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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십 Feb 06. 2024

가야 할 때를 놓친다면.

live, laugh, love - Sasha Sloan

의수는 병실에 누워있다. 병실에서 누워서 간간이 들려오는 tv소리도 벌써 세 달째다.


세상이 무심하지, 아니, 어쩌면 살 만큼 살았기에 지금이 떠날 때라고 속삭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작은 아들 부부가 찾아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눈에는 걱정과 연민, 그리고 슬픔이 뒤섞여있다.

"아버지, 어머니가 119에 신고해서 아버지 지금 병원에 있는 거야. 아버지 뇌졸중이 와서 왼쪽 몸이 잘 안 움직일 거야."

상황을 보아하니 tv를 켜두고 소파에서 낮잠을 청하려던 차에 뇌졸중이 와서 의식을 잃었고, 소파에서 잘 자고 있는가 보다 생각한 아내는 주방과 마당을 오가며 집안일을 하던 차였다. 아내는 너무나 평온히, 가만히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고 떨리는 손으로 다이얼을 누른 것이다.


처음 한 달은 괜찮은 줄 알았다. 작고 연약한 목소리지만 말로 의사표현을 할 수 있었고, 아이들도 나를 찾아와서 시골집을 혼자 지키고 논을 살피는 아내의 안부를 전해줬기 때문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가끔 기관지에 가래가 쌓이면 석션을 해야 한다. 석션은 가래를 뽑아내는 일 따위를 말하는데, 그게 꽤나 고통스럽다. 기구를 거의 폐까지 쑤셔 넣는 바람에 하고 나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다. 첫날, 아들자식이 동의서에 사인을 하는 바람에 이유도 모르고 석션을 당했었다. 그때 내가 힘만 있었으면 아들 녀석 멱살을 잡고 흔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럴 거면, 이렇게나 오래 좀비처럼,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가끔은 내 정신조차 잃어가고 있단 걸 느낄 때면 다시 쓰러져있던 그날, 그때 집으로 돌아간다.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거요. 내가 뇌졸중으로 죽어가는 것이 살려야 하는 순간이라고 오해하지 않도록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단정히 앉아 있을 테니, 당신은 그저 '저 양반, 낮잠을 곤하게 주무시는구먼.' 생각하고 자네는 자네 할 일을 하시게나. 내가 완전히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면, 그제야 당신이 날 한 번 돌아봐주고 내 손 한 번 잡아주면 고맙겠네.



이 상상도 이제는 질릴 따름이다.

  집에서 조용히 생을 마무리한다는 생각은 종종 했었지만 그것은 신고당하지 않았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누군가는 재수 좋은 소리 하네, 하겠지만 지금 누워서 3개월째 석션 당하고, 마비가 와서 몸의 반절은 거의 움직이지도 못하고, 밥은 콧줄로 먹고, 대소변을 간병인이 치워주는 일상을 살아본다면 그게 과연 재수 좋은 소리인지 재고해 보길 바란다.

  내가 10년만 더 젊었어도, 덜 고생했어도 불편할지언정 몸을 움직여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근데 재수 없게도 난 벌써 여든 살이다. 심지어 뙤약볕에서 논일하고, 내 몸은 내 멋대로 써온 여든 살.



점점 힘이 빠져나가고 있다. 많이 야위고, 손과 발은 퉁퉁 붓고, 종아리에는 욕창이 생겨 몸이 가렵다.


자식들이 간병인을 고용해 줬는데 월에 400만 원이 나간다고 들었다.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닌데, 간병인이 전화하는 걸 우연히 들었다. "네, 400만 원. 통장으로요. 네네. 네, 잘 계셔요. 눈도 깜빡이시고, 가끔은 화도 내시더라니까요."

  둘째 아들네 자식들이 셋이나 있고, 지금 하나는 대학에 입학할 시기라 힘들 텐데, 내가 애들한테 짐이 된 거지 싶다. 그나마 첫째 아들은 자식들을 많이 키워놨고 곧 선생짓도 그만둔다고 하는데, 바쁜지 쓰러진 이후로는 세 번 얼굴을 봤다. 볼 때마다 걱정이 어리긴 했지만 밝은 목소리로 힘을 북돋아줘서 보고 싶은데 영...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내 몸이 갑자기 못 쓰게 되어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대변이 불쑥 나오게 되면 화장실로 데려가 샤워기 물로 오물이 묻은 부위를 씻겨주고 새 속옷과 새 바지로 갈아 입힘을 당했다. 이거 원, 어릴 때로 돌아가버린다.

 젊었을 때 이런 도움을 받았더라면 감사함보다 수치심이 더 컸으리라.


 하지만 종종 수치스럽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 신체의 일부를 남에게 보여주는 것, 그리고 내 대소변을 남에게 보여주는 일 따위가 수치스럽지 않다면 그건 정말 많이 힘든 분 이야기일 것이다.

 그럴 때면 내가 버스를 놓친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가야 하는데, 가야 했는데... 이제는 걸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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