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7
- 트로피칼 한림공원->협재해수욕장->제주도 현대미술관-> 오설록 티 뮤지엄->이시돌목장
/ 빠담빠담 게스트하우스
어제 밤에는 게스트 하우스 치맥 파티에 참여했었다.
누구나 처음 만나는 사람은 어렵겠지만, 내 경우엔 과하게 긴장을 하곤 한다.
사람이 많으면 더 그렇다.
혼자서의 첫 여행은 퀘스트를 하나씩 완료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수행목록중 하나가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보기 였다.
남자4명, 여자4명이 모이게 되었고, 내가 제일 연장자가 되어 있었다.
대충 모여도 적지 않은 나이를 실감했고, 20살을 맞아 혼자 여행을 왔다고 말하는 해 맑은 소녀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미소 같은 흐뭇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소등까지 자잘한 여행지 이야기, 하는일 이야기, 등등이 이어졌고 비가 꽤 내리는 밤에 다들 아쉬워하는 마음이 모여 근처 편의점에서 자유모임을 했다.
" 나는 백수야 "
여기 이곳 제주도에선 편안하게 이런 말을 꺼내는것을 보고 잔잔한 충격을 받았다.
뭐 어쨌건, 현재는 이렇다는 거야 라는 식의 말투는 그 동안 위축되고 숨기고 싶은 나의 한줄에 점 몇개를 더해 주었다.
나는 백수야......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을 덧붙여 신나게 떠들어 대볼 용기를 다짐했다.
누군가 핸드폰 불빛에 소주병을 얹어 그린랜턴을 만들었고 돌아가면서 고민들을 말하고, 좋은 말들로 위로를 건네준다.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의 유형과 종류의 스펙트럼이 쫘악 늘어진 기분이 들었다.
신기한 밤이었다.
9시경 게스트 하우스를 나와 트로피칼 한림공원에 도착했다.
야자수길, 산야초원, 협재.쌍용동굴,석.분재원,민속마을,사파리조류원,수석관,연못정원이 한데 모여있는 테마파크 공원이라서 간 것은 아니었고 동굴을 보고 싶다 라는 단순한 한가지 이유로 첫 목적지를 정했다.
크기가 어마어마한 설가타는 거북이가 아니라 공룡같은 느낌을 받았다.
부리로 먼저 철망을 짚고 발을 옮기는 앵무새의 움직임이 신기해 조류 공포증이 있음에도 신나게 들여다 보게 되었다.
'가시를 조심하세요' 문구가 수십개는 붙어있는 온실은 선인장왕국이었다.
몇십년에 한번 큰 꽃을 피우고, 꽃을 피운뒤엔 기력이 약해서 서서히 죽게 된다는 용설란.
죽을만큼 노력해라 라는 말을 용설란이 한다면, 말할 자격을 따져 골라 듣는 사람들도 한번에 고개를 수그릴것 같았다.
대단한 식물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식물,나무,꽃 등의 이름표를 붙여 둔다고 한들, 구경하고 나오면 원래 알고 있던 이름에서 새로 알게 된 것도 없는데 구경할때는 정말 열심히 읽게 되는게 식물 이름표다.
기가막히게 이름 생김 그대로인 식물을 만나 하소연을 해보았다.
" 다른 식물들도 너처럼 생긴대로 이름을 붙여주면 불러줄 이름이 많을텐데 "
제주도 하면 상징적으로 생각나는 공식 마스코트가 하루방일 것이다.
벚꽃잎이 내려앉은 하루방에게서 생기가 느껴지는것 같았다.
한림공원 안에는 튤립축제가 한창이었다.
튤립의 색깔마다 다른 꽃말이 있는데, 보라색 튤립의 영원한 사랑이 기억에 남았다.
마술같은 색이 보라색이라고 생각하는데, 보라색 튤립은 몇배 더 기묘한 색 처럼 느껴졌다.
제일 기대가 많았던 협재.쌍용 동굴이다.
칠흙같은 어둠에도 동굴은 어쩐지 신성한 분위기를 준다.
