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16
- 소암기념관-> 이중섭미술관 -> 이중섭 거리구경->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작가의산책길(유토피아갤러리,덕판배미술관) / 별빛옥상 게스트하우스
개나리색과 감색의 이불보가 포근했던 잠자리였다.
어제는 소규모로 모인 게스트하우스 사람들과 맥주도 했고, 서로 좋아하는 노래들을 주고 받으며 들었다.
청승맞은 노래 리스트들의 연속이었지만, 20대 중반 나이의 사람들이 내가 아는 노래들을 꼽아가는것이 신기했다.
분명, 사연과 추억으로 옛날(?) 노래를 접하게 됐을건데, 나이와 살아온 역사는 달라도, 비슷한 감성은 노래로 연결되어 있다는걸 느꼈다·
비소식이 있었지만, 게스트하우스의 퇴실시간 시점엔 아직이어서 " 즐거운 여행들 되세요 " 제 할 말만 던져 두고 급하게 나왔다.
낯선사람들과 조우되던 어제의 감정들은 아침이 되고 보니, 영 불편해졌다.
몇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 소암기념관이 있어 둘러보기로 했다.
한국 서예의 거장이신 소암 현중화 선생님의 서체가 전시되어 있었다.
여러가지 호를 가지고 계셨지만, 스스로는 서귀소옹 (서방정토로 돌아가는 늙은이)이라고 담백하게 스스로를 낮추었다고 한다.
여러 사람의 추대를 받는 인품과,실력이 있어야, 스스로를 낮추었을때도 귀감이 되는 일화가 된다.
일상과 예술의 씀에 있어 작품과 연습의 경계도 없이 쓰는것이 일상이고, 일상이 곧 쓰는 생이었다고 적혀 있었다.
한 사람이 썼다고는 보기 힘든 다양한 서체와, 장문의 글이 적혀진 대지는 글을 쓰며 스스로를 깨워간 경지의 도달을 보는 것 같았다.
관람을 다 하고 나가는 길에, 자신의 이름을 방명록으로 쓸 수 있게끔 화선지와, 붓,먹이 있었다.
안내데스크에 계셨던 분이 이름을 적어보고 가라 하셔, " 잘 쓰지 못하는데요.. " 하며 쭈뼛대다 이름 석자를 한자로 쓰려고 하는데, 가운뎃 글자가 한참이나 생각나지 않았다.
자주쓰지 않으면 제 이름도 가물가물 해지는 때가 왔나보다.
소암기념관을 나가면서 부터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거리의 이중섭 미술관으로 옮겨갔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화가인 만큼, 관람객들이 많았다.
전시실 사진 촬영은 금지 되어있고,
복도에 걸린 사본의 작품 '소' 앞에서 포토존이 따로 있었다.
한국전쟁의 혼란기를 겪고, 일본인과 결혼을 하고, 반평생 가족을 그리워 하며 쓸쓸한 새벽빛 처럼 사라져간 이중섭의 일생은 작품마다 방울로 번져 있었다.
한국적인 일상의 소재를, 서구적인 표현으로 그려낸 현대미술의 시초지를 보는 것 같았다.
그의 아내와 주고 받은 편지에서, 절절한 생활고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수 있었다.
안타깝고, 아팠고, 짠했다.
3층 옥상에서 내려다본 비오는 날의 서귀동의 전경을 보면서,가족과 함께 지냈던 가난한 제주생활 몇년이 이중섭 화가의 행복기였다는 기록말이 다시 떠올랐다.
가족은 그렇다.
함께 할 적에 든 행복은 몰라도, 떨어져 있으면 난 자리의 허망함은 채울 수 없는 것이다.
제주의 홍대라는 이중섭 거리도 조금 둘러 보았다.
예쁜 악세사리와, 공예품이 판매되는 개성있는 가게점들과
주말이면 나온다는, 개인 판매상들이 프리마켓 처럼 좌판을 펴고 물건을 팔고 있었다.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팔고 있는 사람들은 한명 한명의 개인 예술가들이 되어 거리 미술관처럼 보이게 해주었다.
다음으로는 서귀포매일올레시장에 도착했다.
올레길 코스를 따라가다보면 자연으로, 생활현장으로 왔다 갔다 참 잘 짜놓았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감귤 타르트를 사서 먹었다.
1개 1000원하는 고급양과자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유명한 오메기 떡도 구경하고,
우리동네에선 보지못했던 꽃게 튀김도 보았다.
반질 반질 윤이나는 닭강정이 맛있어 보여 샀다.
검정색 비닐봉다리에 담아주는 시장표 포장이 정겨웠다.
빗방울이 굵어지고 있었지만, 우산을 쓰고서라도 돌아다니고 싶다는 여행자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유토피아로를 지나면서 산책하기 좋은 길목으로 접어들었다.
샛기정 공원에 있는 이승수 작가의 '영원한 생명 ' 이라는 조각품은 거칠고 버석한 표질감의 피사체가 비를 흡수하며 숨을 돌리고 있는것 처럼 느껴졌다.
레오나르 라치타의 '날개'는 연못위로 드리운 제목 그대로의 날개형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작가의 산책길 안에는 몇개의 갤러리들과 산책길 속 조형작품 45점으로 찬찬히 탐방하다 보면 많은 작품들을 만나고 느낄 수 있을것 같았다.
가정집을 미술관으로 개조시켜 놓은 시:집 프로젝트(유한짐)가 독특했다.
'집'을 이루는 방의 구분이 전시실에서는 주제를 구분짓는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제주의 미술관들은 '제주미술'이라는 별도의 장르가 있는것 처럼, 제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으로 전시를 기획한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서귀포미술협회에서 기획한 '서귀포의숲' 설치 작품은 낮고 웅장하게 깔리는 파도의 소리와 녹빛의 조명구가 어우러져 한마리의 해파리가 되어 깊은 심해로 내려와 있는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빛도 달도 내려앉지 못하는 깊은 바다가 마음의 고향이었다.
함께 참여하는 전시품으로 가장 대중적인 '소망쪽지'가 작품과 함께 얽혀진 방도 흥미로운 공간이 되어있었다.
전종철 작가의 '경계선 사이에서'는 여기 칠십리시공원과 참 잘어울리는 작품으로 보였다.
반듯하고 정갈한 돌을 밝고 가다보면, 전신이 비치는 거울을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거울은 문이 되어 열리게 되고, 가려져 있던 다음 돌길을 계속해서 갈 수가 있었다.
가림막 이전과 이후의 세계.
한칸을 넘어가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 작품이었다.
탐라선의 마지막 형태인 덕판배를 모티브로 2015년 11월 덕판배미술관이 되었다는 전시관도 둘러볼 수 있었다.
천치인 이형기 선생님의 도예작품이 상설전시 되어 있었다.
도예 작품이라 하면, 실생활적인 그릇,자기등으로 한정지어 생각했었는데, 이형기 선생님의 작품들은 조각상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우산으로도 가리기 힘든 비와 바람이 거세지고 있었다.
정자 지붕이 덮인 벤치에서 비바람을 피하는 동안에도, 평지의 보도블럭에는 수면막이 높아지고 있었고, 신발도 가방도, 옷도 차근 차근 젖어갔다.
넓은 공원에 혼자 고립되었다.
고래고래 소리질러도 아무에게도 가 닿지 않을 것 같았다.
운치있게 둘러보던 미술산책은 잠깐이고, 비가 오면 많은 부분이 궁상맞아 지는 것이다.
'혼자 산다는것'
비오는 날의 산책과도 같은 여정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