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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십 Feb 01. 2024

자기만의 방

은영과 아버지

"가지지 못하면, 억울할 수밖에 없는 거야."


은영의 아버지는 은영이 다섯 살 때부터, 은영이 이마트 장난감 코너 앞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엉엉 울기 시작하자 이 문장을 주문처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너도 가지고 싶으면 노력해서 가져."


장난감 코너에서 떠나가라 울부짖는 아이를 그저 이 상황이 피로하다는 듯 무심하게, 한편으로는 엄하게 팔짱을 끼고 대각선 코너 앞에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은영의 아버지다. 맞은편 50대 속옷가게 아주머니와 그 옆 속옷가게 점원이 속닥거린다. "어유, 저거 그냥 사줄 만도 한데." "아뇨, 애들 어렸을 때부터 저런 레고에 맛들 리면 돈 많이 깨져요." "아, 그런 거야? 아니, 그래도 다른 거라도 좀 사 줄 수 있는 건데."


그런 소곤거림이 들리는지 은영은 더 크게 울어재꼈다.


"요즘 애들 바로바로 만족시켜 주고 그러는 훈육이 더 정서에 안 좋은 거래요." 반대편 물고기 용품을 판매하는 점원이 다가와서 한마디 거든다. "아니, 그래도 나 때는 한 번 엄하게 혼나도 한 번 크게 안아줬는데 말이지." 속옷가게 아주머니는 영 아이가 안쓰러워 보이는지 책상에 놓인 전표를 정리하다가 연필꽂이의 볼펜을 정리했다가 가만히 있지 못한다. 마트 앞 순두부집에서 먹고 나올 때 받은 연필꽂이 옆에 놓인 누룽지사탕을 들고 은영에게 다가간다.


"애, 이거 먹고 일어나. 여기서 울어도 너 그거 못 가진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꺽꺽 숨이 막힐 듯 울던 은영은 새롭게 쥐어진 누룽지사탕을 들고는 잠시 가빠진 숨을 고른다. 그리고, 다시 엉엉 울기 시작한다.


"나도, 나도 이거 사줘!"


이제는 크게 소리까지 지르는 은영을 둘러메고 은영의 아버지는 마트를 나왔다. 그날 은영의 아버지와 은영은 왜 단 둘이 이마트에 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은영은 이 기억이 자신의 최초의 기억임을 확신한다.



*



 은영의 아버지는 어릴 적 사고로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조용한 곳에서 단 둘이 대화하는 건 잘 들리지만 시끄러운 곳에서 대화하는 건 어렵다. 남들 귀에는 적당한 소음도 그의 귀에는 아주 날카롭게 들리기도 한다. 보청기를 껴야 하지만 첫째 은수가 태어난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계획되지 않은 아이가 찾아와서 돈을 모으느라 미루게 되었다. 때문에 평소에는 말귀가 어두운 채로 살아갔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소곤거리면 잘 듣지 못하고, 아무리 물건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아도 타인에게 닿는 소리는 컸다.


 한편 은영은 귀가 밝았다. 식탁을 깨끗이 쓰기 위해 식탁 위에 얹은 유리판과 락앤락 유리 반찬통이 날카로운 파열음에 이어 반찬통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딸깍 딸깍, 딸깍 딸깍.... 오늘 반찬은 두 개다. 거기에다가 라디오 소리가 커다랗게 거실을 울리고 있다. "오늘의 영어문장, I will go out for dinner tonight. 저는 오늘 밤에 저녁에 외식할 거예요입니다." 은영의 아버지가 은영에게 도움이 되라고 매일 아침 트는 EBS 영어라디오 소리다. 활기찬 목소리로 사회자는 밝게 외친다. "자, 따라 해 볼까요? I, will,,, go out,,, for dinner,,,, tonight... 자. 오늘 영어 수업은 여기까지! 내일도 또 함께해요!"


"고은영! 얼른 나와서 밥 안 먹고 뭐 하냐. 아빠가 밥 다 차려놓고 기다리는데 밥 숟가락은 알아서 차려야지."


