자놀이를 하는 두 여자의 모습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닮아진 모습으로 겹쳐 보였던 부분이었다.

남자라는 빛을 받아 자신의 모습을 크게 부풀리려는 야망과 허례는 어둠 속에 비슷한 종족과 있었기에 드러날 수 있던 검은 마음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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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의 시선을 대변하는듯한 벽화의 그림을 앞에서 석류와 남편은 만남을 이어갔다.
친구의 아내가 되었을 적에 남자의 집착은 더 커진다.
본디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을 탐할 적에 욕심은 파멸의 지름길이라고 했었다.
푸른빛의 불안과 공포를 담은 눈동자가 그 앞을 예견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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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와 남편 사이에도 뜨거웠던 순간이 있었다.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이 변심한 마음 뒤에 읽힐 때 얼마나 쓸쓸한 시인지 느끼게 해준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 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아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림이
너였다가
너 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 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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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와 뜨거웠던 그날의 밤과 비슷한 구도의 창을 낀 이분할 화면이
석류와의 외도가 시작된 장면에서도 비슷하게 쓰인다.

한 여자가 울게 될 때 한 여자는 비열한 승리감에 젖는다.

변질된 정조와 순애보를 고발하는 창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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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는 남편과 석류의 불륜을 행사장에서 알리는 방법으로 메두사와 포세이돈, 아테나를 빗댄 그림을
경매에 올렸다.

고상하게 미술사를 논하고, 절판된 책을 구하고, 팝과 클래식 음악을 섭렵하며 대화를 삼는 '배운 사람들'의 이중 모습은 까발려져도 시원하지가 않다.

배운놈들이 더 할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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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 했다.
상처받은 배우자의 마음이 조각조각 몇 장면으로 선선하게 표현되었을 뿐.
이 드라마도 역시 막장 소재의 자극적 입맛에 지나진 않는다.

그저, 한때 잊고 있었던, 욱신거림이 다시 떠올라 흥미롭게 보고 말았다. 재밌었다고 말하고 말았다.

놀랍지도 않다.
사람 마음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배신하면 쳐 죽이고 싶은 건 다 똑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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