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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Aug 24. 2018

무제(6)

이름도 없는 너에게

 "아이는 괜찮나요?" 내가 물었다.

"네. 아이는 주수대로 크고 있습니다.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양수가 하나도 없습니다." 

초음파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의사는 설명을 한다.
"여기 양수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도 안 보이죠? 양수가 거의 없어요. 양수가 새는지 모르셨어요?"
"하혈이 계속 있었지만 양수는 새는지 몰랐어요."
"일단 입원을 해야겠습니다."

양수가 새다니... 아마 내가 하혈이라 생각했던 피에 양수도 함께 나왔던 것이다.
 
좀처럼 보기 힘든 담당 교수님이 오셨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자궁수축 억제제를 맞으면서 수액을 최대치로 맞아봅시다."
양수가 샐 때 안정을 취하면서 수분 섭취를 많이 하면 양수가 다시 생긴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듯하다. 
 
소변도 침대 위에서 해결하라고 했다. 절대 안정해야 한다고 했다. 두어 시간을 꼼짝 않고 있었나 보다. 
 
한 의사가 내게 다가왔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난처한 표정으로
"아이를 살리기 힘들 거 같습니다. 양수가 너무 없고 양수가 새서 감염의 위험도 있어요. 임신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의사는 설명을 이어갔다.
"일단 자궁 입구를 묶는 수술을 했으니 그걸 다시 플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연분만처럼 낳아야 합니다. 자궁 입구가 열리도록 알약을 질로 넣을 겁니다. 열리는 정도에 따라 몇 번 넣을지 결정하겠지만 3-4번 넣을 거예요."
내가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있겠는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의사는 이것저것 설명을 하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한마디 건넸는데 그 말에 눈물이 주르륵 나왔다.
"살리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다.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무슨 의사 탓인가. 
모두 내 탓인걸.
 
의사가 자리에서 뜨자마자 간호사가 왔다. 자궁 수축이 있는지 보는 벨트를 내 배에서 떼어내고 모니터를 가져가버렸다. 최고 용량으로 맞던 수액도 양을 조절하였고 아직 많이 남은 자궁수축 억제제도 거둬가버렸다. 간호사는 더 이상 아이의 심장 소리를 체크하러 오지 않았다.
 
마치 시한부 환자의 치료를 포기한 듯, 생의 마지막이 왔을 때 산소호흡기를 떼 듯 의사와 간호사는 내 뱃속의 아이에게서 모든 의료 장비를 떼어내버린 것이다.
 
아이는 아직 내 뱃속에서 살아있고 꿈틀대는 태동이 느껴지는데 의료진도 엄마도 아이를 포기한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미쳐버릴 것 같았다. 무서웠다.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오니 뇌가 정지됐다. 오히려 담담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니 담담한 척 강력한 방어기제를 발동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얼마나 흐느꼈을까.. (옆에는 나 말고도 여러 산모가 줄줄이 누워있었다. 그 와중에 옆 산모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숨죽여 울었던 나는 비정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레지던트가 자궁입구 묶은 실을 풀러 가자고 했다.
 
그때라도 혹시 모르니까... 아직은 아이가 살아있으니까 해보는 데까지 해보고 싶다 하고 말해야 하지 않았을까? 22주에 태어나 살렸다는 해외토픽을 본 기억이 난다. 삼성병원인가... 거기서도 23주에 600그램에 태어난 아기도 살렸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순순히 의사를 따라가 굴욕 의자에 누웠다. 밑이 짓이겨지듯 아팠다. 실을 가위로 자르는 게 느껴졌다. 내가 아프다고 할 자격이나 있을까... 뱃속의 아이는 조금 있으면 생명을 잃게 되는데 그깟 실밥 푸는데 아프다 할 수가 없다.
 
실밥을 풀고 내 침대로 돌아왔다. 자궁 입구 묶는 수술이 조기 진통에 무슨 도움이 되나 했었는데 도움을 주고 있었나 보다. 실밥을 풀고 누워있는데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동안 실밥들이 자궁입구를 잘 막고 있었던 것이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흐르는 게 아니라 구멍 난 호스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듯 피가 나왔다. 마치 둑이 터진 듯 피가 쏟아졌다. 뿜듯이 나오다가 울컥울컥 나오기도 했다.
태반은 혈관 덩어리다. 그곳을 통해 아기에게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한다. 태반이 수축 때문에 자극을 받아서 출혈이 심했을 거라고 추정해본다. 
 
내 엉덩이 밑에 깔아놓은 넒은 패드와 환자복이 순식간에 다 젖었다. 간호사를 불렀다. 아래를 좀 봐달라고 했다. 하혈이 너무 심하니 빈혈검사 같은 걸 한다. 적혈구 수치가 5란다. 피 한 봉지를 가져온다. 위로 피를 맞으며 아래로 피를 쏟는다. 몇 시간 그 상황이 계속되었다. 피를 두 봉지 맞았다.  갑자기 열이 나면서 오한이 들어 덜덜 떨린다.  수혈 부작용이라고 했다.
 
해열제를 놔준다. 선잠이 들었다. 깬 것도 자는 것도 아닌 상태가 계속된다. 차라리 의식을 잃었으면 덜 괴로웠을까?
 
와중에 자궁 입구를 열어준다는 알약을 시간마다 넣으러 의사가 왔다. 하얀 고무장갑을 끼고 알약을  깊이 넣는다. 
 
동물이 된 것 같았다. 정말 견디기 힘든 모욕감이 들었다. 아이를 내 뱃속에서 내보내기 위해서 의사가 알약을 넣는데 가만히 있는 이 상황에 자아가 분열되는 느낌이 들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굴욕감과 무력감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오롯이 혼자라는 느낌이다. 
내 뱃속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면서도 이러다 나도 죽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그때 나는 알았다. 
나는 내가 먼저라는 것을. 
물론 예전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만 아는 무한 이기적이고 동물적 본능(약육강식, 제대로 안 클 거 같으면 죽여버리는)만 살아있는 나를 정면으로 만난 것이 이 날 밤이었다.
 
나를 지금껏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한 시작점이었다.
 
남보기에 적당히 그럴듯 하게 살고 있던 나는 발가벗겨진 나, 나만 아는 짐승만도 못한 나를 정면으로 대면했다. 
 
내가 진심으로 미웠다.
 
남편이 면회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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