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10일차

2016.4.14

by 사막물고기

- 김영갑갤러리-> (오름카페) ->일출랜드(미천굴) -> 올레 5번코스: 곤내골 부근 / 달파란게스트하우스

반짝거리는 제주 아침 햇살이 반겨주는 기상을 했다.
눈이 부시다 못해 아릴정도의 쨍한 햇볕이 참 반갑다가도 얄밉다.
어제의 눅눅했던 옷가지들과, 살결이 바싹 바싹 마르기를 기대하며 이 햇살과 잔잔한 바람아래 마냥 널어져 있고 싶었다.

마른멸치, 볶음김치, 댕그란햄,계란후라이 하나가 들어있는 옛날 도시락 조식을 먹고 바로 나왔다.
제주의 밤은 길고, 낮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느낌이다.
그 덕분에 달밤이 좋았던 내가 아침일찍 서둘러 움직이고 싶은 리듬을 찾게 되었다.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701번 버스를 타고, 신산리에서 910 버스로 갈아타 김영갑갤러리에 도착하였다.

버스를 타다보면, 제주도 사투리가 들린다.
제주시와 다르게, 정류장근처에서 두리번대고 있으면 " 어디가시게~" 하면서 먼저 물어봐 주시기도 한다.
내가 타고자 하는 버스가 제대로 가는지 잘 확인받은후 올라탈땐 룰루랄라 콧노래가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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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30분 개관시작시간인데, 10분정도에 도착해 앞에서 입장시간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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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간 제주도만을 사진에 담아온 김영갑 선생님의 작품을 폐교였던 삼달분교를 개조해 갤러리로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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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진 곳이라 한결 평화롭고 안락해보이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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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릿한 거름냄새도 사방으로 통하는 바람과 함께 코끝을 스치니 나름의 구수한 향이 되었고,
반쯤 걸러진 햇살과 그늘이 간질여주니 소박하고 아름다운 정원에 와있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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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 선생님이 작업했던 공간 전시를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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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사랑하기 시작한 20대의 모습에서부터 루게릭 투병생활을 하고 돌아가시기 전까지의 모습도 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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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담았던 경치의 눈꼽만큼도 사진으로 표현되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는데, 일평생 아름다운 제주를 사진에 담기 위해 살아간 선생님의 사진을 보니 내가 찍는건 과히 사진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웠다.
(나 여기 왔어요, 하는 스탬프 같은거라고 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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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람을 알아야 한다고 했던, 회고록의 사진집을 보면서 선생님이 카메라를 통해 바라본 시선이 얼마나 애정깊은 정성의 산고 였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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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가 아닌, 자연인으로 녹아들어 제주가 곧 그 자신임을 , 그래서 그의 사진은 작품이자, 곧 스스로의 정체성임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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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제 막 감탄하기 시작한 이 땅을 선생님은 한 평생 사랑하고, 황홀의 절정을 담기 위해 애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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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반의 선생님 사진에 담긴 제주의 경관처럼 오래도록 바래지 않는 모습 그대로 지켜져야 할텐데 싶은 걱정과 염려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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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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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누비고 다니는, 잘 닦인 도로와 개발된 관광지의 제주가 아닌, 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제주를 발견하는 시선 하나를 얻고 가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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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찬찬히 김영갑 갤러리를 둘러보고, 작품집 한권을 다 보고 나오니 점심 때가 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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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바로 앞 ' 오름카페 '가 참 멋져, 홀리듯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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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주변으로 하나씩 카페촌과, 예술촌이 들어선다고 하는데,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될까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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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토속적인 음악과, 분위기로 꾸며진 김영갑 갤러리에서 제주 자연의 사진을 보고, 최신의 아트 카페로 넘어오게 되니 몇걸음새에 시간을 건너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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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910번 버스를 타고 일출랜드 정류장에서 내린후 150여 미터쯤 걸어 표를 끊었다.
어제 할아버님과 이야기할적에, 한림공원 관람도 좋았다고 하니 그렇다면 일출랜드도 가보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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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이 곳이 얼마나 많은 방송프로그램이 다녀갔는지 훈장처럼 프로그램명들이 달려 있었고, 런닝맨에서의 등장화면은 매 장소지마다 판넬을 세워두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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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존을 알리는 문구의 간판이 어떤식으로 사진을 찍으면 되는지 예시를 담아 보여주고 있었는데, 굳이 이런 알림판이 없어도 사진은 자기 만족이기 때문에 찍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즐기며 놀기 마련이므로 괜한 방해요소 같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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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성 판넬들을 좀 지우고 보면 꽤 괜찮은 곳이기도 하다.
울창한 야자수가 가려주는 하늘을 우리나라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아열대 정원을 지날땐 가보지 못한 태국 어디쯤을 지난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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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뿜어대는 분수대 앞에서 복분자 아이스크림을 깔짝깔짝 긁어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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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굴로 들어갔다.
천장이 낮은곳이 있어 허리를 바짝 수그려야 했는데, 똑똑 떨어지는 물과, 신비한 음악이 깔리면서 만화적인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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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촌 테마부지에는 똥돼지들이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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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르방은 귓볼을 만지면 재물운이, 눈을 만지면 권세운이 붙는다 하여 정성스럽게 쓰담쓰담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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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뜨거웠지만, 바람은 결대로 찬찬히 불고 있어 뒷짐지고 어슬렁 거리며 한량처럼 차분히 돌아보았다.
꽤 멋있는 조각품들이 많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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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들도 크고 건강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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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혀있는 동물들은 늘 애잔한 마음을 주지만,관람객은 반가워 해주는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한림공원이 더 낫더라 하는 총평을 끝으로 올레길5코스 시작점을 다음 행선지로 정했다.

