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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Aug 08. 2018

단 한 명만 손을 내어주면

2016. 08. 11

요즘 부쩍 또래에게 관심을 갖는 진현이.                                   

예전엔 놀이터에 가면 놀이기구에 관심을 가졌다면 요즈음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진다. 


학기 중엔 나도 피곤하기도 하고 해서 놀이터에 많이 못 데리고 나갔는데... 방학이니...(너무 덥긴 하지만) 되도록 놀이터에 가자고 할 땐 가는 편이다.


놀이터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갈 땐 진현이가 울고 불고 기분이 안 좋거나 내 기분이 안 좋아지거나 둘 다 안 좋아지거나 세 가지 경우 중 하나였다. 그러니 놀이터에 갈 때마다 나름대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간다. 오늘 놀이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도 기분이 좋고 진현이도 기분이 좋았던 역사적인 날에 대해 써본다.


2016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 있었던 일이다.

하필 그 날이 장애인의 날이었다. 진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진현이가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 해서 놀이터를 갔는데 진현이가 한 여자 아이를 따라다녔다. 진현이 입장에선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이지만(여자 아이들이 덜 위협적이어서인지 여자들에게 잘 가는 편) 그 여학생 입장에서는 첨 보는 아이가 비틀거리며 실실 웃으며(물론 진현이 입장에선 좋아서) 쫓아오는는데 좋을 리가 있겠는가?


"장애인이 날 쫓아온다." 하며 피해 다니고 나 같으면 그렇게 말하면 쫓아가기를 그만두련만 진현이는 더욱더 그 여학생을 쫓아다녔고 "나 따라오지 마!! 저리 가!! 장애인이 날 잡으려고 한다!!"며 비명을 질렀다. 놀이터에 있는 사람들이 진현이를 주목했고 쫓아가지 말라고 진현이를 말렸고 그 여학생에게는 좋아서 그런 거라고 설명했지만 진현이도 그 여학생도 내 말은 귀에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때 그 여학생의 친구(남자 1명, 여자 1명)들이 왔고 영문도 모르고 그 쫓고 쫓기는 현장에 자연스럽게 참여. 갑자기 3명의 아이들이 진현이를 피해 다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어떤 방법으로든 아이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진현이. 여러 아이들이 진현이를 피하는 그 상황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울컥 나오려고 했다.


진현이를 피해 다니던 남자아이가 어느 정도 그 추격전(?)이 끝나고 나에게 와서 "저 애 몇 살이에요? "하고 하길래 "4학년이야." 하고 하니 "4학년인데 왜 침을 흘려요? 걷는 것도 이상하고 말도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 이때가 기회다. 


마침 오늘이 장애인의 날이 아닌가? 나는 그 남자아이에게 "오늘 장애인의 날인데 장애인에 대해서 학교에서 배웠지?"라고 하니 그렇다고 한다. "이 형이 장애인이야. 그래서 걷는 것도 이상하고 침도 흘리고 말도 잘 알아듣기 힘들지만 너희들이랑 놀고 싶어 하고 계속 보면 너희랑 같은 점이 더 많단다. 그리고 학교에서 오늘 장애인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배웠니?"라고 하니 "도와줘야 한다고 했어요." 하고 한다. "그래!! 도와줘야 한다고 학교 선생님이 말씀하셨지? 그러니까 저 형 도와줘야 해."라고 하니 냉큼 자기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더니 "저 형 장애인이래!! 우리가 도와줘야 돼!!"라고 하자 첨부터 피해 다니던 아이는 끝내 피해 다니다 집으로 돌아갔고 나중에 합류한 여학생은 그 말에 "그럼 우리 같이 놀아주자!!" 해서 그 남자아이, 여자아이(나중에 물어보니 2학년이라고 했다. 진현이보다 키는 컸지만...)가 술래잡기 비슷한 게임에 진현이를 끼워줬다. 진현이가 뛰지도 못하고 피하지도 못하니 나름 룰을 바꾸어 진현이는 술래가 되지 않게 해주었다. 그 남자아이는 놀이터에 자기가 아는 친구가 오기만 하면 큰소리로 "이 형 4학년인데 장애인이래." 하고 소개를 해주었다. 그러자 그 아이들도 진현이를 이상하게 보기보다는 그냥 그렇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진현이도 첨으로 자기를 이해해주고 같이 놀아주기까지 한 그 아이들이 좋았는지 "우리 집에 놀러 갈래?"라고 했고 그 아이들은 그러겠다고 했다. 약간 당황한 나는 오늘은 좀 늦었고 부모님께 허락받고 일요일 1시에 놀이터에 모여 우리 집에 가자고 제안을 했고 그리고는 헤어졌다. 진현이는 일요일이 오기까지 계속 그 이야기만 했는데.. 사실 그 아이들이 올까...라고 의구심을 가졌던 나는 진현이가 괜한 기대... 그리고 실망감을 가지진 않을까 싶었지만.. 모른 척했다.


