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11
- 올레18코스 나머지 완주 ('각인'무인카페)-> 701번 버스 (조천체육공원~남흘동) -> 힐섬카페-> 올레20코스 절반 / 여울목 게스트 하우스
가능하면 현실적인 고민들은 하지 않기 위해 주문을 왼다.
' 별 수 없다 별 수 없다 '
내가 하는 고민은 현재도 어쩌하지 못하고 나중도 알 수 없는 불안함에서 나오는게 대부분이다.
내 몸 하나 잘 건사하기 위해 누구가의 손길하나 닿지 않는 곳으로 홀홀히 떠나왔는데,
몸과 마음은 너무도 쉬이 지치고, 다시 애정을 구하고 상처를 주고 받는 전쟁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치밀어 오른다.
아침먹고 잠을 잤던 곳을 나와 돌아다니고 다시 잘 곳을 알아보는 생활패턴은 이제껏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방식의 하루살이였다.
그래서 이전의 생활로, 살아왔던 익숙함을 몸과 , 머리와, 마음이 아우성 치는 중이리라.
아침 조식을 챙겨먹으면서 다시 한번 다짐한다.
상심한 마음을 가지치기를 하고, 씹어 넘기고, 어쨌건 퇴실시간이 되면 나가야 하는 게스트하우스의 방침대로 떠돌 운명을 얻게 된다.
어제 다 완주하지 못한 18코스의 후반부를 향해 걷는다.
간세이정표에게 밤새 잘 잤는지 안부를 묻는다.
새각시물 해안을 끼고 도는 길은 편했다.
오전 날씨는 그리 좋지 못했다.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의 구름이 끼었고 해가 비치지 않는 바다는 음산하고 추웠다.
제주도에 많다는 3가지중 2가지 돌과,바람을 온 몸으로 느낀 하루가 되었다.
올레18길은 파란,주황의 간세 이정표 말고도 감색, 갈색의 순례자의길 이정표도 같이 묶여 있었는데 절을 지나는 길목에 들어서야 같은 길을 걷게한 이유가 찾아졌다.
혼자 둘러보게 된 사찰은 정갈한 느낌을 준다.
보물 1187호 불탑사 오층석탑을 보았다.
기황후가 세운것이라는데, 이 탑을 세우고 아들을 얻게 되자 아들을 원하는 여인들이 기원하는 곳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좋은 인연을 기원하는 탑 같은건 없는가 모르겠다.
잠시 해안에서 멀어졌던 길에서 이정표는 다시 바다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와 양력생일이 똑같은 사람을 추억했던 비석글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바다의 품으로 사랑하는 이를 돌려주고 난 남은 사람의 심정은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검은 현무암석들을 밟고 밟아 멀리 닭모루가 보이고
사방에서 관통하는 바람의 정점을 느끼고 내려갔다.
조천리 마을로 들어가기전에 폐허가 된 빈집이 있었는데, 경찰의 특별감시 구역이라고 붙어있었다.
이유가 뭘까, 간첩 ? 귀신 ?
올레길 이정이 즐거운 이유중 하나는,
해안도로만 쭉 따라가는것이 아니라 근접의 마을안을 통과하면서, 많은 집들을 볼 수 있다는거였다.
사람이 모여사는 곳은 쉬어갈 수 있는곳 역시 많다.
똑같은 집이 없었다.
크건,작건 집들은 생김새,꾸밈새가 하나하나 달랐다.
집은 곧 주인의 정체성이다 하는 말을 아파트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내부 인테리어는 그 집을 방문해야만 알 수 있다)
직접 들어가보지 않아도, 이 집 주인은 어떤분일까 하는 궁금증을 던져 주는 낮은 담벼락의 제주집 구경이 솔찬한 재미가 있었다.
올레18길의 막바지쯤, 무인카페가 있었다.
카페의 이름은 '각인'이고
주인이 운영할때도 있지만, 내가 갔을땐 무인운영중이라고 되어있었다.
