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이 되었다

내가 짓는 내 이름

by 모순

이적, 루시드폴 같이 자신이 지은 예명을 사용하는 예술가를 동경했다. 이름마저 창의적으로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예술가도 아닌 나는 내 예명을 계속 고민했다. 어떤 이름이 좋을까? 글을 쓸 때는 내가 만든 이름을 쓰고 싶었다.


5년 전 나는 내 삶의 모순과 마주하며 블로그에서 모순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모순은 창(矛)과 방패(盾)라는 한자로 이루어진 말이다. 절대 안 뚫리는 방패와 다 뚫을 수 있는 창은 동시에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어 앞 뒤가 안 맞다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나는 이 말이 가진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느낌이 좋았다. 입을 동 그렇게 모았다가 아래로 내리는 발음도 귀여웠다. 부르기도 기억하기도 쉬운데 흔하지 않은 이름 같았다.


엄마가 되어 아이를 돌보게 되면서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된 것 같았다. 처음 경험해 보는 엄마의 일상에서 그동안 생각했던 기준들이 흔들렸다. 어린 생명이 어떤 경계선도 없이 내 삶에 들어왔다. 맞고 틀렸다. 좋다 나쁘다고 양분할 수 없는 상황과 감정 속에서 혼란스러웠다.


“많이 내려놨어”

출산부터 모유수유, 잠재우 기 등 내 예상과 어긋나는 순간이 늘었다. 내가 정답이라 생각한 틀에 나와 남을 끼워 맞추려고 하니 마음이 괴로웠다. 완벽한 상황을 상상하면서 거기에 못 미치는 내 삶을 홀대했다. 그러다 어느 날 입안에 든 밥을 씹으면서 아이 똥 싼 엉덩이를 씻겨주는 모습을 거울로 봤다. 냄새는 나지만 밥은 맛있었고 아이의 엉덩이 촉감이 좋았다. 아이 똥을 치우면서도 밥을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났다. 뒤죽박죽 뒤섞인 상황에서도 웃음의 포인트는 발견할 수 있었다.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편협했던 기준에서 거리를 두는 연습이 필요했다. 사람은 원래 지질하다. 식욕, 수면욕, 성욕, 성취욕을 가진 동물이다. 지질하지만 가끔 남을 돕고 싶고 위기의 상황에서 웃음을 찾아낼 수 있다. 속된 것과 성스러운 것이 한데 뒤섞여있는 것을 발견하자 미간의 주름이 좀 옅어지고 편해졌다. 유치한 동물이지만 서툴게나마 내 마음을 표현하고 내 색깔을 조금씩 찾아간다면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만 지질한 게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자유로워질 때가 있다. 나의 사소한 이야기에 누군가도 위안을 얻고 자유로워진다면 좋겠다. 모순적인 내 이야기를 계속 써 내려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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