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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십 Feb 04. 2024

자기만의 방

고은영과 아버지 2


안타깝게도 은영은 타오르는 복수심에 반비례해 다시 부모에게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은영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여전히 어떤 ’ 일‘을 해서 자신을 건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하는 일 없이 월세로 그동안 아르바이트나 설날 용돈으로 모아둔 돈을 써버리는 건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모의 집에 얹혀사는 건 마뜩잖아도 다시 집에 들어왔다. 어쩌면 돌아올 집이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비록 부모님이 아침밥을 챙겨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는 - 직장인보다 더 부지런해도 시원찮을 백수인데 - 이유로 ‘너 집 나가라’, 하지만 말이다.


은영이 집에 들어온 날 저녁, 은영은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내가 지금은 돈도 없으니 얹혀살게요. 1년 안에 독립하고 취업하고 갚으면 되잖습니까. 아버지가 나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것도 알아요.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것도 알고, 그런데 제발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게으르다.’ 말하거나 한숨 쉬지 말아 주실래요? 아버지가 하루에 한 번 집 나가라, 하는 건 참을 수 있는데 뭘 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게으르다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아버지 걱정이 나한테도 옮는 것 같아서 저도 힘들거든요. 아버지가 내 눈으로 내 인생 살아본 게 아니라서 못 미더울 수 있는데 열심히, 성실히 잘 살았거든요.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나 평소에 제 삶에 대해 대화도 잘 나누지 않았고, 저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시잖아요. 아버지 눈으로 보는 저는 제가 아니에요. 아버지가 눈으로 본 한심하고 게으른 ‘고은영‘은 제가 봤을 때 제 인생 열심히, 갈고닦으려고 하는데 잘 몰라서 헤맬 뿐이지 누구보다 열심히 살려고 하는 거 보이거든요. 그리고 계획 같은 거 묻지 마세요, 전체적으로 언제 나갈 수 있는지, 취업할 수 있는지 날짜는 모르지만 잘 돼서 나갈 거니까요. “



식사자리에서 아버지는 마중물 이야기를 꺼냈다.



“은영아, 어릴 때 아버지가 살던 동네에 가면 말이다, 기계에 마중물을 넣는다.”


은영은 벌써 몇 번째 듣는 이야기에 하품이 나온다. 아버지는 아랑곳 않고 말한다.


“마중물을 넣고 펌프질을 하면 지하수에서 물이 막 뿜어져 나오는 거다. “


“나는 너 대학 보낸 게, 마중물이었다. 네가 졸업하면 바로 일자리 얻어서 독립할 줄 알았는데, 다시 집에 오니까 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렇다. 너 앞으로의 계획이 뭔지도 모르겠고… 아무튼간에 너네 언니는 바로 졸업해서 일 얻고 저네 집이 있으니까 내가 봤을 때 게을러 보이고 어쩌네 해도 암말도 안 하는 거다. 지 직장에서 힘든 일 있어서 쉬려나 보다, 그리 생각하고 말이다. 근데 네가 주말에 늦게 일어나면, - 늦게 잤는지 상관없이. - 네가 네 인생 운용을 못하고 있는 거 같아서 짜증이 난다. 치열함이 없는 것 같아서 화가 난단 말이다.”


“아버지, 언니는 지난 일주일 휴일 내내 늘어져서 자고 유튜브 보고, 놀러 다니고, 밥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거든요. 제가 밥도 다 하고, 설거지도 다 하고, 청소도 제가 다 했어요. 어릴 때도 그랬죠. 아버지나 언니나, 다들 제 이타성, 배려심에 대해서는 감사해하기만 했지, 결국엔 자기 시간을 이기적으로 쓰고 결국엔 제 잇속은 가장 먼저 챙기는 사람들은 아버지, 언니였죠. 좋은 인간성을 가진 사람을 곁에 둔 타인은 그게 굉장히 이득이고, 편안하니까 결국엔 자기 좋을 대로 이용하고 때가 되어서 그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가장 먼저 중요시하고 쓰지 않았을 땐, 그리고 필요성, 가치가 없어졌을 땐 전부 ‘네’가 못해서 한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언니가 중학생 때, 고등학생 때 아버지랑 언니랑 엄청 싸운 거 기억하시죠? 저는 아버지나 어머니와 그렇게 싸워본 적이 없어요, 제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말이에요. 저는 솔직히 억울했어요, 싸운 건 아버지랑 언니인데, 그 사이에서 눈치 보면서 서로 관계가 나아지길 기다리고 돕는 거에 아주 신물이 난다고요. 그리고 또 더 큰 갈등이나 소란이 있으면 ‘너도 말썽이니?’ 하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그러니까 부모에게 또 다른 걱정을 안겨주기 싫어서 제 안에서 제가 가진 고민이나 걱정, 고통을 혼자 삭여냈다고요.