제일 좋았던건 관람방향이 잘 정해져 있어 표시된 관람로만 따라가면 한림공원안을 살뜰하게 다 살펴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도 봐야하고 뒤돌아 반대편도 봐야하고 오락가락하다 나오면 아 그건 못봤었네 꼴이 되버리는 몇 테마파크에 다녀올때면 입장료가 아까워지곤 했었다.
새를 좀 무서워 하는 편이긴 하지만 다른 관람객들도 없이 혼자서 조류관에 들어가니 더 무서웠다.
새들의 눈치를 보면서 쫄보처럼 찔찔 거리며 출구로 나왔다.
왕벚꽃 동산 구역이 정말 아름다웠다.
비밀의 정원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거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런곳에서 웨딩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잠깐이라도 결혼하고 싶었다.
멀지 않은곳에 협재 해수욕장이 있었다.
바닷물이 밀려오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쯤으로 가만히 기다렸다.
니가 오나, 오나, 오나, 하니 정말 발 끝까지 밀려온다.
밀물일때의 기다림과 같은 사람이 너였으면 좋겠다.
그 다음으로는 제주 현대 미술관에 갔다.
미술관의 정숙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건물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었고 본관은 김흥수 화백 상설전시와 설치 미술 몇작품들이 있었다.
특별전시관에 있던 설치가 예술이었다.
음악, 색, 오브제의 위치,등이 적절히 어우러졌을때 관람객의 오각을 자극하는 작품이 되고 그래서 각자의 상념을 예술작품에 투영할 수 있다는게 감명적이었다.
뭉돌의 부드럽고 까칠한 감촉을 느껴보면 우리네 할머니의 모습과 닮아보인다는 설치 미술품도 보고
야외 조형작품들도 재밌게 보았다.
아는 만큼 보이는게 아니라, 보고 있는 그대로 열린 해석의 자유를 주는 현대미술은 재밌다.
미술관 주변에는 ' 예술가의길 ' 산책길이 있었다.
파주의 헤이리 마을을 생각나게 했다.
예술가들의 집.
덧붙여 아주 멋진 집.
분관 전시실은 박광진 화백 상설전시로 되어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오설록 티 뮤지엄에 갔다.
싱싱한 초록색을 보니 눈이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 저기 사진찍는 사람들 구경하는것도 재미있다.
도저히 따라하지 못할 포즈들을 척척하고 꺄르르르 웃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따라 웃게 된다.
유명하다는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입안에 녹차밭이 펼쳐진다는 누군가의 후기글 처럼 쌉싸름한 떫은맛이 기분좋게 감쌌다.
일명 녹차잼을 실제로 보니 맛도 궁금해져서 살까 말까 하다가 ' 아니야 난 언제 집에 갈지 몰라 ' 중이기에 구경 하는것으로 그쳤다.
제주도 전체 지도를 항상 옆에두고 다니는데, 지도상에 '성이시돌목장'이 크게 자리잡고 있어 목장이라 함은 말도 있고, 양도 있고, 소도 있고, 푸른 대지와 초원에 뛰어다니는걸 볼 수 있을것 같은 기대로 찾아갔다.
도로 옆으로 제법 큰 푸른 초원과 말들이 보였지만 운전중이라 제대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성이시돌 관리자센터' 에 가서 목장구경은 어디서 할수 있나요 물어보니 센터 옆 작은 사육지를 가르쳐주었다.
조금은 실망했지만, 머리를 내빼고 풀을 뜯는 말을 찬찬히 관찰하는것도 괜찮았다.
말굽으로 땅을 쳐대며 울리는 무게감과 씰룩거리는 입매를 아주 가까운 곳에서 보았다.
멀리 두눈 가득 담고 싶었던 평야의 여백미 대신 한마리의 말을 자세히 보았던 시간이었다.
가족단위로 여행온 사람들이 오늘은 부러워졌다.
집에 있는 엄마와 동글이, 늦게까지 일할 잘생긴 동생 생각이 났고,
무얼 보시던 그렇게 만져보고 쓰다듬어 보고, 찬찬히 보던 아빠를 기억해냈다.
어린시절 아빠는 박물관에서 시간을 길게 늘여썼고, 나는 미술관에서 길게 늘여쓰는걸 좋아한다.
그래, 닮았었다. 아빠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