910번을 타고 하천하동에서 내려서 701번으로 갈아탄 뒤 남원포구입구에서 내리면 됬었는데 910번 버스 기사님의 제주방언은 정말 알아듣기 힘들었다.

이곳 저곳 더 갈만한 여행지도 추천해주시는거 같고, 5코스를 걸으러 간다니까 걱정해주는 말씀도 해주시는거 같았는데 반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제주도 버스 기사님들은 친절하다.
앞자리에 앉아 요래 조래 물으면 제주도 전도사가 되신것 처럼 열심히 관광지를 골라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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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5코스 시작점인 남원포구는 올레안내소도 함께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오늘은 휴무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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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마을회관을 지나 큰엉쪽으로 가는 해안도로가 돌에는 남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골라 놓은 시와 잠언이 적힌 비석이 쭉 걸려 있었다.

바다라는 큰 표지를 두른 시집 한장 한장을 넘기면서 길을 걷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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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로의 시집이 끝나 있을때 내가 걸어온 곳을 돌아보게 되니 아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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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1에서 4코스를 포기한 이유와, 걱정을 달래주려는지 5코스 전반부는 캐리어를 끌기 좋은 길들이 죽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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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구간이 많은 5코스라
노냥 노냥 걷기에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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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어느곳을 가든 절정인 유채꽃은 어떤 배경에 덧씌워져도 지칠줄 모르게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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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감싸지지 않은, 거친 현무암석의 무덤같은 모습도 경이롭기만 했다.

자연은 꼬집어 말하기 힘든 소감과 감탄사를 받으면서 오래도록 가슴에 기억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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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리쪽 마을은 유난히 으리으리해보이는 집과, 독채형 펜션들이 보였는데,
괜스레 압도되는 부의 오로라에 기가 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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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마을에 큰손들이 입성하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거처는 곤내골 근처의 달파란 게스트 하우스로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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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예약했지만, 방도 혼자 쓸 수 있게 해주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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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인테리어에 책도 많았다.
빨래도 할 수 있었고, 옥상의 기다란 빨래줄에 힘껏 털어 널어놓을수도 있었다.

제주 떠돌이가 된지 자그마치 10일이 된 시점에 '이렇게도 살아질까 ' 하는 생각들이 살아지네 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다.
불확실한 물음에 답하는 법 1장의 반절 정도는 알수도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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