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19
- 올레길9코스완주->10-1코스완주(가파도청보리축제) / 가파도안 민박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성향과 잘 맞는 사람과, 긍정적인 미래를 꿈 꿀 것이다.
나와 다른 점이 너무도 많고, 매 부딪침 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며, 인간의 발견이자 이해폭을 넓혀가는 것으로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면 안됐었던 거다.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취미와, 사고방식을 이질감을 느끼고 대하는것과, 어쨌건 대단하다고 인정해주는 것은 존중의 문제인데 상대에게 맞추는 감각만 발달했지, 나는 존중받지 못하고 있었더라.
'당신 대단해 ' 라고 생각 한다면 달라도 함께 할 수 있는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다름은 갈등일 뿐이다.
박수기장이 보이는 아침 창아래 기상하면서, 나는 오늘 저 곳에 올라갈 것이고, 앞으로는 함께 산을 올라 갈 사람의 손을 잡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동네 개님의 배웅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마을길을 걸었다.
병풍처럼 우뚝 솟은 박수기정의 설화를 만화로 설명한 표지판이 재미있었다.
멀리서 봐도 장관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오르기전에 다시 올려다 봐도 옛 문인들의 화폭이나 병풍에 그려져 있을법한 그림같은 경치였다.
9코스의 첫 시작길은 몰질(말길)이라 부르는 가파른 바위길이었는데, 시작점에도 만화 소개판이 있었다.
박수기정 설명과는 다르게, 역사적 사실상을 설명하고 있었다.
계곡이 흐르던 자리에 물이 다 말라 버려 등산길이 된 것 처럼 가파르고 메마른 길이 이어졌다.
용왕이 박수기정을 세워 계곡물을 막았다는 설화가 정말인것 같은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지근 지근 돌길을 밟아 올라가 박수기정 뒤편에 이르면 오르막길은 다 올라온것 마냥, 평지와 꽃밭이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입구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키가 작은 자잘한 묘목들이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하고있었고,
공작의 꼬리로 엮어 지다 만듯한 신기한 풀도 있었다.
아래로 내려다 본 대평리 마을은 흘렸던 땀방울과 힘들었던 시간은 기억에 싹 지워질 정도로 아껴두고픈 경치였다.
멀리 떠나와 작은 크기로 보면, 예쁘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한번씩은 내가 사는 생에 대해서 작게 뭉쳐볼 필요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면, 푸른 초목이 되어가려는 나무와 무성한 잡초가 '너도 뿌리를 내리면 싱그럽게 돌보아 줄게 ' 라고 말하는 듯 했다.
새들의 지저귐 사이로 나무의 목소리도 들릴것 같은 공간이었다.
나비가 혼자가는 발길이 외롭지 않게 걸음마다 한발짝 먼저 앞서 반짝거려주었고, 이따금 푸드덕 거리며 먼저 놀라 도망가 버리는 새들. 모습없이 쫑알거리는 새들 덕에 숲이 꽉 차 있는 느낌이었다.
동화책 속에나 나올것 같은 꽃밭이 산속에 펼쳐져 있었다는걸, 상상할 수 있을까 ?
더이상 올라갈 데도 없을 것 같은데, 9코스는 내리락 오르락 하면서, 바다 주변 경치를 쭉 아우르며 볼 수 있게 인도해주고 있었다.
소와 말을 만날 수 있다는 안내판에,
아니나 다를까 자유로이 풀어져 풀을 뜯고 있는 소를 볼 수 있었다.
평지길을 걸을때와 달리 마땅이 앉아 쉬어 갈 곳이 없었다.
캐리어만 한번씩 내려놓았다 짊어졌다 하면서 온만큼 돌아보거나, 도착하게될 아래동네를 내려다 보았다.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군사목적으로 파놓은 '안덕 월라봉 일제 동굴진지'를 보았다.
이 월라봉에서 모두7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남의 땅에 제 땅인냥, 헤쳐놓은 일본군의 잔재들이었다.
매한정 오르고 나면 보이는 좋은 풍경들이 참 많았다.
힘들어도 참고 올라야 할 시기에 그러지 못했다.
고3 수험생시절이나, 휴학과 복학을 반복했던 방황기에도,다른 취업공부를 했을적에도.
참고 오르지 못한 내가 내려다 볼 곳은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것과 다름 없는 평지의 풍경뿐이었을 것이다.
더 내려갈곳도 없는데 내리막길만 찾았다.
포기하면 편했으니까.
눈물나게 멋진 경치에 폭 담겨져 산새를 오르내리면서 내가 만들었어야 할 중간 오름 정도의 멋진 경관은 어디에 있나 돌아보게 했다.
