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놀이터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모래성을 쌓았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멀리서 엄마가 저녁밥 먹으러 오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한나절 정성스럽게 쌓아올린 모래성이 아깝더라도 손에 묻은 모래를 털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네 인생이 이와 똑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놀이터에 모래성 짓다가 해지면 떠나야 하는 것과 똑같이 빈 손으로 되돌아 갈 인생인데 뭐 하러 이렇게 아둥바둥인가 싶다. 혹자는 이렇게 말하겠지. 모래성을 짓는 그 순간은 즐겁잖아. 그렇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현인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이야기 하나 보다.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한다. 그렇게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필요가 없다. 하기 싫은 모래성 짓기를 억지로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일찍 떠나 버리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또 너무 모래성 쌓기에 심취하다가 집에 갈 시간이 되어도 떠나지 못하고 놀이터에 집착하고 안 가려고 버둥버둥 거리기도 한다. 우리네 삶이 그런 거다.
나의 모래성은 어떤 모습인가? 지금까지는 남이 지으라는 대로 지었다. 그랬더니 그렇게 나쁘지 않은 노멀한 모래성은 지었지만 감흥이 없다. 성취감도 없고 애착도 없다. 그래서 모래성 짓기를 잠시 멈추고 주위를 둘어보았다. 나름 자신만의 멋진 성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다시 모래성 쌓기를 시작하려 해도 이제는 심드렁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지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급기야 쌓아 놓은 성도 허물어지려고 한다. 애정을 갖지 않으니까 말이다. 다행히 나름 견고하게 지어서 금방 허물어지지는 않지만 미세하게 나만 알 수 있을 정도로 허물어지고 있다. 초초하다.
있던 성을 보수하고 손질하는 선에서 만족해야 할지. 있는 성은 그냥 두고 그 옆에 전혀 새로운 것을 지어서 함께 어울리도록 해야 할지 아니면 기존의 성은 확 부숴버리고 새로 지어야 할지.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남에게 물어보기도 싫다. 왜냐하면 평생을 남에게 물어보고 타의에 의해 성을 지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어설프더라도 내 힘으로 하고 싶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내 나이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벌써 오후의 쨍쨍한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사실 딱 언제까지 놀이터에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라도 놀이터 관리인이 나가라고 하면 나는 놀이터를 떠나야 한다. 참... 어렵다. 이거 뭐... 어째야 하는 건지.
해는 점점 기울고 다른 사람들은 정말 자신의 성을 짓기 위해 열심히 고군분투한다. 나는? 나는? 안 지어도 된다고? 그래. 그래도 되지. 내 것 없이. 그냥 남 꺼 셰어하고 남 도와주고 그렇게 놀이터에서 지내는 사람도 있다. 모든 것 훌훌 털어버리고 싶기도 하다. 어차피 모래성 아닌가? 평생 있을 수도 없다. 무한히 아니라 유한이란 말이다. 그런데 뭘 그렇게 전전긍긍하느냐 말이다. 부르면 가야 한다. 언제라도 손에 묻은 흙도 털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것이 나의 정해진 운명이다.
요즘 생각이 많다. 앞만 보고 직진하다가 제동을 건지 2-3년 되는 것 같다. 속도가 점점 줄어들다가 급기야 정지한 느낌이다. 내가 가는 방향을 점검하고 조정하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자꾸만 초조해지는 내 마음을 다독여 본다.
인생의 마지막을 자주 생각해본다. 그러면 남은 인생 내가 가야 할 방향, 속도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