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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달빛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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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순 Jul 26. 2022

맛있는 한자 이야기 2/중화미각/물리지 않는 맛

두부는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겸손한 식재로서 타자와 조화를 이루는 데 뛰어나 그 응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역으로 이렇게 밋밋한 재료로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 수 있는 요리를 만들어낸다면 그야말로 대가 중의 대가일것이다. p106  중화미각/문학동네


아이는 요즘 두부를 자주 먹는다. 뜨거운 물에 데쳐 간장, 참기름만 살짝 끼얹어 주면 두부 한모를 다 먹는다.  아이 덕분에 나도 두부를 자주 만진다. 희고 따뜻하고 부드럽다. 밋밋한 재료로 아이의 배를 채워주니 대가 중의 대가가 된 기분까지 든다.


부스러진 고기와 두부가 다인 이 단출한 요리로 주린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아주머니는 갖은 양념을 넣어 기름에 맛있게 볶았다. 이렇게해서 탄생한 미시즈 진陳표 마파두부는 밥 한공기 거뜬히 비울 수 있는 밥도둑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 마파두부를 밥에 썩썩 비벼서 많은 이가 허기를 달랬을 것이다. p109
중화미각/문학동네


식빵, 감자, 두부처럼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은 겸손한 식재의 무궁무진한 응용에는 다양한 조리법과 양념이 함께 한다. 중화미각 책에는 맛있게 매운 마파두부麻婆豆腐가 나왔지만 두부의 기상천외한 변신에 취두부臭豆腐도 있다. 처음 중국에 갔을 때 학교 가는 길에서 퍼지는 썩은내의 정체가 취두부라는 음식 냄새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어떻게 저런 냄새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단 말인가 고개 젓던 나는 십 년 후 타이베이 야시장에서 취두부를 맛있게 먹고 있다.


보들보들 두부가 취두부로 변신한 것처럼 나는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해보니 그 틈에 역시 사람이 있었다. 좋아하는 대만 언니들의 취두부 예찬을 듣다보니 나는 취두부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절대로 "하는 말도 내 입에서 조금씩 줄어갔다.

마라麻辣가 마파두부를 한입 넣었을 때 처음 느끼는 맛이라면, 무미無味하나 고소한 두부는 이 강렬한 맛을 달래주는 중화제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향긋하고 맵싸하지만 짜거나 맵지 않은, 계속 먹어도 계속 들어가는 중화 中和의 맛이 일품이다. 중국인이 최고의 덕목 중 하나로 꼽은 중화의 미덕이 마파두부에도 담겨 있다. p113 중화미각/문학동네


성인이 되어 지금까지 20년 간 물리지 않고( 不厭 )해 온 것은

한자, 중국어다.

내가 처음 스스로 선택한 공부이자 진로다.

중간에 애정이 식기도 하고 후회한 적도 있다.

그래도 계속 한자, 중국어를 내가 찾아가게 된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야기의 힘을 믿고 있다.

계속 먹어도 계속 들어가는 마파두부의 맛과 향을 중화中和라는

두 글자로 풀어내는 오감만족 한자 이야기에 다시 빠져든다.

한자, 중국어는 내 일상의 배움, 재미, 열정을 붙들어준다.


언뜻 봤을 때 밋밋해 보이는

두부 같은 한자 콘텐츠에

두반장 같은 소스,

다양한 조리법으로 맛있게 요리해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자 이야기를 연구, 교육, 전시하는

한자박물관의 큐레이터,

내가 스스로 정한 역할, 업의 정체성이다.

성실히 가꾼 덕후의 세계로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한자 이야기를 하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

두부의 변신은 무궁무진, 대만에서 먹은 豆花 시원하고 달콤한 두부 디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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