 은영은 유리가 유리와 맞부딪힐 때 들린 파열음에서부터 이미 오늘 아침이 더럽혀진 기분이었다. 책상에 놓인 안경을 쓰고 주방으로 나와 의자에 털썩 앉는다. 자연스럽게 통에서 쇠숟가락 젓가락 네 쌍을 꺼내어 다소곳이, 그리고 조용히 내려놓는다. 은영의 언니와 어머니는 이미 자리에 앉아서 미역국을 먹고 있다. 깨작거리며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는 은영에게 한소리 한다.


"한국 사람이 김치를 먹어야지. 김치를 안 먹으면 돼, 안돼?"


은영은 냄새에도 예민한 편이다. 매콤한 고춧가루, 알싸한 마늘, 무엇보다 비릿한 액젓향이 뒤섞인 김치는 평생 아버지의 밥반찬이었기에, 그리고 은영 말고도 다른 식구들은 맛있게 먹는 반찬인지라 은영은 한 번도 싫은 티를 내지 못했다. 만약 은영이 김치 냄새가 싫어서 밥을 같이 못 먹겠다는 말이라도 한다면 그때 은영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인마, 네가 외국인이냐. 네가 김치를 안 먹으니까 김치냄새가 싫은 거 아니냐. 하나만 먹어봐."


 중학생 때부터, 그리고 언니가 아빠와 겪는 갈등을 보아왔기 때문에라도 은영은 자신의 불편함을 묵묵히 감춘다. 다른 가족 역시 나에 대해서 참아주고 있는 게 있을 것이기 때문에. 아침마다 은영이 코로 숨 쉬는 걸 포기하고 자연스럽게 입으로 호흡하고 있는 것처럼.



*



은영은 승부욕이 있고 경쟁심이 엄청난 편이었다. 물론 아버지가 그렇게 은영을 키웠기 때문인지, 원체 그런 성향을 타고났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성격 덕에 중학교 학력평가에서도 매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똑똑함과 성실함, 끈기가 은영의 원동력이었지만 그 힘을 작동시키는 원천이 궁금했던 은영의 반 친구들이 공부비법을 물으면 은영은 웃으며 유쾌하게, 하지만 의미심장하게 대답했다.


"복수할 대상이 있으면 쉬워."



*



인생의 모든 관계는 거래로 형성되고, 유지되려면 서로가 윈윈 하는 거래를 해야 한다. 주거니 받거니,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주고받는다.


은영이 복수할 대상은 아버지다. 은영의 아버지는 중학생이 된 은영에게 말했다.

"네가 외고에 진학하면 100만 원, 과학고등학교에 진학하면 150만 원, 영재고등학교에 진학하면 200만 원. 이렇게 지원해 줄 테니 열심히 해봐."


아버지는 은영과 은수를 물심양변 지원했다. 초등학교 하교 시간에 맞춰 픽업하고, 태권도학원에 보내고 태권도 학원 위층에 있는 영어학원이 끝나면 퇴근하면서 은영과 은수를 데리고 집으로 오고...


"네가 학원 더 다니고 싶으면 말해. 더 다니게 해 줄 테니까."


하지만 은영은 목표했던 외고 입시에 실패했다. 은영의 성적에 안 될 리가 없는데, 어째서 자신이 면접에서 탈락한 건지 은영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걸러진 이유에 대해서 납득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은영은 문득 불안해졌다.


 아버지는 거래는 동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은영은 좀처럼 자신이 없어졌다. 자신이 아버지에게 좋은 상품이 될 자신이, 자랑하고 내세울만한 자식이 될 자신이. 자신이 만약 내세울만한 자식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만 영원히 알고 싶지 않다.


아버지는 은영과 은수를 교육시키는 것을 '투자'라고 말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투자비용을 알뜰살뜰하게 챙기려면 공부를 '잘'해야 했다. 공부를 잘하는 게 부모에게 효도하는 거라는 친척 어르신의 말도 아버지의 평소 입버릇, '투자'에 '성공'해야 한다,


"애들한테 투자해야, 그래야 하는 거지."


이 말에 대해 굴절되어 은영과 은수의 뇌리에 박혔다. 그래, 투자. 부모에게 자식은 투자 상품이지. 투자 상품...


