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기 조금 아쉬워질 때가 있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
금요일 밤, 토요일 밤, 날씨 선선한 걷기 좋은 밤 그리고 시시콜콜한 대화가 하고 싶은 그런 날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주의 마감 꼭지가 떨어지는 금요일 밤은 만사 지친다는 생각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뛰어 들어가 아쉽다는 생각 한 톨 들지 않았고, 먹고 싶은 참외와 오렌지를 먹으며 지금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영화를 보고 나니 잠시 잊고 있었던 평화와 안정 사이 지대로 찾아들어간 느낌이었다.
싱글로 살아간다는 것은 잘 살고 있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게 맞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고, 확인받을 사람을 필요로 하고, 더 나은 삶은 따로 있을 거라는 환상적 도피처를 그리다 제풀에 지치는 과정을 반복한다.
홀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는 싱글의 자유는 외로움과 고독의 대가로 주어진 것들이고, 자유 지분을 조금 처분하더라도 관계의 정을 얻고 싶은데 마음먹은 대로 거래되지 않는 불완전함이다.
영화 속에서는 홀로 사는 사람들, 특히 홀로 사는 여자들의 다양한 군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각 인물들이 모두 흥미롭다.
1. 4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에게 잠시 떨어져 있을 시간을 가져보자는 다코타 존슨,
2. 화려한 파티걸의 싱글 삶을 살아가는 레벨 윌슨
3. 하룻밤을 보내게 된 남자와 연애, 이성 가치관이 맞지 않는다는 걸 알고 전 남자친구가 그리운 다코타 존슨
4. 산부인과 의사로 남자보다 아이를 먼저 사랑하게 된 레슬리 만
5. 사랑이 가능한 남자의 대상을 세분화시켜 어플 상의 통계적 수치로 걸러진 만남을 이어가는 알리슨 브리
그리고 이 여자들과 얽혀있는 남자들의 이야기로 매끄럽게 이어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되었다.
중간중간 내 머릿속에서 꺼내진 듯한 대사와 장면들이 나올 때 부끄러운 과거의 연애사들이 들킨 것 같아 민망하면서도 껄껄대며 웃었다.
레벨 윌슨이 다코타 존슨에게 고추의 모래사장에 빠진 것 같이 굴지 말라는 말을 했다. (번역이 제대로 된 문장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코타 존슨은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다가 남자가 달라질 때마다 본래 자신의 모습을 잃고 허우적거리는 스스로를 깨닫고 '그래 이게 고추의 모래사장에 빠진 격이야' 라고 한다
내가 휘둘리고 있다는 느낌은 당시엔 잘 느껴지지 않을뿐더러, 나를 깎고 희생한 시간이 그를 사랑한 노력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노력하고 있으니까 나를 사랑해야 해 '
어쩌면 이별을 고했던 남자들 보다 나 자신에게 더 폭력적인 생각을 가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고추의 모래사장에 빠져나와 오롯이 혼자된 시간을 '자기답게' 사용하면서 진정한 홀로됨의 의미를 깨달아볼 필요가 절대적으로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영화이다.
긴 시간을 홀로 지내야 하는 사람도, 정말 홀로될 시간이 얼마 없는 사람도,
우리는 모두 혼자서 잘 지내야 할 방법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둘이 아닌 혼자일 때 발견할 수 있는 나 자신에 대한 탐구의 시간을 외롭다는 한마디로 정의하기엔 너무나 귀중한 시간임을 알려주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