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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Aug 10. 2018

아들의 교회 생활

장애인이 갈 곳은 어디인가 (2017.06.21.)

  3학년이 끝나는 봄 방학 즈음이였다. 진현이가 교회 초등부에 가기를 완강히 거부했다. 입구에서 들어가지 않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공과책을 찢어버리기까지 했다. 어찌할 바를 몰라 교회 입구에서 진현이를 어르고 달래고 있는데 진현이 담당 선생님이 오셨다. 본인이 달래서 데리고 들어가셨다.

     
  그때가 시작이였던 것 같다. 교회에 가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 늘 그냥 한번 던져보고 엄마가 그렇게 해주면 좋은거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말을 하는 아이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엄마의 직감으로 진현이는 초등부에서 잘 지내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교회’라는 공간이기에 사람이 어떻게 하기 보단 하나님에게 맡기자 하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진현이를 데리러 초등부에 가면 매우 소란스럽고-진현이의 불안과 흥분을 높임-진현이를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빛에서 그곳에서 진현이가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그때 어떤 조취를 취해야 했었나? 많이 부족한 진현이를 맡기는 입장에서 진현이를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던 것인가?
    
  무교였던 나는 결혼 전까지 오로지 나 자신만을 믿으며 살아왔다. 원인과 결과론에 충실했고 그것이 나의 삶의 중심이였다. 노력하면 얻을 수 있고 노력 안하면 실패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삶을 살아왔었는데 내가 낳은 아이에게 장애가 있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장애라는 결과가 있다면 분명히 원인이 있어야 하니까. 그러면 그럴수록 나 자신에 대한 자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원인: 엄마의 육체적 정신적, 유전적 건강 상태나 임신 중 문제--->결과: 장애아)
    이 수식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나에게 종교는 죄책감에서 해방시켜주는 안식쳐였다. 또 교회에 가면서 인간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절대자-->하나님)라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다. 진현이를 나혼자 오롯이 책임진다는게 너무나도 무거웠는데 하나님과 함께 한다니 조금은 편안해졌던 것 같다. 무신론자 아니 아신론자로서 내 자식이 장애아라는 것은 너무나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 장애든 아니든 소중한 생명리라는 가치는 나에게 충분히 평안을 주었다. 
  더욱이 24시간을 진현이 곁에 붙어있어야 했던 나에게 단 1시간 혼자서 예배드릴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진현이는 유치부에서 봐주심) 교회에 갈 이유는 충분했다. 
  합법적으로(?) 펑펑 울 수도 있었고 절대자 하나님에게 힘든 것을 의지할 수 있었다. 기도 중에 많은 위안을 받고 힘을 얻었다. 
     
  그런데 근 반 년째 교회를 제대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4학년이 될 무렵을 시작으로 진현이는 초등부에 가지 않으려고 했고 그래서 나와 함께 모자실로 가게 되었다. 모자실을 그야말로 아기들과 그 부모가 함께 예배드리는 곳인데 초등학생인 진현이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도 나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진현이가 모자실 유리문을 치고 의자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모습...지겨워지면 맨발로 뛰쳐나가는 통에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다. 
  맨발로 뛰쳐나가는 진현이 신발을 들고 쫓아가 진현이를 잡아채서 신발을 신겨 예배 중인 조용한 교회를 우리 둘이서 나오고 있노라면 그냥 눈물이 나고 서러웠다. 정말 다시 혼자가 된 기분이였다. 정말 속이 상했다. 누구를 원망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속이 상했다.
     
  교회 가서 그런 기분을 느끼며 돌아오는게 너무 끔찍했고 올해 초부터는 진현이 아빠만 교회를 가고 진현이와 나는 그냥 집에 있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5학년 담당 초등부 선생님은 전화 한 통이 없었다.(4학년때도 간간히 빠질 때 딱한번 어색한 목소리로 전화 한번 왔었다.) 담당 학생이 5-6명(많아야)정도인걸로 아는데 정말 단 한 통의 전화도 없었다. 나는 그 상황을 초등부에서 진현이를 버거워하고 오지 않기를 바라는 신호로 느꼈다.(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왜 애가 저러는데 엄마가 같이 초등부에 오지 않느냐? 하는 뒷말들을 했다는 것도 들었다. 굳이 변명하자면 진현이도 엄마가 없는 곳에서 선생님과 아이들과 함께 있기를 원했고 나도 나 혼자 온전히 예배를 드리고 싶었다. 좀 더 솔직해 지자. 까불어 대는 진현이를 보며 마음 졸이고 속상해하고 싶지 않아서 회피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내가 교회에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일까?)
     