아버지는 자식을 낳아 잠재력이 있는 무형가치의 자산까지 고려해 분산투자하는 자신이 현명한 투자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은영은 어떻게 해야 그에게 가장 큰 충격과 공포, 더 나아가 깊은 상처를 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자신의 자식을 적나라하게 자산으로 평가하는 게 끔찍했다.


 때로는 악몽을 꿨다. 자신이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채 영원히 사회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잉여인간이 되어 침대에 녹아내려있자, 아버지는 웬 검은 망토를 두르고 나타나 우스꽝스러운 분홍색 마법봉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나는 유체이탈되었고, 내 육신은 아버지의 지휘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몽달걸음으로 걸어간 복도 끝에는 얼굴에 기름기가 가득한 턱시도를 입은 돼지가 있고, 은영은 그 돼지 앞에 선다. 사방팔방에서 돼지들이 꽥꽥 우는 소리가 머리를 울려온다. 좀비같이 온몸이 축 늘어진 채 뒤를 돌아선 은영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버진로드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 끝에는 마법봉을 든 채로 안심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버지가 서 있다... 은영은 끔찍한 마음에, 분노에 가득 차서 눈을 번쩍 뜬다.


 자신이 낳은 자식을 거래의 대상으로 보던 건 근대에나 있던 일이 아니었나. 아이를 낳았지만 기를 형편이 되지 않으니 좋게 말해 '수양딸'로서 친척집에 보내어 가사를 돕게 만든다던지, 성년이 되면, 혹은 그즈음이 되면 결혼 못한 뒷방 늙은이에게 시집보낸다던지...


  아버지는 분명 은영과 은수를 학대하지 않았다. 몽둥이를 들고 매질을 한 적도 없고, 오히려 밥도 꼬박꼬박 먹이며 어릴 적에는 굿 나이트 뽀뽀도 해줬다. 그럼에도 은영은 아버지에게서 기묘한 기분이 든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그런 홍길동적인 생각이... 자신의 아버지가 조선 후기에 태어났으면 아주 훌륭한 상인이 되었으리라 확신한다. 이토록 '상'에 대한 개념이 뚜렷해 집안에도 자본의 생리를 끌여들였으니...



*



은영은 학업스트레스로 멘털관리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 결과로 수능을 망쳤고, 목표한 대학에 가지 못했다. 이후 하향지원한 수시 대학 면접에서 낯빛이 어두운 게 티가 났는지 면접 장소에서 마주친 면접관들이 질문했다.


"학생은 어디 안 좋은 일이 있었나요?"


그날 아침에도 아버지는 은영에게 한마디 했다.


"은영아, 이제 너도 대학 가면 엄마랑 나는 편하게 살 거다. 너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일해서 너랑 네 언니 뒷바라지 할 거니까 너도 최대한 빨리 직장 잡아라. 그게 효도하는 거다. 너네 친척언니들 봤지? 4년 동안 공무원 준비만 하더니, 결국 뭣도 안 돼가지고 자기들 부모 등골 빼먹는 짓 하고 있는 거. 너 그렇게 되면 안 된다."


은영은 그 말이 꼭 자신에게 내려진 저주 같았다.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그 말이 그의 족쇄가 될 것임을 은영은 알고 있었다. 입술을 꾹 다물고 창밖만 바라봤다. 이 대학교는 지방에 있는 대학이지만 국립대학교라서 학비가 저렴하고 지역가산점을 받아 서울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래 목표로 하던 대학은, 그 대학을 평생 도전할 수도 없을 것이라는 무력감에 사로잡힌다. 물론 이 말은 아버지에게 꺼낼 수 없다. 이미 은영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그 대화를 한번 자동 추첨을 돌렸기 때문이다.


은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갈 무렵, 아버지와 자주 싸웠다. 은수는 심리학과에 지원하고 싶은데 아버지는 심리학이 밥을 먹여주냐고, 그거 해서 뭐 할 거냐는 말과 함께 임용시험을 봐서 선생님을 하라는 권유 아닌 압박을 넣었다.


"야, 선생님이 얼마나 좋은 직업인데, 그거 아무나 못한다? 교대 나온 사람, 아무도 무시 못해! 어디 가서도 선생님, 선생님 소리 듣지. 방학이면 쉬지. 거 장난이 심하긴 하지만 순수한 애들이랑 또 같이 있는 거잖아."


