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4
- 안녕,망설임
항상 한 번은 떠나고 싶었다.
많은 날들은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 할 터이기 때문에 문득,
' 혼자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적에 정말로 그렇게 해봤으면 싶었다.
기회는 몇 번 주어지기도 했고, 내가 부러 만들 수도 있었지만 늘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자
리에 눌러 앉기 일쑤였다.
가장 큰 이유는 돈이라는 핑계였고, 잇따라 둘러대는 부연 설명은 내 자리도 잡지 못했는데,
어느 곳에 간들 맘을 붙일 수 있을까 하는 거였다.
다소 강박적인 성격 탓에, 마무리되지 않는 일, 사람, 생활습관 등이 있으면 끝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였다.
도전하고 시도하기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고,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나 자신에게 있어서도
주도권이 없었다.
끌려다녔고, 휘둘리기 싫다는 이유로 지금 상태에 안주하려 버둥대기 바빴다.
그러기를, 꽃 피는 춘삼월이 되고, 만 서른의 생일을 홀로 지내고 나니 이전에도 헐벗은 기분이었고,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 또한 없으니 더 잃을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위축되는 가장 큰 이유는 되고 싶은 게 없는 사춘기 방황처럼 직장에 잘 자리 잡지 못한다는 거였고, 3개월 남짓 시작해본 재택근무도 실패로 돌아가니 맥없이 추락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과 부대끼기 싫다는 이유로 도망치듯 선택한 차선의 선택이 좋을 리가 있겠는가,
불손한 재가 낀 마음은 수시로 시험에 들게 하였고, 이전보다 더 버텨내는 주기가 짧아진 것은 내가 그만한 사람밖에 되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시작하기 전 팔 할의 외로움이 수분처럼 박힌 게 나인데 혼자서 근무하는 게 가능할까? 하는 걱정이 늘 들었는데, 그 걱정에 미리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사람들로 가장 많이 아프고 힘들었던 4년 전의 직장생활 3년이 가장 오래 다닌 곳이 된 셈인데,
그동안 다닌 직장들 중 길게 버틴 곳이 제일 나았었다 하는 것은 아니고,
이번 퇴사로 그동안 나 스스로를 참 몰랐었구나 하는 성찰의 결과를 얻게 되었다.
다행인 건 삼십 대의 여자가 갖추어야 할 커리어에 대해 무일푼인 상태임을 걱정하기 시작하니,
오랫동안 괴롭혔던 떠난 남자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다시 누군가를 열심히 알아가고 싶은 정성이 생겨날까 자문해보면 이도 저도 아닌 맹맹한 기분이 든다.
헤어진 이유 역시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내가 뭐가 문제였는지, 어떤 점이 모자란 여자였는지, 그 남자는 나에게 얼마큼 실망감을 주었는지 헤아리고 계산해본들 헤어진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굳이 정리해보자면, 서로가 없이도 살만하다는 걸 깨닫게 된 점이라고 할까.
가끔씩은 생각이 난다.
오늘같이 집 앞 벚꽃나무에 꽃이 피고, 달이 뜬 거리에 달큼한 밤공기가 열에 오르면 손끝을 살짝살짝 스치다 잡게 된 산책길이 생각 나곤 한다.
홍당무 색이 된 풍선처럼 둥실 부푼 마음을 매달고 다녔던 봄날이었다.
윤종신의 1월부터 6월까지라는 노래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나는 3월부터 5월까지의 그와 나를 가끔씩 생각하기로 했다.
반지하 전세자금, 보험비, 주택 청약저축과 같은 묶인 돈을 빼고 나면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그리 많지 않았다.
비행기는 편도 티켓만 예약했고, 4월 5일부터 9일까지 경차 렌터카를 예약했다.
여행코스야 어느 정도는 미리 짜보고 가자고 생각했는데, 수많은 블로그 포스팅, 사이트 정보들 앞에 어떻게 추려야 할지 진이 빠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숙소 예약도 진척이 되지 않았다.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다 오겠다라고 결심하니 게스트하우스 예약만큼 막막한 게 없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꽃은 피었고, 짐은 쌌고, 계획은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떠난다.
나른한 설렘, 두려움 반 긴장만, 기대는 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