  그리고 6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담당 구역 전도사님께서 전화가 왔다. 심방을 오시겠단다. 나는 심방을 오실 필요가 없다고 했다. 초등부 담당 목사님이 바뀌었다고 했다. 목사님이 바뀌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거라고 했다. 
  실질적으로 초등부를 운영하는 것은 목사님이 아니라 집사님들(교사)이기 때문이다. 요즘 교회에 초등교사로 봉사하실 분이 부족한것도 알고 있다고 했다. 그정도로 끝내고 싶었는데 전도사님이 자꾸 말을 이어가자 속에 있던 섭섭한 마음이 올라와 평소 내가 느꼈던 섭섭함에 대해 다 말해버렸다. 
  새생명 사랑 축제는 거창하게 하면서 교회에 오지 못하는 기존 성도에 대해서 아무 관심도 없는 걸 보면 교회가 참 가식적으로 느껴진다는 말까지 해버렸다.(기존 성도고 하나님을 안다면 내가 알아서 교회에 오는게 맞다는 것도 알고 있다.) 자꾸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은 아마도 끔찍이도 남에게 도움을 받거나 피해를 주기를 싫어하는(내가 무의식적으로 저지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처음으로 의지하고 기대했던 곳이 교회였는데 그 곳에 대한 섭섭함이였으리라. 솔직히 교회(종교단체)라는 곳보다 학교(사회)에서 진현이는 더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옛날에는 교회가 사회를 앞질러 갔다.(문화나 사상면에서) 이제는 훨씬 뒤처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낀다.
     
  장애인 예배가 따로 있는 교회도 알아보고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진현이가 새로운 교회는 안가겠다는 것이다. 나 역시 낯선 교회에 선뜻 갈 용기가 생기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전화 통화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전도사님의 말씀은 “우리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연락을 못했다.” 이다. 그러면서 엄마니까...엄마가 적극적이여야 한다며 무작정 교회에 나오라는 식으로 계속 말씀하시길래 전화 끊기 전 마지막으로 내가 한 말은 “그럼 진현이가 앞으로 계속 초등부실에서 배척당하는 것을 배우게 하라는 말씀이세요?”
     
  올해 장로님이 되신 분 중에 초등 특수학교 교장 지명 받으신 분이 있다. (교회에서 조차 직장에서 하던 일을 안 하고 싶을 수도 있지만..) 장로님에 되기 위해 온갖 봉사 및 예배 참석 및 헌금 등을 점수화해서 장로 후보가 될 자격을 받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 것을 다 충족시켜 장로가 되어 대예배시간에 거룩한 척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은 교회를 위한 일일까? 자신의 거드름을 위한 것일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성경 말씀은 그냥 말씀일 뿐 인 것 같다. 정말 장로가 될 분은 가장 낮은 곳에서 침 질질 흘리고 이상한 말을 해대는 아이를 보살피고 껴안고 기도해주는 분이 아닐까? 
     
어쨌든
 엄마인 나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교회에서도 모르겠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교회에 대한 원망은 없다. 섭섭함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교회에도 요즘 인력난(봉사할 분들)이 심한 걸 아니까 말이다. 
  나 역시 봉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데(예전에는 했었지만 현재는 안하니까.) 뭘 교회에 바란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하면 내 마음을 다독였지만 전도사님과 전화를 끊고 퇴근하는 차 안에서 눈물이 줄줄 흘리면서 이렇게 욕을 해댔다.
     
“ 하나님도 기브 앤 테이크 세요?” 라고.
     
  뭐 교회에 영향력 없는 부부와 초등부에서 분탕질이나 치는 진현이가 교회에서 뭐가 그리 필요할까?...
     
  결국 신앙도 이 현실 세상도 기브 앤 테이크인가 보다. 이렇게 결론을 내면...이 세상 살기 더 우울해지겠지만 현재로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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