엄마는 이번 여행을 끝나고 올쯤엔 한츰 더 밝아져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여행 며칠 했다고 다른 성향의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는건 아니다.
뭐라도 해볼 수 있을까 생각했을 찰나에 그냥 무작정 걷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여행을 하기 전보다 말 수는 훨씬 줄었다.
말을 할 기회가 없었다고 하는게 더 맞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직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은건, 나른한 안정제 주사라도 맞은것 처럼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과거를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번 여행이라고 왜 실수가 없었겠나,
이불을 뻥뻥찰법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평소라면 밤에 잠도 못자고 꼴깍거렸겠지만, 길을 걷고 지쳐 누워 있는 밤이면, 이 한 몸 잘 건사했다는 안도감만 마취처럼 퍼진다.
짧지만 강력했던,9.5키로의 9코스를 마치고 10코스로 이어 가려 했는데 10코스는 휴식년이라고 이정표가 다 떼어졌단다.
모슬포 항으로 702번 버스를 타고 옮겨갔다.
4시 여객선 배를 타고 가파도로 들어갔다.
늦은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10-1 코스는 거리도 짧고 추가 승선 계획이 있다는 5시30분 배를 탈 수 있을줄 알았다.
가파도는 청보리 축제가 한창이었다.
곳곳에 환영 인삿말들이 잔치 분위기의 마을을 느낄 수 있었다.
출발 스탬프를 찍고, 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가파도에 도착했을땐, 나가는 사람들로 길게 줄을 섰고, 배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섬안은 조용해졌다.
담수에도 청보리가 핀 것 마냥 녹조가 껴있었다.
가파도는 세대수가 많지 않았고, 상동포구와 하동포구 두 포구쪽에 음식점, 숙박등이 몰려있었지 섬 가운데와 해안쪽은 그보다 한적했다.
돌담은 볼 적 마다 신기하다.
거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것을 보면 딱 붙은 시멘트 벽 같다가도, 혹시 몰라 돌을 들어보면 개별로 들어진다.
그렇게 틈과 틈사이를 메워진 돌 하나하나가 쌓여 튼튼하게 지탱하고 있다.
가파도 돌담의 돌은 제주도 보다 조금 더 모나고 거칠어 보였는데, 바닷가에서 주로 돌을 가져오고 다듬지 않는다는 가이드북 글귀를 보고 이해하게 되었다.
나에겐 사방팔방 햇빛 쏟아지는 섬이었는데, 사진을 찍고 나면 해를 등지고 있었는지 마주하고 있었는지 구별이 된다.
아직 덜 여문 갈대가 섬 가장자리를 두르고
바다쪽 해안로에는 바위들을 세워 길표시를 하고 있었다.
굶주림에 지쳐 망부석이 된 불쌍한 고양이 이야기를 읽고 올레길이 섬 가운데쯤으로 안내해주면
사방팔방이 청보리밭으로 가득찬 세상으로 들어간다.
가파도의 청보리밭은 무려 17만평이란다.
중간 중간 휴농기를 가지는 땅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밭은 파랗게, 새파랗게 넘실대고 있었다.
다소 험악해 보이는 허수아비들도 볼 수 있었는데 꿈에 나올까 무서운 얼굴이었다.
탁트인 하늘 아래 청보리 융단이 깔린 사잇길을 걸어 갈 수 있어서 행복했다.
처음이었다.
오래 간직될 청보리와의 첫 기억이다.
가파도에서는 영주산을 제외하고 한라산,산방산,송악산,군산,고근산,단산 등 6개의산을 모두 볼 수 있다는데 어떤게 어떤산들인지 모르겠더라.
작은섬 안에서 넘어가는 해를 지켜보게 되었다.
한창 청보리밭에서 온 몸이 파래져갈 때 마지막 배를 알리는 소리를 듣긴 들었다.
하동포구쪽의 완주 스탬프를 찍고, 포구 근처의 식당 벤치앞에서 올레길 창시자인 서명숙 이사장님의 동생분이라는 할아버지도 만나고, 관광객들은 떠난 저녁 어슴푸레에 서로 친한 주민들 틈바구니에서 이방인같이 얼어 있다가 민박 정보를 받기도 했다.
가파도 안에서 혼자 1박을 하고 가게 되었다.
시설 깨끗한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할적에도 방안에는 TV가 없었는데,
민박을 하니 TV가 있었다.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에서 오랜만에 TV를 보았다.
엄마집에서,
동글이를 끼고, 이런 드라마가 재미있냐고 타박하고, 뒹굴거리며 TV를 보았었다.
엄마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