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5
- 용두암->용연계곡,구름다리->이호테우해변 / 숨게스트하우스
밤을 샜다.
그동안 낮밤이 바뀌어 있던 터라 내일부터 낮살이를 시작한다 해도 잠은 하루만에 바뀌지 못한다.
요 근래 혼자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생긴 습관이라고 하기 뭣한 잉여짓이 하나 생겼는데 유투브나, 오디오 음성, 혹은 아프리카 방송 같이 사람이 말하는 방송들을 틀어 놓는것이었다.
지줄 지줄 쉼없는 음성을 바꾸어 가며, 하루는 이 목소리에 하루는 저 목소리에, 시시때때로 옷을 갈아 입듯 목소리를 달리 들었다.
짧고도 굵은 청취자의 입장으로 느낀바는
타인의 관심을 거래하는 무리의 전쟁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를 끄고, 밖에 나가면, 입이라도 잘 뗄 수 있을까 내심 걱정되었지만 막상 나와보니 의외로 더 담담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내가 먼저 말할 일이 없었고, 무의미한 말들도 귀를 꽉 채웠던 소리에서 벗어나니 더 힘껏 차분해지게 되었다.
떠나기전 짐을 한번 더 줄여볼 요량으로 짐을 다시 풀러보았고 겨우 바지 하나를 옷장에 다시 넣어두었다.
그러다가 허리를 펴면서 우지끈 하는 느낌과 함께 통증이 느껴졌는데, 그 뒤로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떠나기 몇분전 허리통증을 덤으로 얻었다.
게다가 현관문을 잠그려는데 튼튼하고 멀쩡했던 키링까지 박살이 났다·
어쩐지 불행의 시초를 알리는 징조들만 같아서 영 찜찜했다.
친구는 더 좋은 일이 있을거라는 액땜이라 생각하라고 알려주었다.
도무지 생각나지 않던 긍정적인 말이 필요했었다.
에고고고 곡소리가 절로 나오는 할머니가 되었지만, 친구의 말을 부적삼아 마음에 담고 가자고 생각했다.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수학여행을 떠나러 온 고등학생들이 참 많았다.
이 평일에도 떠나는 사람으로 북적북적 하니 새삼 다른 세계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번씩 하늘을 올려다보다 비행기가 구름에 선을 그리고 지나가면 비행기속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막연히 궁금하면서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이젠 내가했던 부러움속의 사람이 된 셈이라 생각해보니 묘한 쾌감이 피어올랐다.
30분 연착되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몸집이 큰 교통수단의 집결지를 보면 경이롭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렇게 거대한 '것'이 물에 가라앉지 않고, 하늘에서 추락하지 않는다는건 과학적 원리는 접어두고 신앙처럼 근엄해 보일때가 있다.
해서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작은 세상은 경이로운 세계의 제2탄으로 빨려들어가는 연장선이었다·
수없이 많은 땅과,물과, 건물들과, 사람들 속에 나는 한점 크기 보다 작은 미생물이 되어있었고,
구름위로 올라 왔을적에 지상의 미생물 육신에서 유체이탈이라도 한 듯 전능한 허실이 된 기분이 들었다.
땅에서 구름이 지나가는 걸 볼때는 더없이 느리고 느렸지만, 비행기 창에서 바라본 구름은 기체 폭격기 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비행기가 구름을 연료삼아 몇겁의 시간을 거슬러 가는듯 했다.
모처럼의 상상과, 공상이 즐거워졌다.
어릴적엔 가만히 누워서도 머리로는 온갖 잡상과 망상에 이야기를 씌워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나이가 들 수록 가만히 누워있는건 몸과 머리가 같이 정지되곤 한다.
최대의 휴식이면서 잔인한 자기 파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제주공항에 도착해 미리 예약해둔 렌트카를 인수했다.
렌트카를 빌린 전작의 2번 모두 작은 사건들을 달고 반납했기에 의기소침을 넘어 겁을 잔뜩 집어 먹었지만 선택권이 없었다.
가방은 무거웠고,버스를 타며 여행할 노선 계획은 생각도안했으니까.
