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17
- 올레6코스마무리 -> (외돌개) 올레7코스 완주 -> 올레8코스:대포동근처 / 아하게스트하우스
게스트 하우스의 창문을 열심히 흔들어 대던 비바람이 잠잠해지기 시작하면서 쉬이 잠이 들었던것 같다.
9시 뉴스가 끝나면 들어가서 자라고 했던 초등학교 시절 이후로 초저녁같은 잠자리에 들었던게 언제였을까.
소일거리 찾기도 지쳤던 밤에, 함께 방을 썼던 일일 룸메이트도 그러했나보다.
아무 말도 나누지 않고,눈도 마주치지 않은채 각자 열심히 잠에 취했다.
어제의 요란했던 한바탕 호우는 거짓말 처럼 달아나고, 다시 투명한 제주의 아침으로 돌아와있었다.
제주도엔 강아지가 많아서, 마을안에 있을땐 경계하고 짖어 대는 강아지, 별 관심 없는 강아지를 많이 마주치게 된다.
그러다 오랜만에 내가 주인인것 마냥 쫄래 쫄래 쫓아와서 배를 벌렁 까고 아양을 부리는 강아지를 보았다.
복실복실한 털에 머루 열매는 끼워 놓고 좋다고 드러눕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삼매봉을 오르지 않고, 바로 길로 가로 질러 얼마 남지 않은 올레6코스를 마무리 했다.
다른 코스에 비해 그다지 길지 않은 거리였는데, 길에서 만난 비로 가장 오래 걸렸다.
완주 스탬프를 찍으면서, 어제의 고생길이 다시 사무치며 떠올랐다.
7코스는 외돌개를 끼고 쭉 둘러보듯 산책하는 길로 이어진다.
은비늘이 덮어진듯, 눈도 제대로 못뜰만큼 반짝임을 과시하는 삼매봉 앞바다였다.
자연이 빚어 놓은, 돌 수영장 같은 모습이 기이해보였다.
실제로 여름이면, 여기서 많이들 논다고 할아버님이 먼저 말을 걸어 주셨다.
그리고 , 차로 같이 관광지 돌자고 해주셨는데,
걷겠노라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어른신들과의 짧은 만남이 이어지고 있었다.
중국어가 사방으로 들리고, 그만큼 중국인 관광객들이 참 많았다.
150만년전 화산이 폭발할때 만들어졌다고 하고, 고려시대 말 최영장군이 범섬에 숨은 원나라의 잔류 세력을 토벌할 때 이 바위를 거대한 장수로 변장시켜 장군석이라고 부른다는 외돌개였다.
주변이 대장금 촬영장소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숲속을 산책하듯 바다 전경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제주도에 온 뒤로 이제서야 천혜향을 사먹어 보았다.
어제 비로 신발이 푹 젖은채여서 중간 중간 발을 말리며, 천혜향을 까먹었다.
외돌개를 한바퀴 쭉 돌아 이어지는 길은 사람손길이 많이 보듬어진 길이었다.
길 옆으로 카페,리조트, 갤러리들이 많았고,대한민국 어딜 가든, 카페없는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뷰크레스트라는 갤러리 카페를 둘러보았다.
시원상 작가의 개인전이 전시되어 있었다.
탁트인 바다를 전망에 둔 카페의 분위기와 찰떡으로 어울릴법한 싱그러운 색감의 유화를 보았다.
해안 절경 안의 작은 비밀의 숲에 온듯한 느낌을 그림이 만들어 주고 있었다.
대륜동 해안 올레길로 접어 들었고, 이 앞에서 올레7코스를 아끼고 정비하는 단체 사람들을 우르르르 만났다.
골이 깊다는 뜻의 '속골'은 수량이 매우 풍부하고 골짜기가 깊은 계곡이 바다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수봉로를 지나
동글동글하고 크고작은 뭉돌이 많은 공물 해안을 지났다.
해녀문화가 유명한 잠녀 마을인 법환마을에 도착했을때, 점심을 먹고 가라고 주문을 거는 듯한 가게의 글귀를 보고 들어갔다.
끼니를 떼우는 식이 이렇게 충동적일때가 대부분이었다.
걷다가 지치면 카페에 들어가 음료를 마시며 다리를 펴고,맛있어 보이는 음식점들도 한번씩 들어가고, 누군가의 의사를 물을 필요 없이 멋대로 부리는 사치가 참 편하고 달큰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길은 다소 험했다.
