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슬픔과 기쁨 #13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영화 <명량>을 보셨나요? 이 말은 영화 속 주역인 이순신 장군의 대사입니다. 당시 조선 수군은 단 12척의 배로 330척이 넘는 적군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끝없는 전쟁으로 지친 병사들의 마음은 두려움에 잠식되었고, 패배 의식은 깊은 절망으로 번져갔죠. 그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이순신 장군은 병사들을 짓누르던 두려움을 직시했습니다. 그리고 이 절망적인 감정을 '용기'로 전환할 방법을 필사적으로 모색했습니다. 승리의 가능성은 희미했지만, 그는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믿었기에, 이 한마디를 외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명량의 그 장면과 이순신 장군의 외침이 제 마음에 이토록 깊이 와닿았던 것은, 아마도 제가 지금 끊임없이 맞서 싸우고 있는 두려움 때문일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 앞에서 제가 가장 크게 느끼는 두려움은 다름 아닌 '나' 자신입니다. 과연 이 상황들을 잘 감당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나의 부족함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고 상처받지는 않을까 하는 초조함이 저를 휘감습니다. 막중한 책임감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연약한 자신에 대한 의심은 끝없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게 합니다. 내 안의 불완전한 모습이 거대한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순간마다, 삶이 절대 쉽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이순신 장군의 외침처럼, 제 안의 거대한 ‘나에 대한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그 방법을 간절히 찾고 있었습니다.
이런 깊은 고민 속에 송용원 교수님의 『사이에서』를 만났습니다. 이 책은 저에게 '나 자신'이라는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방법을 찾아가는 여정의 한 부분이 되어주었습니다. 교수님은 틸리히의 통찰을 빌려 인간을 '현실과 상상', '이론과 실제', '교회와 사회' 같은 수많은 경계선 위에 선 위태로운 존재라 했습니다. 내적 실존이 다양한 형태로 한계에 부딪히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며, 혼란과 불안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거죠. 이 당연한 감정 앞에서 혼자 너무 외롭게 싸우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 깨달음이 작은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교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우리 삶의 '달콤함'은 다름 아닌, 가장 두려워하는 그 대상 안에서 발견될 때가 많다는 놀라운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성경 속 삼손이 맨손으로 찢어 죽인 사자의 사체 속에서 뜻밖의 달콤한 꿀을 발견했듯, 가장 두려운 '사자' 속에 가장 귀한 '꿀'이 숨어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교수님의 고백이 제 마음에도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송용원 교수님 역시 9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은 승승장구하는 사역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크고 두려운 '사자의 귀환'이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육체의 연약함을 통해 스스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존재임을 온몸으로 깨달으셨다는 말씀은, 지금 '나 자신'이라는 두려움과 씨름하는 저의 상황과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미지의 상황에 대한 불안, 인정받지 못할까 하는 걱정,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연약한 ‘나 자신'이 지금 저의 가장 큰 '사자'입니다. 이 '사자'와 씨름하며 저를 짓누르는 막중한 책임감은, 교수님께서 육체의 가시로 교만의 성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셨듯, 저 또한 제 안의 나약함과 불완전함을 직면하게 합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제 안의 교만함이 무너져 내리고, 진정한 겸손을 배우는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지금 '사자와 꿀 사이'에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행복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 얼마나 좋은 곳에 있는지, 지금 하는 일이 얼마나 잘 풀리는지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닐 겁니다.
오히려 『사이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사자를 만나 예상치 못한 역경을 마주하더라도, 세상이 알려주는 방식으로 맞서는 대신 주의 영을 온전히 의지하며 포기하지 않고 버티다 보면, 하나님이 맡기신 임무를 다 마친 후 주검이 된 사자 속에서 예상치 못한 달콤함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저의 가장 큰 두려움인 연약한 ‘나 자신'이라는 사자 앞에서, 세상의 지혜 대신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려 합니다. 그 안에서 분명히, 제 기대 이상의 달콤한 꿀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혹시 지금, 두렵지만 기꺼이 마주해야 할 '사자'가 있지는 않으신가요? 어쩌면 그 속에 가장 달콤한 희망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저는 믿습니다.
"사자와 꿀 사이에 있는 존재는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 혹은 얼마나 좋은 곳에 있고
지금 하는 일이 얼마나 잘 풀리는지에 따라 행복이 좌우되지 않는가 봅니다.
그보다는 생각지도 못한 사자를 만나서 전혀 예상치 못한 역경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세상이 알려 주는 방식으로 맞서지 않고, 주의 영을 온전히 의지함으로 포기하지 않고 버티다 보면,
하나님이 맡기신 임무를 다 마치고 주검이 된 사자를 목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송용원, 『사이에서』, IVP, p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