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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Aug 25. 2018

무제(7)

이름도 없는 너에게

남편에게 울먹이며 의사가 했던 말을 간단히 전했다. 남편은 내 손을 잡고서는

"미안해요. 내가 낳자고 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우리는 같이 울었다.
 
남편이 가고 또 혼자가 되었다. 오롯이 나 혼자 겪어내야 했다. 옆 침대의 산모들이 계속 바뀌었다. 어떤 산모는 자연 분만하고 일반 병실로 갔고, 응급 제왕절개를 하러 온 산모도 있었다. 검사를 위해 들어왔다가 검사만 하고 돌아가는 산모도 보았다. 자궁무력증으로 16주에 아이를 나처럼 낳아서 보내야 하는 산모의 울음소리도 들었다. 그 산모는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반 병실로 갔다. 

나만 그대로였다. 간간이 배가 아팠지만 진행이 되지 않았다. 3~4번 자궁 입구를 열어주는 알약을 넣었다. 그때마다 내진도 하였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뇌를 정지시켰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야 거기서 행패나 발작을 안 일으킬 거 같았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갔다. 나는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실성한 여자처럼 아무렇지도 않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다가 새로 들어온 임산부가 있으면 그쪽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귀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시 울었다. 
 
다음 날이 되었다. 교수가 회진을 왔다. 아래 의사에게 왜 아직도 이렇게 두냐며 어떤 약 이름을 대며 그 주사를 놔주라고 했다. 시간 끌면 산모가 힘들다고 했다. 담당 교수가 나를 보며 "주사 맞으면 곧 끝날 거예요."라며 나를 위로하는 듯 말한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말은 내 뱃속에 있는 아이를 빨리 하늘나라로 보내고 싶다는 말이 되는 것이니까.
 
교수가 가고 한참이 지나도 그가 지시한 주사약은 투여되지 않았다. 보통의 나라면 진작에 왜 주사약을 주지 않냐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냥 계속 누워있었다. 나에겐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나는 지금 산모가 아니었다. 아이를 떠나보내기 위해 누워있는 그냥 한 여자였던 것이다. 다른 침대엔 아이 심장 소리 체크하러 시간마다 오는데 모든 간호사들이 나를 지나쳤다. 한껏 웅크려 아무도 보지 않으려 했다.
 
오후가 되었다. 별 진전이 없었다. 와서 계속 배가 아프냐고 묻기만 한다. 오후 늦게 가 되어서야 그 주사약이 투여되었다. 아마 의사가 깜박한 것 같다. 눈치가 그렇다. 내가 아직 왜 여기 있나.. 이런 눈으로 보더니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간호사가 약을 내 링거줄에 넣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통이 거세진다. 저녁때쯤이었다. 배가 찢어질 듯이 아프다. 참아보려 했다. 내가 아프다고 소리 지를 자격이 있나? 혼자 끙끙거리다 너무 아파서 간호사를 부른다. 
간호사는 무심히 한마디 건네고 가버린다.
"대변 마려운 느낌이 나면 부르세요."
 
첫째 아이를 낳을 때와 전혀 다른 상황이다. 수많은 체크들과 수시로 의료진이 오갔다. 하지만 난 산모가 아니었다. 철저히 나 혼자였다. 자꾸만 아파진다. 아이가 나오려 하는 것도 무섭다.
다시 간호사를 부른다. 당직 의사가 나에게 온다.
"양수가 적당히 있어야 아이가 쉽게 나오는데 양수가 거의 없으니 힘든 거예요. 주수가 되면 몸이 출산 준비를 하는데 아직 주수가 한참 남았으니... 더 그렇고요."
 
아이가 나오려고 버티는 것처럼 나에겐 느껴졌다. 점점 더 아파졌다.
 
다시 의사를 불렀다. 힘을 줘보자고 했다. 내진을 한다. 조심스러운 내진이 아니다. 휘젓는 느낌이다. 배를 마구 눌러준다. 아이가 나오는 것만이 목적이기에 첫째를 낳을 때처럼 "이러면 아이가 힘들어져요."라든지 "아이 머리 다쳐요 지시에 따라 숨 쉬고 힘주세요."이런 말은 없었다. 그냥 마구잡이로 느껴졌다. 
 
무서웠다. 내가 마치 살인을 하려는 느낌이다. 내가 힘을 주면 아이가 나온다. 그럼 아이는 숨을 거두게 된다. 힘을 줄 때마다 의사가 내진을 해서 내 자궁을 열려고 할 때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너무나 모순적인 상황이었다. 이성의 나와 나만 생각하는 본능의 나의 충돌이었다.
너무 아프다. 소리를 크게 내고 싶지 않았지만 무섭고 아파서 나중에는 마구마구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대변 마려운 느낌이 왔다. 의사는 거의 끄집어내듯이 안으로 손을 넣어 휘저었다. 결국 뭔가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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