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6
- 한라수목원-> 제주도립미술관-> 한담해안산책로(+유명카페)->곽지괴물해변산책로->선운정사 / 한담누리 게스트하우스
'도로변에 주차해둔 차 누가 긁으면 어떡하지'
' 내일 숙소는 어디로 정하지 '
' 허리는 괜찮아 질 수 있을까? '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문 걱정은 머리속에 콕콕박혀 알을 까기 시작했다.
처음 지내보게 된 8인실 게스트 하우스는 좁고,답답하고 침대 매트는 푹 꺼졌고 베게는 높고,추웠고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딱 눈감고 자면 넘어가게 될법한 사소한 불편함들이 첫날밤을 서글프게 했다.
누군가는 코를 골았고, 이를 갈고, 방귀도 뀌며 핸드폰 소리는 계속 났다.
허리는 아프고 집에 있는 전기장판이 그리워졌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은 분명 잠자리 때문에 생긴 말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한방을 썼던 캄보디아인 세 아가씨가 일찌감치 움직이길래 이미 달아나버린 잠은 포기하고 같이 움직였다.
새벽의 조심스런 머리감기와 옷정리를 마치고 조식을 챙겨먹었다.
육개장 사발면과 식빵, 잼이 제공되는데 적당히 그득그득 눌러담아 배를 채웠다.
어제 잠깐 이야기를 나눈 29살 룸메이트는 숙박하게 된 이 곳 숨게스트 하우스에 숙박하며 일하기 위해 내려왔다며 베실베실 웃었더랬다.
20대의 마지막 나이에 어떤 결심이 들었는지 그새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 오만 요란은 머릿속으로 다 떨었던것 같은데 말이다.
대화를 하는 동시에 이미 진행중인 사람들이 있다.
도전을 완성시켜 가는 모든 시행과 착오를 응원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어린 나이의 사람들에게도 배울점들이 참 많다.
나이 아래 사람에게 내가 채워주어야 할 구멍하나 지우고 보면 내 구멍에 채워야 할 허점이 먼저 보인다.
차고 넘치는 구멍생이라 이래가지고 겸손한 꼰대라도 될 수 있을런가 모르겠다.
간밤에 비가 왔었나 보다.
어제부터 제주라디오는 계속 비 소식을 알렸다.
땅은 젖어있고 하늘엔 먹구름이 간간히 끼어 있었다.
비 쏟아지기 전에 돌아보고 싶은 한라수목원으로 향했다.
수목원과 산림욕, 등산길 구분없이 산새 정경 그 자체라 수목원 관람객보다는 운동하러온 사람들이 몇 있었다.
이들 중에선 내가 관광객이 되어 바지런히 나무 이름표를 읽고 두리번 거렸다.
간밤의 얕은 비는 벚꽃잎을 잘잘하게 바닥에 붙여 놓았다.
아기의 하얀볼에 속눈썹이 떨어질때를 떠오르게 했다.
그만한 부드러운 감흥의 지는 꽃잎은 떨어질때 더 예뻤다.
수목원, 산, 정원 등을 방문할 때 마다 느낀것이지만 내 눈앞의 눈부신 정경은 카메라가 십분의 일도 담아내지 못한다.
오늘의 한라 수목원 사진도 역시 그랬다.
수목원 가득 지저귀는 새소리도 담지 못하는것도 아쉬웠다.
충분히 머물고 싶어 산림욕 코스까지 돌아보니 꽤 높은곳 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제주의 일부가 무대처럼 보였다.
몇장까지 제주를 읽어갈 수 있을까?
슬슬 새소리보다 단체관람객들의 목소리가 웅성거리기 시작할때 다음 목적지인 제주도립미술관으로 갔다.
큰 건물은 아니었지만 내가 본 어떤 건물들의 외관보다 정갈하고 깔끔한 느낌을 받게 했다.
마치 물위에 떠있는것 처럼 보이기도 했고 주변의 걸림 건물 없이 깨끗한 하늘을 이고 서있는 정경이 꼭 그림 같았다.
그림같은 건물이어서 미술관 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상설 전시실의 주제는 무거웠다.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 추모와 고발을 예술작품을 통해 소통의 화두를 던지고 있었다.
이 사건 뿐만 아니라 탄압과 억압에 쓰러진 희생자와 사건을 이입해 바라보아도 전시전의 주제는 통하고 있다.
