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12
- 올레20길 나머지 코스완주 (쉬멍카페,마농 해물라면) -> 해녀박물관 -> 올레21길:별방진부근 / 담너머그곳에 게스트하우스
꿈으로 또 한 세상을 살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내가 요즘엔 꿈도 잘 꾸지 않는다.
그렇다고 잠을 깊이 자고 일어나는것도 아니다.
중간 중간 깨어날때가 많고 아침마다 눈이 퉁퉁 붓는다.
발은 당연하거니와 종아리는 돌덩어리 같아 푼다고 주물러도 풀어지지도 않는다.
힘들다.
산책이라면 꽤 오래 걷는 편이라고 자신했는데,그냥 걷는 산책과 떠돌이 여정같은 올레길 걷기는 또 다르다.
하루에 한 코스씩 완주하고 싶은건 욕심이고 절반씩 끊어가는 식으로 여유있게 가자고 생각하고 움직여도 막상 이 앞에 놓인길을 생각하면 서두르게 된다.
짐가방 덕분에 속도도 잘 나지 않고,
한번씩 고질병처럼 올라오는 오른다리 고관절도 삐걱 거린다.
그럼에도, 걷다보면 내 자신이 자랑스럽고, 완주 도장을 찍을땐 성취감도 느껴진다.
약간의 고생담이 섞인 하루를 뒤돌아보면 '그래, 열심히 했지 뭐 .' 하며 어제도 내일도 생각할 것 없이 오늘의 마침표만을 떠올리게 된다.
사람은 몸이 고달파야 잡생각이 안드는가 보다.
오늘은 날씨가 많이 흐렸다.
제주도 하늘은 흐렸다가도 금새 밝아지기도 해서 큰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친구들 말로는 비소식이 있다고 조심하라 하니 한바탕 쏟아지긴 하는가보다 생각했다.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그 전까진 최대한 걸어가야 하는게 당분간,오늘을 사는 방법이었다.
경사가 심한 오르막은 없었지만, 숲길도 많고, 돌길도 많고, 비포장 도로도 많았던 코스였다.
가방도 그만큼 자주 내 등에 오르락 내리락 하게 되었다.
통신을 담당했다던 옛 군사시설 좌가연대를 지나
평대리로 넘어오게 된다.
이 마을의 수확품종중 당근이 유명하다는데, 그래서 인지, 당근 캐릭터가 그려진 벽화도 있고, 카페들 마다 당근 수제 케잌을 팔고 있었다.
쉬어갈겸, 쉬멍 이라는 이름의 카페에서 당근케잌과 커피를 마셨다.
평대 옛길을 넘어가면서 무늬도, 갈기도 멋있는 말을 보았다.
바로 옆에 주인 아저씨도 계셨는데, 말을 하고 사진을 찍어야 하나 그냥 찍어도 되나, 고민하다가 한방 찍은 사진에
" 이게 얼마짜리 말인줄 알고 사진을 찍습니까!" 하여 놀랐다.
장난으로 하신 말씀이었고, 방송 몇번 탔던 것은 사실이란다.
돌과 잡풀이 우거진 넓은 들판을 뜻하는 제주어 '벵듸'에서 이름붙여진 벵듸길을 지나
세화리에 접어들었다.
5,10일에 열리는 세화오일장은 열리지 않은 날에 만나게 되니 폐허가 된 공장처럼 보였다.
날이 되면 사람과 재화가 차고 북적거릴 거라고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시장의 흥을 그려본다.
파도가 점점 빠르고 높아졌다.
오일장 근처의 포구에서 파도가 튀겨내준 물방울이 얼굴에 닿았다.
세화리 해변쪽에 오면 빈티지 하고 예쁜 소품들과 가게들이 있다.
날씨도 꾸물거리고, 얼큰한 라면과 막걸리가 생각나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한 참새처럼 몇걸음 가다가 되돌아와 마농 가게에 들어갔다.
이런 날씨에 혼자 술까지 먹으면 내 풀에 울지 몰라 해물라면만 먹었다.
드디어 올레길 20코스를 완주하고, 빼먹지 않고 완주 도장과 21코스의 시작 도장을 같이 찍었다.
바로 근처 해녀박물관에도 들어갔다.
관람 시작전 영상관에서 영상을 보는데,
이어도 사나 노래를 부르는 해녀의 음성을 듣고 눈물이 찔끔찔끔 났다.
대충 ' 우리 어머니는 해도 달도 없는 날에 날 낳았는가, 어찌 이리 힘든일을 시키는가 ' 하는 가사였는데, 그 한서린 울먹거리는 음성에 내가 대신 울게되버렸다.
숨비소리 한번에 자식을 키우고 두번에 부모를 모셨다는 제주 해녀의 고달픈 삶의 무게 앞에서 내가 힘들다고 하소연할 일이 뭐가 있을까 싶었다.
고생많았던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 이제야 꽃다워 질 수 있는 여자의 생은 어머니들의 희생과 눈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해녀들은 나처럼 도망칠 곳도 없었으리라.
깊고 찬 바닷속 밖에.
그 물속에서 얼마나 많은 멍울을 삼키고 숨비소리를 울렸을까.
숙연하고, 생의 무게를 인내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관람이었다.
해녀박물관을 뒤로 하고 21코스를 향해 계속 걸어갔다.
우도에 접근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하도리에 진을 설치하고 성곽을 쌓았다는 별방진을 보았다.
낮은 제주 돌담들만 보다가 별방진을 보니 많이 높아보이기도 했다.
성을 쌓을때 흉년으로 기근이 심해 부역하던 장정들이 굶주리다, 인분을 먹다가 하면서 쌓은 성곽이라고 한다.
한 두 방울 떨어지는 비가 점점 잦아지기 시작하면서 부랴부랴 근처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내었다.
다행스럽게도 길바닥에서 비를 맞는 일은 피하게 되었다.
방은 따뜻하고, 옆방에선 기타를 연습하는 소리가 종알 종알 넘어온다.
부왁 하는 비오는날의 바다소리, 창문을 때리는 빗물소리, 음악소리, 여러소리가 녹아내리는 저녁이었다.
노곤노곤함이 올라오지만 , 달다.
비오는 날에 음악을 틀어주는 옆방손님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