언니는 자기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이기적으로 구는 게 저는 참 싫었는데 말이에요, 어머니 아버지는 그에 비해 순종적이고 협조적인 제가 참 마음에 들었겠죠. 그리고 종종 칭찬하셨죠, 언니에게 양보하고, 배려하는 제가 참 좋다고요. 근데 지금은 언니가 독립적으로 제 삶을 사는 것 같아서 자랑스럽다고 말씀하시니… 제가 참 바보 같았어요. 싸우기 싫다고 내가 원하는 거 주장도 못하는 바보가 되었다니 말이에요. 최소한의 공격성마저도 없는 그냥 그런 사람이 저였는데. 지금 생각하고 나니 이용당한 것 같네요.


저는 제가 없는 거 같아요. 살면서 제 마음대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아버지 입맛에 맞추랴, 언니 입맛에 맞추랴. 제가 고집부리는 거 많이 못 보셨죠?

저도 남의 말을 너무나도 쉽게 스펀지처럼 수용하는 제가 힘들 때가 있어요. 저도 줏대 있게 살고 싶은데 말이죠. 아무리 누가 ‘너는 게을러.‘, ‘너는 할 줄 아는 것도 없어.’라고 하면 ‘네가 뭔데?’, ’나 잘 살고 있거든.‘ 이렇게 반박해 본 적도 없어서 말이에요, 한때는 남들이 아무리 ’ 네가 그렇다.‘ 떠들어 본 들 내가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견뎠는데 그건 정말 그냥 ‘견뎌낸 것’이었어요. “


“왜, 네가 잘 살고 있으면 자신감 있게 말하겠지, 상관 말라고. 근데 네가 자신 없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네 인생에 자신 없으니까, 자기 확신이 없으니까.”


“뭣도 없는데 자기 확신은 엄청 커다란 사람도 있고, 충분히 괜찮은데 자기 확신이 작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근데 저는 후자인 거죠. 자신감이 없어서 힘드니까 저한테 아버지가 가진 불안을 저에게 심어주지 말고, 아버지 고민을 저에게 떠넘기지 말아 주세요. 저는 잘 살고 있으니까요. 가끔 아버지 얼굴 보는 게 어려운데, 그 이유는 아버지가 저를 대하는 말이나 행동이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것 같아서 그래서 불쾌해요. 나 그런 사람 아닌데, 네가 그렇게 보면 그렇게 될 것 같아서 두렵거든요. 왜, 사람들이 기를 써서라도 좋은 직장, 좋은 옷, 좋은 집에 살고 싶어 하는 이유가 그렇게 살면 주변 환경이 바뀌고, 주변 환경이 바뀌면 그 환경에 맞게 사람들이 바뀌고,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인들 역시 ‘나’와 비슷한 취향, 아비투스를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된다, 그런 정체성을 가진다고 착각하게 되거든요. “


“그래도 난 네가 아침밥을 안 챙겨 먹고, 그러는 거에 대해 말하는 거 어쩔 수 없다. 네 언니는 독립을 했는데 넌 안 했잖니. 네가 감수해야 하는 거고, 그게 싫으면 빨리 나가. 나도 너 보면 스트레스받는다. “


“그래요. 나도 좋은 제도 알아보고 나가고 싶었는데 아버지나 어머니가 그러셨죠, 일단 직장부터 잡으라고. 근데 저는 아직도 어떤 조직에 들어가야 하는 것에 대한 불신이 있어서 신중하고 싶거든요? 아버지는 그런 말 들을 준비도, 또는 들어줄 생각도 안 하시고 그냥 자기 좋을 대로 ‘얘가 알아서 때 되면 직장 잡겠거니.’ 안일하게 생각하셨기 때문에 저 역시 지금 이 상태가 된 거고요. 아무튼, 저도 남이 볼 때 못 된 사람 같아 보일지라도 제 이득을 위해서, 최소한 저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모순된 말이라도, 혹은 최소한의 공격성이라도 가지고 있으려고요. 남 배려하느라 내가 찔리고 있는데, 그걸 착하다, 그렇게만 바라본 사람들에게 원망이 생기네요. 아무튼간에, 직장 먼저 잡으라고 하느라 늦어진 거고, 저는 집 먼저 구하고 싶었는데 고민하느라 저도 시기를 늦추게 된 거예요. 그러니 감당하시죠.”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은영이 자주 외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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