일요일 1시. 놀이터에 그 아이들이 나와 있었다. 우리 집으로 같이 오는데 진현이가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같이 노는가 싶었는데.. 진현이는 그 아이들 틈에 끼지 못했다.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계속 새로운 장난감을 보여주며 맥을 끊었고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고 30분쯤 뒤에는 그 애들은 그 애들끼리 놀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 여기 까지는구나... 싶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그 일은 진현이와 내 기억 속으로 사라졌고 가끔 놀이터에 갔지만 그 아이들을 만나지는 못했다.


2016년 8월 11일 오늘

그 아이들을 놀이터에서 다시 만났다. 


그 아이들을 만나기 전 놀이터에서 진현이는 5살 아이에게 그네를 양보하지 않아 나와 실랑이를 하였고 2돌도 되어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 접근하여 미끄럼을 같이 타자고 하며 팔을 잡아당겼는데... 힘 조절이 잘 되지 않는 진현이가 너무 세게 당겨서 그 아이가 다칠 뻔하고 더운 날씨 때문만은 아닌 땀이 등을 타고 줄줄 흘르고 있었다. 아이들과 놀고 싶은 건 알겠는데.. 정말 그 방법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가슴이 답답했다. 속상해한다고 바뀔 건 없는데 참 속상했다. 


그 와중에 그저께도 한 번 본 적이 있는 2학년 남학생이 진현이를 보더니 나에게 "부산행에 나오는 좀비 같아요." 하고 하는 게 아닌가... 아이가 생각 없이 한 말이지만 그 말에 나도 화가 났다. "그거 어린애가 보면 안 되는 영화 아니니?" 이런 말도 안 되는 대답만 하고...


진현이가 "안녕"이라고 하는데 대꾸도 없이 고개를 돌린 1학년 남학생...


그 와중에 4월에 봤던 그 남학생과 여학생이 놀이터에 온 것이다. 나를 보더니 저기서 뛰어 왔다.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안무 묻고...(이렇때 내 직업이 좋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어렵지도 낯설지도 않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 같다.) 부끄러운지 진현이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아이들도 뻘쭘한지 자기들이 놀던 곳으로 뛰어가벼렀다. 그제야 그 아이들 뒤를 쫓아가는 진현.


그때 우리 라인 8층 2학년 남학생의 등장. 엘리베이터에서 드러눕고 소리 지르는 진현이를 보았기에 항상 경계의 눈으로 보는 아이였다. 마침 4월에 만난 그 아이들과 친구였다. 이 때다 싶어서 4월에 만났던 남학생에게 진현이에 대해 설명해주기를 부탁했다... 그런데.. 그 부탁 전에 벌써 "이 형 4학년인데 장애인이야." 하고 설명을 했단다. 어쨌든 진현이도 거기 껴서 미끄럼틀에서 노는데 목말라하길래 아이들을 놀이터 옆 편의점으로 갔다. 가는 길에 같은 라인 남학생은 "이 애 머리가 이상한 거 아니에요?"라며 자기 귀 옆에 손가락을 가져가 빙빙 돌렸다. 이때다. 나는 "어렸는 때 머리를 다쳐서 걷는 것도 이상하고 말도 좀 못 알아들을 수도 있지만 자꾸 보면 너희들이랑 똑같아."라고 말해주었다. (이런 질문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해주는 것이 포인트!)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 먹고 다시 놀이터에 와서 조금 놀다가 저녁때가 되어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노는 동안 진현이는 그 아이들에게 몇 가지 질문도 하고 대화도 주고받았다. 이것도 놀라운 일(늘 또래를 보면 긴장해서 소리를 지른다거나 가만히 있거나 하는데..)


진현이는 연신 싱글벙글하고 아이들이 집에 가니 순순히 진현이도 집으로 들어갔다.(늘 집에 안 가겠다고 떼를 씀)


나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기분이 좋았다.

1. 진현이가 다른 아이들과 밀거나 때리거나 하는 사건이 없이 어울려 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2. 세상에는 진현이를 거부하는 사람(이상하게 쳐다보고 무슨 말하는지 못 알아듣겠다 하고 피하고.. 좀비 같다고 하는), 받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거부한다고 포기하지 않고(나는 포기하는 성향) 계속 시도하는 진현이가 너무 대견했다.

3. 진현이에게는 많은 친구가 필요한 게 아니라 진현이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딱 한 명의 친구만 있으면 되고 그러면 그 친구를 통해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친구와 놀고 싶어 하고 좋아하는 진현이 인데.. 내가 그동안 너무 기회를 주지 않았구나... 반성을 하며 어쩜 나보다 진현이와 그 아이들이 장애에 대한 편견이 없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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