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13
- 올레 21길 나머지 완주-> 섭지코지-> 커피박물관 / 도시락 게스트하우스
밤새 비는 내렸고, 고등어 조림 저녁을 먹고 자라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언니의 따뜻한 챙김도 뒤로한채 잠에 골아 떨어졌다.
자다 깨다 하면서, 비가 언제 그칠까 내일 퇴실시간에 맞춰서 나갈 수 있을까, 계속 비가 온다면 어디에서 몸을 부벼야 하나 하는 걱정을 하며 까물까물 잠을 청했다.
방바닥의 온기가 너무 좋아, 침대는 버려두고 껌딱지 처럼 바닥에 딱 붙어 있었다.
새벽보다는 아침이, 조식을 먹고 난 뒤부터 차츰 차츰 빗방울이 가늘어 지다가 그쳤다.
싱싱한 초록 채소에 키위와 감귤이 썰어진 샐러드, 바삭 바삭 구운 토스트, 계피향이 감도는 수제 당근잼, 새큰한 수제 키위잼, 잘게 썰어 노릇하게 부친 감자전과 스크램블, 향긋한 커피가 한 상 차려진 조식을 사진에 담아두지 못한게 아쉬웠다.
잊지못할 아침상차림이었고, 수제잼 만드는 방법도 물어보고 싶었다.
쭈뼛대는 낯가림에 입에서만 맴돌다 쏙 들어가버렸지만.
제주도에와서, 만성비염인 내가 코를 훌쩍거린 일이 없다는게 문득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코딱지도 잘 끼지 않는다.
좋은공기덕에 코로만 숨을 쉬어도 양껏 편했다.
비가 오고 난 뒤의 공기는 더욱 그랬다.
마치 푸른 산소방울이 동동 떠다닐듯 눈에 그려질 진한 상쾌함을 느꼈다.
유채꽃에 조롱 맺힌 물방울이 마냥 싱그러워 보였다.
흙먼지 날리지 않는길, 말갛게 세수한 꽃과 잡초들을 보는것 까진 좋았는데, 곳곳에 침수된 길들이 있어 지나가기가 영 불편했다.
하도해수욕장 부근을 지날때는 해가 완전히 올라와있어, 오랜만에 쨍한 햇볕아래서 걸었다.
그러다 다리 통증도 올라오고, 땀과 짠내에 절여져 정자에 벌렁 누워 숨을 골랐다.
지미봉 밭길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고생길의 시작이었다.
진흙 물웅덩이를 피해가다가 미끄러지면서 신발이 퐁당 빠졌고, 이때부턴 젖은 발로 꿉꿉하게 다니게 되었다.
지미봉을 올라가는 길과, 우회하는 길로 나누어지게 되었는데, 우회하는길에 다시 물웅덩이가 보여 지미봉 오름 길을 택했다.
캐리어 때문에 가능하면 오름쪽은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지만, ' 완만한 오름에 20여분이 되지 않아 금방 오를 수 있다 ' 라는 팻말을 보고 괜한 도전의식이 생겨 오름을 택했다.
땀은 뚝뚝 떨어지고, 숨은 헐떡거리고 등에 짊어진 캐리어는 나를 뒤로 나자빠뜨리게 하려는지 온 힘을 실어 잡아채는것 같았다.
어제 해녀박물관에서 들었던 '이어도사나'의 구절을 떠올리면서 시름 시름 올라갔다.
지미봉 정상에 올라, 바람과 풍경을 눈에 얻고 나니 고됬던 잠깐이 잊혀졌다.
푸른 바다와, 밭을 끼고 사는 옹기종기 낮은 집들이 참 유순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몇년전 남산에 올라 빼곡히 차있는 도심을 내려다보면서 이 많은 집들 중 내 이름을 새길 집이 없음에 잠깐 서글펐는데,
숨이 통할것 같은 여백을 끼고 사는 제주도 풍경을 보니 이 곳에 점하나 찍고 천천히 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올라갔던것 만큼 내려오니 지미오름 시작점으로 도착하여 있었고, 올레길21코스의 나머지 길을 향해 계속 걸어가 완주 스탬프를 찍고 소기의 뿌듯함에 젖었다.
21코스를 완주하는 동안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넘어왔고, 다시 1코스부터 이어지는 올레길을 계속 걸을 수 있었다.
1코스 초반에 오름이 2개나 있다하여, 해안도로쪽으로 이어지는 1코스 중반부터 걸어볼까 생각하면서, 목화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할아버님 한분이 말을 걸어오셨다.
이곳 휴게소 근처에 집이 있고, 자주 이 휴게소로 마실나오듯 나온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어디서 왔는가, 나이는 몇인가, 어쩌다 혼자 여행을 하는가, 등등을 물으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여행지 추천을 해주신다 하여 지도에 표시를받으며 오늘 나머지 일정에 대해 같이 다니자고 해주셨다.
오늘의 나머지 일정으로 걸으려 했던 1코스 광치기해변은 할아버님의 차를 타며 가는 길에 눈으로 지나쳤다.
서귀포시쪽으로 넘어오면서 날이 잔뜩 흐려지며 얕게 빗방울이 내리기도 했다.
이런날, 한번쯤 다시 가려고 했던 섭지코지에, 귀한 어르신을 만나 편하게 가게 되니 참 신기하고 감사했다.
예전에 엄마와 왔던 섭지코지와는 참 많이 달라져있었다.
으리으리한 리조트와, 인공적인 개발이 만들어져 있었고, 자전거,세그웨이,마차,미니카 등을 대여하여 올라갈 수 있는 대여소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풍경도 다시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섭지코지 주변의 기암바위들과 절벽으로 힘차게 달라붙는 파도를 보니 속이 뻥뻥 뚫렸다.
괜히 한번 뛰어들어보고 싶다가도, 높은곳에서 내려다본 섭지코지 전경에, 내가 얼마나 작고 나약한 크기의 존재인지 길을 따라오는 사람의 크기를 보며 다시 실감했다.
다음으로는 커피 박물관에 갔다.
할아버님 말로는 이 곳 커피가 맛있다고 하셨다.
야경의 건물 모습이 굉장히 멋질것 같은 아담한 건물이 있었다.
1층은 커피 박물관이라는 이름답게, 각종 로스팅 기계와, 그라인더,찻잔들, 커피에 대한 역사가 소개되어 있었고
2층은 발코니를 낀 카페로 되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메리카노를 나는 카푸치노를 시켜서 시원한 야외공기와 함께 마셨다.
혼자 커피와 빵을 먹고 있는, 방송화면에서보다는 조금 덜 귀여워보이는 이소봉 요리사도 보았다.
어르신들이 하는 말씀은, 비슷비슷해보여도 그분들이 살아온 방식이나 가치관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다.
여러 사람을 만나보라는 말까지는 비슷하였고, 누군가를 만날때 결혼이나, 장기적 인연에 얽매이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만나보라는 말씀은 조금 달랐다.
약자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 함은 아쉬울것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는데,
작은것 하나에도 센치해지고, 아쉬워하는 내가 잘 새겨 들은 말들의 반만 이라도 실천하게 되면 좋겠다.
그나저나 2층 침대의 사다리는 참 무섭고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