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이었는지, 내가 한참 책을 좋아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허영의 계절에 후각의 감각을 시작으로 집요하게 이전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라는 책을 감히 정독할 수 있을 줄 알았었다.
그리고 마르셀 프루스트 작가의 문장을 몇 개 정도는 기억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게 될 줄 알았었다.
당시의 ' 나는 책을 좋아해야만 해! ' 라는 약간의 강박이 있었는데,
그마저의 온순한 지적 취미조차 가지고 있지 않는다고 하면,
대학입시에도, 취업에도 치열한 경쟁에 등한시하고 반대로 살아온 스스로가
더없이 볼품없어 쪼그라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 자신의 독해와 지식의 얇은 민낯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한 겹 더 바르고
한 색 더 입힌다고 말하면 그것이 내 얼굴이 될 줄 알았었다.
아무튼, 그 부끄러운 시절에 프루스트의 책을 열심히 읽어보고자 '시도'한적이 있었다.
쉼표는 있지만 숨을 쉬라고 문장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만 같았고
만리장성같이 촘촘하고 긴 문장은 읽어도 도저히 읽은 것 같지 않았다.
읽는 즉시 머릿속을 거치기는커녕, 단단한 무지의 벽에 바로 튕겨 나오는 것 같은 기이하고
더없이 겸손해지게 하는 책이었다.
너무나 알고 싶었지만, 확고하고 높은 자기 세계관에 갇혀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이름이 프루스트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잊고 있던 작가 프루스트가 영화 속 마담 프루스트로 환생되어 못다 읽은 페이지가 동화책,
그것도 정교하고 아기자기하게 차올린 팝업북의 형태로 흥미롭게 다가왔다.
특히 마담 프루스트의 아지트는, 아파트라는 공간에는 맞춰 꾸며놓은 정원이 아니라,
마담의 정원에 아파트가 얹힌, 거대 체리를 얹은 파이같은 변이학적 느낌을 주었다.
그 공간이 폴이 잊고 있었던 부모님의 기억, 부모님에게서 사랑을 얻던 단편적인 장면들을 떠올리게 해준다.
기억의 회상에서 특히 화면의 색감이 더 생생하게 살아나는데,
웜톤의 필름을 한 겹 입힌 색채가 폴의 기억에 숨이 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프루스트가 주는 향이 나는 차와 마들렌을 매개체의 시작으로
비어있던 과거 기억의 퍼즐을 완성시켜 나가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 잊고 있었기 때문에 아프지 않았던 사실을 조우하게 된다.
말을 잃고 이모들의 교습소에서 피아노를 치고, 슈에뜨를 무감각하게 씹어먹던 폴은
프루스트의 인도를 받아, 마담 프루스트의 삶의 영향을 받아
가난한 감정과 삶의 감각을 깨워 간다.
그런 밤이 있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비릿한 냄새가 돌 적에,
하루라도 울지 않을 수 없는 서글픈 이유들로 끊임없이 쏟아져 훌쩍거렸던 날들이.
그저 무던히 기억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애를 쓰면서, 슬픈 감정은
나에게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하나 도움 될 것 없는 무가치한 감정으로 지워버렸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신경 써서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이 민숭한 머리와 마음이
말을 잃어버린 폴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 나쁜 기억은 행복의 홍수 밑으로 보내 버려. 수도꼭지를 트는 일은 네 몫이란다."
" Vis ta vie 네 인생을 살 거라 "
마담 프루스트의 마지막 말처럼
내 손으로 나쁜 기억의 찌꺼기를 보고 흘려내리는 의식의 간절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똑바로 마주하고 싶다.
그리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
' 지금부터 ' 라는 단어를 시작으로 좋아하는 것들로 쉴새 없이 이어 쓰고 싶다.
그런 꿈을 꾸게 하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