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면허로 15년 정도 있었기 때문에 몇 년 전까지는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했다.
아들이 9개월일 때부터 여기저기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 등을 다녔는데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동차로 이동했지만 나는 아기를 카시트에 태워 혼자 다닐 엄두를 내지 못했다.(울기라도 하면 감당을 못할 것 같아서) 주로 지하철을 이용했고 버스나 가끔씩 택시를 이용하기도 했다. 이듬해에 내가 사는 지역에도 장애인 콜택시가 생겨 장애인 콜택시도 이용하게 되었다.
아들을 데리고 나갈 땐 준비물이 꽤 많았는데 유모차, 아기 띠, 그 외 아기용품이 든 가방을 들고 가야 한다. 지하철을 탈 때엔 유모차에 앉혀서 가고 버스로 갈아탈 땐 아들을 아기 띠로 업고 유모차는 접어서 한쪽 손으로 들고 다른 한쪽 손으론 가방을 들고 탔다. 그런데 등에는 아이를 업고 한 손엔 유모차, 다른 한 손엔 아기 가방을 들고 있는데도 아무도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때 왜 그렇게 서럽고 무안하던지... 눈물이 찔끔 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애매한 거리는 유모차를 밀고 다녔다. 한여름이고 겨울이고 한두 코스 거리는 유모차를 밀고 다녔다. 덕분에 양 손등이 새카맣게 탔다. 선크림도 제대로 바르지 않고 다녀서 얼굴도 많이 상했다.
왜 그렇게 청승맞게 고생을 사서 하며 다녔을까? 내가 나를 벌하는 심정? 그렇게 고생을 자처하면 맘이 편했다. 스스로에게 너무 가학적이었던 것 같다. 나를 위해선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유일한 낙은 오전 치료를 끝내고 아이가 낮잠 자는 동안 유모차에 눕혀놓고 롯*리아 햄버거로 점심을 때우는 거였다.
지금은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할 거 같다. 자동차로 아들을 치료실 데리고 다니는 것도 꾀가 난다. 십여 년 전 30대 초반의 그 체력과 열정을 따라갈 순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