'일강정바당올레'라는 이 코스는 기우뚱 기우뚱 균형을 잡으며 돌들에 몸을 지탱하며 가야해서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그래도 제주올레와 자원봉사자들이 더 험하고 뾰족뾰족한 바위 대신에 둥글고 딛기 좋은 돌들로 골라 메워 놓은것이라고 한다.
그 덕분에 나처럼 초짜 걸음꾼도 가볼 엄두를 내지 않았을까 싶다.
참 감사한 마음들이다.
바당올레길이 끝나면 서건도 앞바다를 끼고 갈대밭과 숲길이 이어진다.
여기서 부터는 부드러운 흙길이 발바닥을 도톰하게 받들어주어 걷기 편해졌다.
7코스의 중간 지점 풍림리조트를 지나,
바로 근처의 바닷가 우체국에 도착했다.
자그마한 정자에 우체통도 있고, 엽서함도 있었다. (엽서는 없었지만)
바람이 불면서, 사람들이 매달아 놓은 나무 소망패들이 짤각짤각 거리는 소리가 기분좋게 귀를 간지럽혀주었다.
강정천 근처에 주상절리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지대가 나타났고, 8코스를 걷게 되면 더 자주 보게 될 주상절리의 짧은 예고편 같은 형상을 마주했다.
강정마을은 해군기지건설 반대 시위 현수막과 팻말들이 비장하게 걸려있었다.
수많은 간곡한 글귀들 뒤로 공사현장의 차량만 들락 거릴뿐 마을은 아무도 살지 않는것 마냥 조용했다.
차도 사람도 드문 드문 나타날뿐인 해안도로가 지글 지글 끓는것 같았다.
아스팔트는 차가다니는 길이지, 사람이 다니는 길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치고 , 고단하게 길을 가는 지름길이 휑한 아스팔트 도로였다.
어차피 햇빛아래 자글자글 구워질거라면, 바다를 끼고 있는 길위에서 구워지는걸 택하고 싶었다.
'자유스럽다'라는 기분을 모르고 살아왔다.
허파가득 싱싱한 들숨으로 짠 바람이 치고 들어올때 가슴속이 팡팡하게 올라붙는것 같았다.
어쩌면 이런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남지 않은 7코스의 잔여미터를 줄여나가며 포구라고 부르기엔 굉장히 아담한 곳에 도착했다.
이 곳이 월평포구라고 했다.
달을 품는 포구, 주변 산책길과 더불어 야경이 멋지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제주의 밤은 게스트 하우스 안에만 콕 박혀 있는 중이었다.
굿당산책로에 접어들기전 말이 아닌 소를 보았다.
소는 꽤 자주 보았던 편인데, 제주도에서 야자수 아래 서 있으니 또 새로웠다.
처음으로 하루만에 올레길 한코스를 완성했다.
이 곳 월평마을에 게스트 하우스가 있었으면 바로 쉬고 싶었지만, 없었기에 반강제적인 8코스 진행을 계속했다.
아시아 최대규모의 대적광전(대웅전)이라는 '약천사'에 도착했다.
약천사는 지은지 50여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갖고 있지만 규모가 크고 서귀포앞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있어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절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바다를 낀 절 하면 화야랑 여행갔던 부산의 해동용궁사가 생각났는데, 용궁사는 해안절벽에 아담하고 정교하게 위치해 있어 고고한 암자 같은 느낌을 준다면, 약천사는 드넓은 바다를 대웅전 앞에 깔아둔듯한 압도적인 느낌을 받게 했다.
절에 오니 이제 곧 석가탄신일이구나 함을 지각했다.
그동안 홀로된 시간들 중에서 가장 열심히 걷고, 먹고, 무념무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날들이다.
시간은 잘 가고 있다고 느끼는데, 날짜와 요일단위까지 번진 실감은 잘 되지 않는다.
오늘도 올레길코스 근처의 게스트하우스로 날이 어둡기전 무사히 당도했고, 1층 카페에서 만화책을 빌렸다.
7부바지를 실내복으로 입고 갔는데,
" 다리를 보니 원래는 하얀사람이었군요 ?" 라고 하셨다.
흐아....
엄청나게 타버렸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