"그렇게 선생님 하고 싶으면 아빠가 하지 왜 강요를 해요? 나 애들도 안 좋아하고 돈 많이 벌고 싶은데 왜 교대를 가야 하냐고. "


"다시 생각해 봐. 너 정년 보장 된 직업 갖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아빠 친구 중에 교장 된 애가 하나 있는데 만날 골프 치러 다녀. 교사 못 번다, 못 번다 하니까 그래 보이는 거지, 그래도 정작 시켜주면 나오는 애는 없다."


"아 자꾸 왜 아빠 친구, 아빠 시대 얘기를 하냐고요. 나는 내 시대 사는 건데, 아 진짜 지겨워서 말 안 할래."


"야, 인마. 아빠한테 눈 똑바로 떠 인마!"


아버지는 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은수의 뒤통수에 분이 풀리지 않는지 구시렁댄다.


"저 계집애가 기껏 키워놨더니 은혜도 모르고... 저거. 방문 열어서 그때처럼 한번 혼쭐을 내야 해."


떠오르는 기억을 끝맺지 못하고 정신이 팔린 채 면접장에 들어선 은영은 면접에도 순발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왠지, 아버지, 어머니, 언니, 모두가 사는 집에서 살다 보면 자신이 점점 멍청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들의 관계에서 잡음이 없도록 자신이 윤활유가 되어 집안에 기쁨이 오도록 노력하는 것도 어릴 적의 '가정이 행복해야 한다.'라는 본능적인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깨달은 이후로 은영은 이제껏 자신이 가족에 쏟는 에너지 때문에 점점 자신의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행복은 모두가 노력해야 하는 것'


이 명제에 동의할 사람은 많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적다. 노력의 방향도 제각각이므로 다른 방향성에 대해 무작정 지적을 하면 더욱더 관계는 와해된다. 은수는 이러한 깨달음 앞에서 그저 생각했다.


'내가 혼자 살아야겠다. 부모가 영향을 미칠 수 없도록 아주 멀리.'


은수는 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교대에 입학했다. 아버지가 은수에게 약속한 매달 40만 원의 용돈과 새 스마트폰, 그리고 어머니가 롯데백화점에서 입학선물로 사준 새 옷들과 함께 은수는 집을 떠나는 데에 성공했다. 은수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바란 적 없는 선생님이 되어서 아버지가 없는 나 혼자의 집을 즐기겠노라고. 그곳에서는 친구들도 마음껏 부르고 주말에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삶을 즐길 것이라고.



은영은 그와 반비례하게 움직였다.


똑같이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은 있으나, 그에 대해 저항하기에는 전통적인 가족관이 지배한 은영이었다. 유교적 사상에 의해 아버지는 존경해야 할 대상이고, 아버지에게 예의 없이 구는 것은 아버지에게 대우받지 않겠다는 선전포고임을 알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수용받지 못할 걸 알면서 바락바락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은수를 보며 혀를 찼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언니를 안 좋아하지, 이렇게.


은영은 은수와 아버지를 관찰자로서, 때로는 어머니에 의해 물과 기름 같던 아버지와 언니의 사이의 계면활성제로써 움직였다. 좋게 좋게. 그리고 오해가 없도록.


은영의 외부사정은 이토록 시끌벅적했는데 그 때문인지 은영의 내부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불안과 혼란에 대해서는 어머니와 아버지도, 언니도, 더 나아가 은영 자신도 잘 알지 못했다.


사람들이 싫어지고, 미워지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다는 말을 그 아무에게도 꺼내지 못한 채 은영은 얼렁뚱땅 대학생이 되었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성공하지 못했으나, 집 밖으로 나와 자신을 통제할 이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갑갑했던 지난 시간들이 과거로 느껴지고, 가만히 있어도 자유가 콧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은영은 대학 내내 우울과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점수를 맞춰서 들어온 대학에서는 친구들을 사귀고 싶지도 않고, 4년 내내 머물러야 하는 기숙사와 학과 건물도 맘에 들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은영은 타오르는 복수심에 반비례해 다시 부모에게 신세를 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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