허리때문에 할머니가 된 마당에 운전대를 잡으니 한풀 더 늙어버린것만 같았다.
몇번의 길을 돌아 공항에서 가장가까운 용두암에 도착했다.
그 전에 삼성혈에 먼저 도착했지만 도착하고 보니 구경하고 싶지 않아졌다.
마음대로 하자고 마음먹은 여행이니 바로 발길을 돌려 용두암에 도착했다.
이제야 제주도에 왔다는게 실감되었고, 파도처럼 잔잔한 콧노래가나왔다.
용두암의 돌들은 현무암이 많다던데, 같은 종류라도 돌 하나하나 생김새가 같지 않은것이 없었다.
빈틈이 많은 돌은 여유와 인정도 많나 보다.
이름모를 풀과 해초에게 척박한 자기 몸을 내어준다.
매끈하지 않고 투박하고 거친 돌들을 보니 오랜시간 세월에 견디고 파도에 부딪친 까마득한 시간을 엿보는것 같았다.
농담반, 진담반이지만 주변 사람들 한테 제주도에 내려가서 먹고 살일이 뭐가 없을까 하고 물어보면 " 물질을 해라 " 라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대답들을 한다.
물질이 어디 쉽던가, 해녀는 내가 꼽는 극한 여자직업 3위 안에 들여 생각하는 중인데, 나같은 부랑아 꼬라지를 보고도 툭툭 던지니 참 무심들 하단 생각이 든다.
바다가 품어주던 해면이 드러나면 돌들의 무덤과 새로운 바다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는것 처럼 느껴졌다.
부딪치고 깨지고, 으스러져도 자리를 지키는 돌은 열심히 생을 살고간 흔적의 전신이었다.
햇볕이 들었다 사라졌다 하는 날씨에 해안도로 산책은 침착한 마음을 들게 했다.
몇방울씩 비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쏟아내릴것 같진 않았다.
하늘도, 바다도 온화했다.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이끌려 가게 되면 용연 구름다리가 시작된다.
다리 앞에는 사랑의 완성을 염원하는 자물쇠가 채워져있는데 녹이 많이 슬어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에 함께 열쇠를 묶었던 날이 대비효과 처럼 떠올라 침울해졌다.
용연계곡이라고 하나, 흐르는 물이 아닌 고인물의 계곡은 계곡이라고 불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 고민되었다.
바다에서 이어진 물길이 있고,
정자를 지나면 가둔 물이 되었다.
침울한 계곡가의 정자에도 꽃은 예쁘게만 피어있다.
벚꽃잎은 한 점 두 점 떨어져 있을적에 아련한 느낌을 준다.
용두암쪽의 현무암과는 전혀 다른 돌이 용연계곡 근처에 있었다.
빛과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돌은 시커멓게 썪어가는 중인것만 같았다.
바람과 , 빛은 돌에게 생명일지도 모르겠다.
바다를 매일 보고 사는 집들과, 그 집에 사는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창을 열면 짠내음이 나고 눈앞의 은빛융단을 보면 매일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하다.
바닷가마을의 삶은 순수낭만과 , 고된 생활 그 어디쯤에 가까울까.
모호한 그림낙서와
소원을 들어준다는 트롤로 변할거 같은 돌밭도 있었다.
무시무시한 기분이 들게 하는 작은 동굴도 찾아보았다·
다음은 이호테우 해변가로 갔다·
해변이름이 특이했다·
이름없는 해변가에 어느 시인이 지어준것 처럼·
해는 뉘엿 뉘엿 넘어가고 있는데 석양은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자잘하고 깊숙히 들어오는 파도의 움직임이 좋았다·
근처에 뿌리 내리고 서있고 싶을만큼 말이다·
완벽한 짝 처럼 보이는 2개의 전망대와
그리움이 묻어나는 2개의 등대를 돌아보았다·
노을핀 바닷가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어떤모습이라도 내 눈엔 참 고왔다·
조용한 해안에 숨어 들어간듯 노닐다 올수있어 벅찬 마음으로 울컹거렸다·
완벽하게 뿌듯한 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