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21
- 초콜렛박물관 -> 모슬포항 투썸플레이스 / 미르게스트하우스
제주가 아니더라도 날씨 변화에 민감한 편이었다.
보통은 " 식사하셨어요 "를 인사말로 물어본다 치지만, 나는 오늘 날씨 어떻더라 하는 보고가 인사말의 시작이었다.
비걱정이 사라질만 하면 비가 오는 곳이 여기였다.
많은 지줄거림이 있었지만 이번 여행기 내내 날씨를 확인하는것으로 부터 시작해서 날씨 이야기로 끝맺는 방식의 글이 전부였던 것 같다.
머물렀던 혼울타리 게스트 하우스의 사장님은 친절하셨고, 많은 배려를 받았다.
어제 외출하신 사장님 집에 도착하였을때도, 먼저 들어가 있으라고 해주셨고 그대로 밤새 깨우지 않다가
아침 인사를 나눈뒤에 이렇게 멋진 조식을 차려 주셨다.
꼬박 꼬박 조식을 먹으면서 돌아다니고 보니 새삼 아침밥상의 의미가 달리 느껴지게 되었다.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가 조식은 셀프로 차려 먹을 수 있도록 토스트나 계란, 씨리얼 등을 준비해두는 편이었고, 그렇게라도 챙겨 먹고 나간 아침은 오늘 하루 계획했던 바를 부지런히 움직여보자는 다짐과 함께 뱃속에 두둑히 담아 가는 계기가 되었다.
받는 밥상은 끼니 이상의 감동이었다.
기나긴 하루에 앞서 아침 시간의 짧은 돌봄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왜 남자들이 아침밥상에 집착하게 되는가에 대해 동정되기 시작했다.
단, 간단한 아침상이라는 전제아래.
비가 좀 잦아졌다 싶어 퇴실을 하고 보니, 버스를 기다리면서 이내 더 세차게 내렸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올레길 12코스를 걷고 싶었지만, 젖은 신발을 신고 돌아다니는게 정말 싫었다.
아무리 용을 써도 피할길이 없었다.
근처 초콜렛 박물관에 가려고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대정농공단지 안에 들어가는 버스는 하루에 2번정도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30분 정도 기다려 950번 버스에 올라
"대정농공단지요" 라고 말했더니
"거긴 안가요 " 하는 대화가 2번정도 반복되고 나서 알게 되었다.
2.6km 정도 떨어진 거리라 걸어가보기로 했다.
그동안.
올레길을 걸으면서, 걷는 동안 체감상의 거리와 실제 걸었던 미터수의 비교를 많이 하게 되었다.
'아, 좀 많이 걸은것 같다' 싶으면 1km였고,
잔여미터가 표시되지 않을 지점에 넋놓고 한두시간 걸어보면 5-6km 정도였다.
힘들어 죽겠다 싶고 더이상 걷지 못할것 같아도 실로 줄어든 미터는 얼마 되지 않았고 그자리에 멈춰 나 못가겠소~ 하고 마냥 있지도 않았다.
죽울동 살동, 털레 털레 걷다보면 목적지에 와있었다.
그래서 걸을 수 있었다.
되돌아가지 않아도 될 길을 앞만보고 하염없이 걸을 수 있게 해서 좋았고,
길을 따라 환대해주던 눈부신 경치와 풍경을 오롯이 내 시선으로 담아 갈 수 있어서 좋았다.
총26개의 올레코스중에 10개 코스를 걸었다.
(5,6,7,8,9,10-1,11,18,20,21)
걸으며 마주친 사람들은 걱정반,미련해보인다는 시선반을 던지며 "한 군데 숙소를 정해서 가방을 두고 다니지,,," 하셨지만, 무겁게 걷는것 보다 낯선곳에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갈 과정들이 나에겐 더 번거롭고 스트레스였다.
걸을만큼 걷다가 떨어지는 지점에서 숙소를 정하고 그 집으로 세간살이 같은 이 가방을 옮겨가는 하루살이 입주자였고, 그래서 17일동안은 완벽한 떠돌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날 여행지로 고른 초콜렛박물관은 참 볼게 없었고, 수고스럽게 걸어간 곳이라는 의미부여를 해봐도 낡은 건물처럼 서글픈 곳이었다.
이 실망감을 대체 받을 수 있을만한 다른 목적지가 있을까, 지도를 다시 보아도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오늘 하루를 더 지낼 게스트 하우스만 알아보았을 뿐이다.
엄마도, 안부를 물어봐주는 친구들도 종종 "그래서 언제올건데 " 하고 물어봤었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제주에 일자리 구해서 눌러살거다!! 라고 하거나 언제 돌아갈지 나도 모르겠다 하며 호기롭게 위선을 떨었지만 큰 결심과 계기가 있지 않은 한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라는건 늘 곁을 따라 다니고 있었던것 같다.
이제서야 눈에 차고, 지쳤던 마음사이에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한것일테지.
처음 떠나온 여행이 2주를 넘어선 긴 여행이 될지는 나도 몰랐다.
돈떨어지면 돌아가겠다 라고 했던 처음의 계획대로라면 비슷한 시점에 맞춰진 것일수도 있다.
(마지노선 잔고 금액으로 떨어졌으니까)
골방에 쳐박혀 있다가 제주라는 자연의 품에서 떠돌고 보니 스스로도 꼴뵈기 싫었던 무기력함을 지워낼 수 있었다.
일찍 눈을 뜨고 바지런히 다리를 움직이고, 먹는것 하나하나 감동을하고, 사람들의 질문과 답변에도 감사해하는 이 모습이 원래의 내 모습인것 마냥.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모습이 어떤것들인지 몇가지는 찾아내기도 하였다.
그 모습이 전혀 낯선 내가 아니라는것도 알겠다.
결국은 내가 예뻐해 줄 수 있는 삶의 옷을 걸치는게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일 것이다.
4월22일 금요일 오전 8시5분 비행기편.
지금부터가 진짜 여행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