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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십 Jan 22. 2024

사랑이 무어라고 생각하는지 서술해 주시오.

돈과 사랑, 그리고 사람구실.

- 사랑이 무어라 생각하는지 서술해 주시오.


- 무조건적인 것?


- 그런 의미에서 당신 아버지의 의견 - 당신(취준생, 스물다섯)에게 방세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 왜 그런지 이해는 간다만 부모가 맹목적으로 자식을 사랑한다는 믿음에서 멀어지는 것 같소. 상대적으로 부모가 자식에 비해 넉넉한 자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부모가 자식의 방세를 걷는다는 건 서운하오. 서운하기에 서운하다고 그리 솔직히 말하겠소.


- 그대는 그럼 무얼 해서 먹고살고 싶소? (솔직히 나는 자네가 다시 부모 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영 마뜩잖소. 사람구실할 수 있을지 걱정된단 말이오.)


- 달리 사회에서 나의 쓰임 같은 건 잘 모르겠고, 그렇지만 이루고 싶은 건 많소. 이를테면 글이라던지… 글로 생계를 잇고 싶소. 달에 100만 원 정도, 평생… 가늘고 길게 말이오.

 묻기만 하면 답이 없기에 스스로 정해보았소. 삶이 그런 것 같소만.


- 그럼 그대는 취준생이 아니라 작가 지망생이로군. 글을 쓴다고 작가가 아니오, 돈을 벌어야 작가 소리를 듣는 거요. 사회에서 직업, 그러니까 자기 소개할 때 말하는 자신이 하는 업무는 다 돈과 관련 있는 거요. ’돈‘, 이러니까 너무 속물 같소?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돈이 꼭 필요하오. ’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사람구실 하는 거요. 그러니까 당신은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에 부모와 같이 살아도 떳떳하지 못한 거요.


- 하하. 그거 참 비수 꽂히는 말이오. 사람구실… 부모는 종종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말을 하지요.


 ’우리 애는 언제쯤 사람 구실 할까요..?‘


 이 질문은 아이가 영아기, 유아기, 청소년기, 청년기, 성년기를 거쳐서 모든 다른 의미를 함축하게 됩디다.

 영아기 땐 우스갯소리 반 진담 반 섞어서 이 조그만 아이가 언제쯤 제 숟가락으로 밥을 먹나, 유아기가 되면 언제쯤 아이가 사회의 규칙을 이해하고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파악할까, 청소년기에는 이렇게 수줍음이 많아서야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청년기가 되어서는 이 아이가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서 성인기가 되어서는 아이가 부모가 되길 바라며 이야기하더이다. 결국 부모는 끝없이 아이를 걱정하는 것 같소.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싶소. 우린 나무도 아니고, 대화해서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거나 납득시킬 수 있다는 희망으로 ‘내’가 생각했을 때 아닌 것 같으면 사랑하기에 할 수 있는 일을 하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하게 되는 일들이 있을 텐데, 우리는 너무 잘 교육받지 않았소? 그 교육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소만. 그래서 우린 더 기다리기 어려워지는 것 같소.


- 나 역시 때로는 역사의 굴레, 그러니까 시간의 굴레의 톱니바퀴이고 교체가능한 것 같단 생각이 들어 허무해질 때가 있긴 하오. 물론 그게 슬픈 일은 아니고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나’를 인정하고 대우해 주는 건 결국 ‘나’ 아니면 없는 것 같소. 영혼을 가진 인간은 오직 자신의 영혼만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것 아니오. 우린 기계가 아니라 잉여가 될 수 없소.


- 그렇소, 우린 잉여가 아니오. 질서라는 건 계절처럼 존재하지만 그 질서 속에 내가 속할지조차 미지수인 세상에서 나는 불안감을 느낀다오.

 

 사람구실 = 독립, 독립 = 경제적 독립


이 수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는 미성숙한 인간일 수밖에 없소.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안달 난 나 자신이 염치를 아는 인간이라고 안심될 때도 있었소.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의 삶에 있어서 ‘제때’, ‘표준’을 갈구하는 나 자신이 스스로를 닳게 만드는 것 같단 생각을 지울 수가 없소.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사람을 망치는 건 생각만으로도 할 짓이 아니오.


 그런 의미에서 참 웃긴 것 같소. 본디 글쓰기는 치유의 과정인데, 나는 스스로를 생각으로 괴롭히는 인간이고, 치유로써 글을 찾는다… 이 과정이 참 재미있지 않소?


- 즐기니 다행인 것 같소. 그래서 이제 귀향하는 것에 대해 마음가짐은 준비되었소?


- 그런 것 같소. 나도 나의 역할을 찾아 쓰임을 다하면 마음이 편할 것 같소. 아직 젊지 않은가. 아버지에게서 느낀 서운함은 사실 우리 사이에 ‘돈’이 오간다는 점이었소. 앞서 말했듯이 나는 사랑을 무조건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게 서운했던 거요. ‘돈’이라는 건 ‘지불 대가’이지 않소.

 세상에 거저 없구나, 를 깨닫게 해 준 아버지의 냉철한 판단에서 오는 개인적인 감정적 반응은 어쩔 수 없소. 생각은 훌륭하오만, 관계에서는 감정 역시 중요하오. 한편으로는 당연하다고 느낀 관계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생겼다는 변화가 어색하오. 하지만 적응하는 수밖에.


이제 잠시 부모의 집에서 머무는 동안 그들에게 집주인으로서의 대우를 해드려야겠소. 배려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새롭게 받아들이고…



- 사랑이 무엇인지 이제 다시 대답해 보겠소?


- 여전히 내게 사랑은 무조건적인 것이오.

 그러나 무조건인 거래는 없더이다. 관계는 거래요. 사랑은 관계요. 모순이지만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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