되풀이 되는 피의 역사가 먹먹했다.
오늘의 숙소는 애월읍의 한담게스트 하우스로 예약했기에 그 근처 한담 해안산책로를 걷기로 했다.
질리도록 바다를 보고 또 보자고 생각했다.
혼자서 헛으로 낭비한 시간과 무기력하게 자신을 방치한 책임소재를 바닷가에 세워두고 묻고 반성하게 하고 싶었다.
한 두방울 비가 떨어지고 한풀꺾인 졸음이 나른히 밀려왔다.
배도 고팠고.
탁트인 창가 너머에도 바다 풍경이 있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야지 할때가 있는데 이미 그렇게 고쳐먹었을때부터 생각할거리 하나를 떠올린셈이다.
툭툭 튀어나오는 의지와 다른 생각들도 쏠쏠히 이어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창문이 비춰주는 바다정경은 정말 아무 생각없이 몇분은 내려놓고 보게 된다. 그리고 표정도 심해에 던져 두고 온 얼빠진 사람마냥 된다.
델리스파이스 노래가 배경이 되면 좋겠다.(델리스파이스-바다에던져버린이름들)
배도 채웠고 충분히 멍도 때렸고 애월읍 탐방에 나서려고 할때 빗방울이 굵어졌다.
오늘만 쓰고 쓸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서 가장 저렴한 비닐 우산으로 샀다.
바다 해변 가까이로 검고 판판한 돌길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적당히 걷기 좋은 길이와 코스였다고 생각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봄날까페와 지드래곤 카페로 불리는 몽상드 애월도 볼 수 있었다.
이 주변이 공사중인 건물들이 많았는데 본격적인 휴양지 개발을 목표로 콘도, 카페, 레저 등이 계속 생겨 날 것 같았다.
'투명에 가까운 블루 ' 라는 말을 여기 애월의 바다물을 두고 써진 언어가 아닐까 싶을정도로 깨끗했다.
먹구름이 옅게 깔린 하늘이 원래의 내가 알고 있던 바다색이었다.
하늘이 바다같고 바다가 하늘같은 새로운 바다의 색을 알게 된 날이었다.
핫플레이스 카페들을 구경하고 방향을 돌려 검은 비단길같은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같은 곽지과물해변 산책로로 연결된다.
해안도로를 걸을때 왼쪽얼굴로 해변을 볼 때와 오른쪽 얼굴로 해변을 볼 때 각각 다르게 보인다.
게다가 날씨에 따라서도 물빛이 달리 보이는데
바다의 낯빛, 얼굴이 변하는것과 같은 인상을 느낄때가 있다.
쓰임과 용도가 궁금해지는 장소가 보이기도하고
사진 이름표의 무심한척 감성적인 말투가 웃겨 킥킥 대기도 한다.
화가 끓어오르는 글도 있어 지루할 새가 없었다.
지독하게 이끼를 얹은 돌무더기 밭을 봤을땐 유독 집중된 장소가 누가 이끼핀 돌들만 골라 저 곳에 던져 놓은건 아닐까 싶었다.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많은 수식어를 달아 설명해도 표현될것 같지 않은 바다였다.
선운정사의 불빛 축제가 보고 싶어 찾아갔는데 비 때문에 하지 않는다고 붙어 있었다.
앞에 돌에 손을 얹은 다음 들어서 무게를 느낀후 소원을 빈 뒤에 무게를 다시 쟀을때 더 무겁게 느껴진다면 소원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하는 내용의 판넬이다.
첫째도 둘째도 무겁고 무겁다.
남근석은 종종 보았지만 여근석은 처음 보았다.
출산의 신앙은 참 원초적이다.
단순할수록 강력한 신앙의 힘을 받게 되는건지도 모르겠다.
불빛이 점등된 절을 보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 불빛을 켜가며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뭐든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수틀려도 수를 짜낼 건강한 의미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어쨌건,소원이라 함은 첫째도, 둘째도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빌게 된다.
그리고 살짝 욕심을 부려 개인적인 희망사항을 건강 뒤에 꿰어 둔다.
'그러니까 말이죠, 안들어주셔도 되는데 그래도 만약에 들어주신다면 말이죠 숙덕숙덕숙덕 ....'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고 있는 이틀째 날도 저문다.
오늘은 게스트 하우스 사람들이랑 맥주를 먹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