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메일 한통을 받았다. 통역사가 되고 싶다는 중국어과 2학년 대학생이 보낸 메일이었다. 통번역대학원 진학 방법, 대학 생활에 대한 조언을 물어왔다. 질문을 받자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이 되었다. 전문 통역사도 아닌 내가 이런 질문에 대답할 자격이 있을까?
나도 대학생 때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현직자에게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잡지 기자가 되고 싶던 나는 즐겨보던 잡지에 나와있는 한 기자 메일 주소로 메일을 썼었다. 잡지 기자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될 수 있으며 대학 생활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기자님의 회신을 받고 기뻤던 것은 기억나지만 메일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잡지 기자가 되고 싶던 마음이 희미해져서일까? 아무튼 내가 통역사를 꿈꾸는 학생에게 보낸 회신도 아마 받는 사람에게 완전히 잊혀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우연히 어떤 질문을 받고 그에 답하기 위해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한 시절과 그 속에 나를 펼쳐볼 수 있었다.
대학 생활에 대해 감히 조언을 드리자면요, 대학 시절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면 좋을지 oo 씨처럼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경험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프리랜서 통번역사로 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시면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하면 그 길을 가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통번역사로 일하시는 교수진에게서 실제 통번역 실습과 같은 수업을 받을 수 있어요. 학교 다니면서 통번역 일을 구해 할 수도 있고요.
만약 프리랜서보다 중국어를 쓰는 직장생활을 하실 생각이라면 굳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통역사가 되고 싶다고 하셨는데 통번역대학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통역사란 직접에 대해 이해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중국어 비전공자로서 중국어를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했는데 막상 대학원에서 프로 통번역사로 사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방황을 했어요.
졸업 후에는 대만 회사에서 홍보일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통번역대학원 나와도 통역사 말고 다양한 곳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요. 통역이 직업이 될 수도 있고 회사에서 직업, 기술로서 이용될 수도 있어요.
제가 쓴 글은 저의 생각이므로 더 다양한 분들의 의견을 듣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다양한 환경에 나를 노출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내가 속할 수 있는 환경이 점차 제한되는 느낌도 든다. 여태까지 걸어온 발자국으로 내 길이 만들어졌는데 이 길은 아닌 것 같고 그럼 어떤 길을 가야 하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부터 시작하자. 진로=직업인 걸까? 아닌 것 같다. 진로를 고민할 때 직업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역할, 잘할 수 있는 역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어떤 역할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 생각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듣고 말하고 글 쓰는 것에 민감한 편이다. 말을 재밌게 하고 글을 잘 쓰고 싶었다. 그래서 듣고 읽는 것에 집착하는 편이다. 나는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을 할 때 꽤나 몰입하는 편이다. 반대로 내가 관심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을 거의 안 쓴다. 이것저것 꽂히는 성향은 아니고 20대 때는 해외 생활을 꿈꾸며 그를 위하 도구를 찾았다. 중국어였다. 전공인 국사학과 필수 수업인 사료 강독은 한자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던 내게 중국 교환 학생은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되었다.
교환 학생이 되기 위해 중국어를 팠다. 영어, 일본어도 좋아했지만 중국어를 팠다. 영어, 일본어도 배웠지만 중국어가 더 재미있었다. 뜻글자인 한자, 중화권 문화에 끌렸다. 쉴 때도 잘 때도 머릿속엔 한자, 중국어에 대한 상상이 가득했다. 그런 시간을 거쳐 중국에 가게 되었고 그 이후 2년 간 통번역대학원을 준비하면서 중국어를 더 깊게 파게 되었다.
막상 대학원에 재학하면서 내가 통역을 안 좋아하고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님이 어떤 마음으로 비싼 등록금을 대주시는 줄 알고 있어 졸업이란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 당시 자는 시간이 가장 좋았고 깨있을 때 항상 목이 마르고 피부는 뒤집어졌다. 나는 타인의 말을 정확하게 옮기는 역할을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않았다.
언어에 예민하다 보니 소통이 중요한 홍보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어떤 부분에 예민하고 무슨 역할이 자신에게 자주 주어진다면 진로와 연결해 볼 필요가 있다. 상담을 하면서 나는 이야기를 재밌게 듣는 사람인 걸 발견했다. 역사 공부, 통역, 홍보, 엄마의 역할 모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자 한다. 지금껏 했던 일이 느슨하게나마 연결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