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와 나란히 걷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달빛서당에서 이븐하게

by 모순


놀라워!



13기 첫 주를 보내며 달빛서당에서 나도 많이 하고 많이 들은 말이다. 2,500년도 지난 논어, 그보다도 더 오래된 한자, 그리고 지금 그것을 함께 공부하는 우리를 보며 감탄할 때가 많다.



子曰자왈見賢思齊焉견현사제언見不賢而內自省也견불현이내자성야
공자께서 말씀하셨어. "현명한 사람을 보면 그와 나란히 될 것을 생각하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을 보면 속으로 자신을 돌아본다."

《논어論語》 제4편 이인里仁 17장


달빛서당 13기 첫 번째 논어 씨앗문장으로 큐레이션 한 문장이다. 이 문장에 쓰인 한자齊를 네이버 한자 사전에서 찾아보면 "가지런할 제, 재계할 재, 옷자락 자, 자를 전" 등 뜻도 소리도 다양하다.


齊는 14획이고 글자를 크게 확대해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한자인데 놀랍게도 한자 그 자체가 부수인 제부수한자다. 齊 그 자체가 부수라고? 나에게 부수部首, 머리글자는 한자가 수없이 뻗어가는 뿌리 혹은 핵심 부품의 역할을 상징하는데, 齊가 그렇게 필수적이었나?


네이버 한자 사전에 나오는 한자 그림 유래를 보고 다시 놀랐다.


사전 설명에도 나와 있듯이 한자 구성 원리에는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가지런할 제齊는 곡식이 가지런히 자라는 모습을 표현한 상형문자라고 한다.


齊자는 '가지런하다'(even; equal)는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벼나 보리의 이삭이 평평하고 가지런하게 자란 모양을 본뜬 것이었다. 지금의 자형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연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 후에 '같게 하다(make same), '동등하다'(equal), '다스리다'(rule) 등으로 확대 사용됐다.

선생님 한자책, 전광진 엮음


齊는 "수신제가修身齊家, 애국가 제창齊唱, 일제一齊히" 에도 쓰인다. 齊가 부수로 쓰인 한자로는 경제經濟에 들어가는 건널 제濟, 약제藥劑에 쓰이는 약제 제劑, 서재書齋 속 집 재齋가 있다.


齊에 대한 설명을 선생님 한자책에서 찾다 가지런하다(even)을 발견했다. 흑백요리사를 안 봤지만, 그 프로그램에서 자주 쓰였다는 "이븐하게"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었었다. 이번에 齊에서 가지런하다(even)가 함께 나온 설명을 보고 그냥 지나쳤던 이븐이 처음으로 "골고루, 고르게"라는 선명한 이미지와 상태로 다가왔다.


見賢思齊焉견현사제언, 현명한 사람을 보면 그와 나란히 될 것을 생각한다는 문장과 뉴턴이 했다는 말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가 내 안에서 이어졌다.


공자의 말은 "見賢思齊焉견현사제언, 현명한 사람을 보면 그와 나란히 될 것을 생각한다"에서 그치지 않고 "見不賢而內自省也견불현이내자성야, 현명하지 못한 사람을 보면 속으로 자신을 돌아본다"로 흐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현명한 사람도 만나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도 만난다. 우선 나도 현명할 때도 현명하지 못할 때도 있다. 모든 사람, 모든 상황에서 배울 수 있다.


최근 투자 거장 찰리 멍거의 이야기가 담긴 <찰리 멍거 바이블>을 읽었다. 찰리 멍거도 끊임없는 학습을 이야기했는데 공자 이야기도 여러 번 나온다.


"見不賢而內自省也견불현이내자성야, 현명하지 못한 사람을 보면 속으로 자신을 돌아본다"는 찰리 멍거가 말하는 "문제를 뒤집어서 생각하는 방법"을 떠올리게 한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하지 마십시오.

이 한 가지 습관만 터득하면
아무리 대단한 미덕을 지녔다 해도
여러분의 모든 미덕을 합친 효과를
상쇄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불신 받고,
최선의 기여와 좋은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싶다면 이 처방을 따르세요.


되고 싶은 모습도 변화의 동기가 되지만 되고 싶지 않은 모습도 변화의 강력한 동기가 된다.


공자가 "見賢思齊견현사제언 見不賢而內自省也견불현이내자성야, 현명한 사람을 보면 그와 나란히 될 것을 생각하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을 보면 속으로 자신을 돌아본다"라고 제자들에게 말한 것은 설득력 있는 대화이자 소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공자의 말이 기록으로 남아 설득력과 생명력을 가진 이유는 말과 행동이 나란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공자의 소통하는 방법과 말과 행동이 분리되지 않는 태도를 배우고 싶다. 나란히 되는 것은 어렵다 해도 그의 어깨 위에서 새로운 풍경을 보고 싶다. 누군가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도 힘이 들지만, 가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학우들과 함께 해 풍요롭다!


누구든지 배울 점이 있다는 말씀이지.
닮고 고치고 그렇게
현명한 달님들 틈에 나란히 서고 싶어.
..
이 구절을 읽으면서, 역시 공자님이라서 누군가와 대등하게 될 것을 생각이라도 할 수 있구나! 싶었어
...
무엇을 나누려고 애쓰기보다 "나는 이렇게 살고 있어요. 혹은 "이렇게도 살 수 있어요."라고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 그것이 나의 최선의 현인 것 같아.

달빛서당 13기 달님들의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