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보다 나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는 생각을 부쩍 한다. 복직해서 내리 만 5년을 직장 생활해가며 아들 건사를 하다 보니 만성피로증후군이랄까 우울증이랄까... 뭐라 이름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한껏 예민해져 남편과 아들에게 짜증으로 대했다. 아들과 남편을 위한다는 내 행동이 오히려 가족을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라고 확실히 자각을 한건 아들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엄마는 아빠한테도 짜증 내고 나한테도 짜증 내."
그 말에 나를 뒤돌아 보게 되었다. 조금 쉬어 가기로 했다. 아들의 치료 스케줄도 대폭 줄였다.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책들을 골라 읽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쉼을 주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생겼다. 짜증이 덜 내고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처럼 느껴졌던 편협했던 심보가 점점 넓어져 남을 돌아볼 눈이 다시 생기게 된 것이다.
무엇인가를 양손에 다 들고 있으며 어찌하지 못함을 느꼈다. 한 손에 있는 것을 잠시 놓아보았다. 삶의 무게가 그만큼 가벼워졌다. 나머지 한 손에 있는 '자식'도 조금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 손이 자유로워지면 어떨까?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나를 돌보지 않았고 방치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내 안은 마치 잡초가 우거져 방치된 정원, 빠짝 말라 흔적만 있는 개울 같았다. 이제 손을 걷어 그곳을 보살피고 싶다. 그러려면 두 손에 들고 있는 직장과 자식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포기하거나 내팽개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선순위를 조정한다는 것이다.
하루에 한 번씩은 무엇이든 나를 기쁘게 하는 소소한 거리를 만들어 관심을 기울여주고 나를 북돋워주고 칭찬해주고 건강에 좋은 것도 몸에 넣어주고 그러고 싶다. 잘 될까?
잘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를 돌보지 않아 내가 일어서지 못하게 되면 내가 그토록 소중해서 손에 놓지 못하던 아들도 슬퍼지기 때문이다.
자식
자신
한 끗 차이다.
'ㄱ'이 'ㄴ' 보다 먼저라 우리는 자신보다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걸까?(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까?)
아제는 조금 삐딱해지자.
'ㄱ'보다 'ㄴ'을 먼저 챙길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