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오십 Jan 09. 2024

남기는 편지.

We’re Gonna Be Okay - Cody Francis

아무래도 나는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소.

하지만 내 장기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소, 부디 사양하지 말고 받아주시오.


심장, 각막, 폐, 간, 뼈, 피부… 필요한 건 쓰고 필요 없는 건 잘 태워 보내주시오.


내 생애를 마무리 짓는 건 나의 일부를 가진 당신이지만 부디 나의 삶에 대해 예의를 갖춘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길 바라오. 올 때 아무 이유 없이 태어난 것처럼 나도 그대에게 아무 이유 없이 주고 간 것이고, 나의 선택이라는 아주 작은 인과관계가 있을 뿐이오. 그저 본래 자기 것인 것처럼 불편함 없길 바라오.


쓸모 있다는 감각을 알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게 퍽 아쉽지만 왠지 모를 해방감이 드는 게 그리 나쁘지 않은 느낌이오. 나는 나의 쓸모에 대해 고민이 많았소. 어릴 적부터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도록 교육받았고, 일상 한문을 읽는 데에 어려움이 없으며, 그리 잘 하진 못했지만 고등수학을 성실히 수학했소. 과학, 특히 천문학에도 관심이 많아 별 보는 취미가 있었는데 그리 많이 하진 못 헸소. 고등학교를 304명 중 3등으로 졸업해서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공부에 재능이 있는 줄 알았지 뭔가. 전국에 고등학교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1등, 2등, 3등은 또 그 얼마나 많은지.

대학에 들어가서 전공을 공부하는데 책임감으로 임했소. 재미, 공부의 재미는 없었소. 꾸역꾸역, 그저 밥 먹듯이 공부했소. 안 한 것도 아니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졸업할 때가 되었고, 직장을 구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소.


나의 쓸모에 대해 그토록 치열하게 생각해 본 시기는 없었을 거요. 그리고, 나는 나의 쓸모를 남들과 비교하며 경쟁에 뒤처질 것에 두려워하고, 부러워하고, 또 내 쓸모를 개발해 나갔소. 눈부신 성장이었소.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지. 약간은 불쾌한 감각이었소. 아니, 솔직하게 발전해서 기분 좋은 감각보다 불쾌한 감각이 지배적이었소. 그 와중에도 다른 사람들 역시 이토록 밤을 새워가며, 이런 불쾌함을 설명하지 못한 채 참고 이겨낸다는 것인가, 치열한 것이 삶인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나는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소. 밤을 새우고 밝아오는 고요한 아침을 맞이할 때, 두근대는 심장을 붙잡고 쪽잠을 청할 때면 그냥 이대로 심장이 멎어버리면 싶었소. 성장, 이렇게 성장해서 나는 무엇이 되려고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는 건지.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면 가볍게 웃으면서 ‘네가 성장하려고 그러나 보다.‘,라고 귀엽다는 듯이 반응하더이다. 나는 또 불쾌해져버렸소.


솔직히 말하겠소. 나는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큰 사람이오. 그래서 그대에게 내 육신을 선물하게 된 것도 아주 조금은 있소.

남들에게 나의 쓸모를 증명한다면 사랑받을 거라고 생각했소. 그래서 아주 열심히 살았지. 아니, 솔직히 남보기에 괜찮은 일들만 찾아서 하고 살았소. 남들이 재미있다고 하는 여행, 남들이 보기 좋은 몸을 가꾸는 헬스, 근사한 음식점에서 멋진 사람들과 보내는 연말파티, 인내심 있고 배려심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한 행동들, 다양한 외국어, 그리고 많은 배움들. 나 좋은 일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남 좋은 일이 더 많았던 것 같소. 사랑을 많이 받았냐고? 글쎄..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었소. 왜, 많다고 느껴졌던 것도 일상이 되면 적게 느껴지는 때가 있지 않소. 나는 만족한 적이 없소.


감사하게도 나는 이렇게나 자주 밤을 새우고, 종종 담배도 피웠지만 건강한 육체를 유지하며 살아왔소. 다만 나의 쓸모를 누군가에게 증명해야 하는 과정들이 치욕스럽다고 느낀 탓에 정신적으로 버거울 때가 많았소. 결국 사람 사이에서 증명해야 할 건 신뢰일 뿐인데 많은 절차와 과정과 거절을 걸쳐야 한다는 게, 특히 사람을 기계 성능표처럼 표현한 이력서의 스펙 칸 앞에서 너무나 큰 치욕을 느꼈소. 요즘 직업시장은 대체가능한 부품으로 생각하고 사람을 뽑는 듯 하오. 그들 입장도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에 인간의 쓸모를 제품의 가격표처럼 적어내는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 같진 않소.


나의 부모는 감사하게도 나를 밝게 조건 없는 사랑으로 키우셨소. 그래서일까 나는 어릴 적에 나의 쓸모에 대해서는 그리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소. 쓸모…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본의 시스템 안에 은밀히 부품으로 안착하기 위해 나의 쓸모를 세상 앞에 드러내야 하는 것… 참 비참하지 않소? 내가 여기 있다고 소리 지르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모르는 세상 말이오. 세상이 진짜와 가짜로 뒤엉켜서 네온사인이 거리를 밝히고 밤이 되어도 낮인 것처럼 모든 것이 제자리가 있긴 한 건지 온통 뒤죽박죽, 모든 사물이 제 존재감을 강하게 주장하는 시끄러운 세상 말이오. 조용한 건 요즘 시대에 미덕이 아니오. 개성 강하고 시끄러운 세상에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가만히, 그저 조용히 제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참 버거웠소. 만일 내가 사물로 태어난다면 장독대로 태어나겠소. 소나기가 내려 장독대 안에 물이 차면, 부른 배에 만족하고 싶소. 빗방울이 물 표면에 튀기는 진동을 고요하게 느끼는 장독대가 되고 싶소.


나는 참 치사한 사람이오. 아무 대가 없이 얻은 생을 고작 시스템에 적응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부적응으로 다른 이에게 새로운 생을 선물한다는 명목 삼아 나의 생을 타인에게 떠넘겨버린다는 게, 그게 참 치사한 것 같소. 하지만 부적응이란 게 이렇게나 사람을 치사하게 만든다오. 부적응의 끝이 뭔지 아시오? 멸종이오. 시스템에 대한 분노, 환경에 대한 불평을 뒤로하고 스스로가 진화하지 못한다면 생의 가장자리로 물러날 수밖에 없소. 나는 스스로의 멸종을 택한 사람이오. 도태되다가 멸종되는 것들, 과학책에 많이 있지 않소. 어떠 이에게는 도태하다가 멸종한다는 표현이 나을지도 모르겠소. 그래서 나는 열등한 인간인건가? 하는 질문을 떨쳐내지 못한 채 당신에게 유쾌하지 못한 글을 남기게 되어 미안한 따름이오. 부디 당신은 삶에서 이런 질문에 본인을 보호할 수 있는 좋은 정신을 지니고 있길 바라오.

아무렇게나 살아도 당신은 나보다 괜찮은 사람일 거요. 일단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나보다 훨씬 멋진 사람이오.

내 장기가 부디 마음에 들길 바라며, 더 이상 당신의 삶에 아픔은 없길 바라며, 또 쓸모없이 사랑받는 삶을 축복하며 내 일부를 당신에게 기꺼이 남기겠소.


안녕히 계시오.

매거진의 이전글 프랑스 파리로 수학여행 가는 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