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직장 동료에게 받은 백일 떡을 가져왔다. 요즘은 백일 떡도 이렇게 예쁘게 만든다. 먹기가 아깝다. 하트 모양을 베어 물면 죄스러운 마음까지 들 정도이다.
쫀득쫀득한 백일 떡을 먹으며 아들의 백일을 떠올려 본다. 태어나자마자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해 서울로 병원을 옮기고 수술을 하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100일은 병원에서 맞이했다. 그 흔한 백일 상도 백일 사진도 없다.
시어머니께서 백일 떡을 하셔서 서울로 올라오셨다. 아이의 상태는 위중했다. 우유 한 모금 제 입으로 넘기지 못하고 위루관으로 우유를 넣어줘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내 입에 떡을 넣을 마음조차 없었다. 떡을 먹어보라고 권하는 어머님의 말에도 선뜻 떡을 집지 못하는 나에게
"떡 먹어봐라. 백일 때 다른 사람 백 명한테 쌀을 얻어서 백일 떡 해 먹으면 아이가 건강하다고 해서 내가 동네 사람들한테 쌀 얻어서 만들었다."라고 하신다.
눈물이 울컥했다. 나만 힘들었던 것이 아니었다. 어머님은 나와 함께 아들 병원 생활을 같이 해주셨다. 내색은 안 하셨지만 얼마나 속상하시고 걱정이 많으셨을까? 아들이 위 탈장 수술 후 인공호흡기를 달고 신생아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걸 보시고 병원 로비에서 크게 꺽꺽하고 우셨다. (오랫동안 간병인으로 일하신 어머니는 환자들이 인공호흡기를 하면 많이 힘들어하는 걸 보셨기 때문이다.) 그때 딱 한 번 우시고는 언제나 담담하게 나와 아들을 지켜봐 주셨다.
돌이켜 보면 너무 감사한 일뿐이다.
내가 힘들어서, "시"자가 지레 어려워서 다가서지 못했을 뿐.
남편이 가져온 떡을 보고 옛날 생각에 오랜만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