쌀쌀한 해풍에 훌쩍거리고 다리도 아팠던 터라 쉬어갈 곳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반드시 들러 갔을만큼 감성적인소품과 분위기가 있다.
작은 카페에서 혼자 음악을 듣고, 주인장님이 찍어놓은 사진들을 구경하고, 컵라면과 초코바를 셀프계산하고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나만을 위해 공간을 내어준 따뜻한 착각에 빠졌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방명록을 남겨두고 가면 주인은 밑에 정성스럽게 댓글을 적어주고 있었다.
해서, 나도 글을 남겨 보았다.
앞의 댓글을 보고 적다보니 카페 주인의 세심한 마음이 생각나 장문의 하소연같은 방명록을 적게 되었다.
유채꽃밭의 정경을 찍은 엽서와 우편값을 셀프 계산해 샀다.
엄마에게 글을 적었고,
달빛 우체통에 넣어두었다.
내가 없는 자리에 유채꽃 엽서와 마음의 글로 엄마 곁에 가고 싶었다.
조천리 곳곳에는 만세 운동의 주역들이 살던 집터 안내판과 항일운동 벽화가 그려져 있다.
드디어 올레18길 마지막 완주 스탬프를 찍었고,
자축과 앞으로도 열심히 걸어보자 하는 다짐으로 근처 힐섬카페에서 커피와 호두밀빵을 먹었다.
이어지는 올레19길-북촌포구에서 내륙쪽으로 연결되는 길은 인적이 드물어 여자혼자 걷기 위험하다 라는 말이 가이드북에 적혀있어 걷지 않기로 했다.
조천체육공원에서 701번 버스를 탄 뒤 남흘동에 내려 올레20길 시작점으로 내려갔다.
그놈의 스탬프가 뭐라고, 한번찍고 시작하게 되니 스탬프를 찍겠다고 왔던길도 되돌아갔다.
김녕마을을 지나는데, 금속공예벽화마을이라는 안내판을 보았다.
집 곳곳에 금속으로 작품이 수놓아져 있었다.
마을 전체가 전시관이 되고, 간세 표식은 관람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김녕 성세기 해변의 모래알은 곱고, 바다는 에메랄드와 크리스탈을 잔뜩 깨뜨려 놓은것 같았다.
파도는 적당히 올라와 있어, 요트라도 띄워져 있으면 끝내주겠다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 요트 클럽 건물들이 몇 있었다.
평지와 다름없는 고도에서 산등성이를 넘는것 같은 지형을 걸어 갈 수 있다.
도심에선 어디에서 이런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성세기 해변에서 풍력발전기와 가까워질수록 해변은 사라지고 파도가 성이난 모습을 보게 된다.
바람이 파도의 화를 돋구고, 바람을 잡아채는
풍력발전기는 무시무시하게 거대했다.
월정리 마을로 들어서게 되면
'어때 나 예쁘지 않아? ' 뽐을 내는 집들이 보이는데, 강한 개성처럼 집보단 가게가 많았다.
수제햄버거집에,
약국에,
호프집.
찍어두고 싶은 집들이 많은 마을은 근본없는 이름이지만 월정리가로수길 같은 느낌을 준다.
나에겐 눈요기거리, 다른 사람들에겐 사진찍을거리가 많은 월정리해변은 여름날 휴가철에 얼마나 붐비게 될 지 상상하게 했다.
멋스러운 카페와 음식점들도 많아, 최신식 해변에 근접되어진것만 같다.
올레길 이정표에서 멀지 않은 쪽으로 게스트 하우스를 구하는 중인데, 오늘은 가이드북에 표시된 '여울목 게스트하우스'에 도착 몇십분전 당일 예약을 했다.
이렇게 오늘도 무사히 밤을 보낼 곳으로 당도했다.
피곤에 절일대로 절여진 배추가 되어 찌질찌질 몇자씩 끄적거리는 폼이 갑자기 웃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