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6일차

2016.4.10

by 사막물고기

- 동문재래시장-> 올레18길 일부 / 봉쟈 게스트하우스


렌트차는 반납했고, 뚜벅이가 되었다.

나처럼 병적인 길치에 방향치가 어딘들 제대로 찾아 다닐 수 있을까 싶었지만, 네비가 알려주는대로 따라갔던 잔치는 끝났다.

볼거리가 많은 여행지에선 선택과 만족의 기로에 서서 늘 머리를 싸맨다.
일상의 노곤함과 피로를 벗기 위해 여행을 떠나면서 여행지 고민을 새로이 만든다.

차가 있을땐 어느 명소를 찍고 가야 주변 명소까지 최대한 많이 볼 수 있을까 하는 욕심이 앞섰었고 본격적으로 직면해야할 제주버스 노선과 기다림을 생각하니 올레길만 따라 걸을까도 싶은것이다.

뭐, 버스타고 길 걷고 되는대로 해보자고 생각해서야 어지러이 널려있던 관광지도를 접어 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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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묵은 레인보우인제주 게스트 하우스는 깨끗했고, 아침 조식도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

어제까진 채비를 다 갖추고 조식을 먹고 바로 나갔는데 피곤하기도 하고, 침대도 깨끗해서 몇십여분 더 빈둥거린뒤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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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가까운 동문시장으로 가는길을 스텝에게 물어보니 오른쪽으로 쭉 따라 나가면 걸어서도 도착할 수 있다 했는데 역시 내가 그렇지, 반대방향으로 한참 가고 나서야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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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도착할 거리를 30분 버스 기다리고, 빙돌아 동문로터리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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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명소 답게 특산품,관광상품등이 대부분이었고, 대부분의 시장에서 파는것들도 물론 판다.

생글생글해 보이는 천혜향이 먹고 싶어 살까 말까 망설이다 말았다.
과일은 '누가사준과일'이 최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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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꿀빵 ,각종 초콜렛, 크런치,젤리,타르트,과일칩 등등 간식거리가 좌판 가득 널려 있었는데
항상 제주 여행에서 돌아오면 내가 좋아한다고 달달한 간식 몇가지를 챙겨오던 엄마 생각이 났다.

나는 어쩌다 한번 선물하고 생색은 잔뜩 내곤 하고 엄마는 늘 자식들것은 먼저 담아두고 선물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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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봉 주스를 사서 18코스 시작점인 산지천마당에서 홀짝거리며 오랜만에 엄마와 통화를 했다.
안부를 나누고 마지막은 "니팔자 좋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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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점에서 스탬프는 찍고 시작해야 기분이 날 것 같아 500미터쯤 가다 다시 돌아와서 스템프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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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의 방향을 알려주는 표식을 '간세'라고 한다.
파란색은 정방향, 주황색은 역방향에서 올때 보는거라고 한다.(올레가이드북 제주시/서귀포시 각권5000원, 도합 10,000원을 들여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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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제주항여객터미널쪽으로 길로가 표시되어 있어 무턱대고 가느라 간세표식을 잘 확인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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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항 6부두를 지나 출입통제 푯말을 보고서야 '아 길을 또 잘못들었구나 ' 탄식했다.
자신없고 이미 작아질대로 작아져 의기소침을 넘어서 의기소멸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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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되돌아와 간세 표식을 다시 만났을때 얼마나 반가웠던지 아마 잘못찾아간 길까지 이어 붙이면 18코스는 완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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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식과 표지판을 만날적 마다 내가 맞게 가고 있다고 다독여주는 안심처가 되었고, '바른길' 확신이 들고 난 뒤에 경관이 눈에 들어왔다.

불확실한 위기감의 길에선 마음편히 눈에 담아 둘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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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적으로 결정한 올레길 걷기에서 캐리어는 짐짝이었다.
처음부터 코스투어를 염두해 두고 짐을 꾸린것도 아니었고, 이런 불량함도 내 죄이고,업이고, 잘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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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고 가다 여의치 않으면 이고 지고 어떻게든 해보자고 생각했다.
간세표식을 볼때마다 조금씩 힘이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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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봉정상으로 올라가면서 수행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캐리어도 내 짐, 크로스백도 내 짐
내 삶도 짐이자 업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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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두고 가는것도, 내려 놓는다는 것도,
뺄건 빼고 다시 골라 꾸리는것도,
자신만이 할 수 있다.
알면서도 같은 실수에 들고, 잘못된 길과 방향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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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꼬라지가 딱 그랬다.
준비 하나 없이 덜컹거리며 걷고 있는 폼새와 오늘의 여정이 곧 나였다.
울컥 거렸고, 비장해지지 않으면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하는거지 ?' 하는 생각에 다시 빠져들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겠지.

물집때문에 발이 아팠다.
꺾어신고서 계속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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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봉 정상을 넘어 별도봉 입구쪽으로 가는길에서 건너 바다를 내려다보니 잘못들어간 길이 저 길이었구나 함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돌아 찾아왔으니 오늘은 잘한거다.

모처럼 자신에게 칭찬을 해본다.
어떤게 잘못되었던건지는 바른 길을 가고 나서야 보인다.

삶도 아마 그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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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을동 입구에 들어서면 해안도로와 유채꽃밭에 감탄이 나온다.
그리고, 빈터와 돌담은 4.3 항쟁 때 마을 전체가 불타 없어진 곳의 집터였다.

'1949년 1월4일과 5일 국방경비대 제2연대 1개소대가 이틀에 걸쳐 곤을동 주민 24명을 학살하고 마을을 모두 불태웠다'
유적지의 설명을 보면서 머리끝이 쭈뼛거렸다.

끔찍한 과거와 아픔의 역사를 묻고 있음에도 야속하게 꽃은피고, 계절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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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 구석 제주도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 사이에도 올레길은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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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할아버지 두런두런 모여 이야기하시는 모습, 빨래줄에 걸려있는 이불, 사람사는 곳 비슷해보여도 마을은 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느낌까지 들었다.

한적함,평화로움,같은 단어를 마을로 옮기면 여기와 같을까 ?

걸을만큼 걷다가 떨어지는 동네쪽으로 숙소를 잡자는 생각이어서 당일예약에 대한 불안감은 계속 안고 가야했다.

18코스 절반 조금 더 못걸은 거리지만,
오늘은 지쳤고, 눈에 나타난 게스트하우스 발견에 바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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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충동적인 선택이었는데 아기자기하고 예쁜 게스트하우스가 나타나서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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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짐을 풀고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이 되면
'오늘하루 무사했구나' 하는 안도감이 찾아온다.

실존적 안위에 대해 점점 진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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