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태엽 오렌지

앤서니 버지스, 박시영 옮김.

by 이오십

시계태엽 오렌지를 읽었다. 제목이 이해가 안 가서 궁금했기 때문에 첫 장을 넘겼다.

책을 구성하는 3부 중 1부 내내 화자인 ‘나’, 알렉스는 보기 힘들 정도의 폭력을 타인에게 행사하는 인간이다. 1부 마지막에는 결국 같이 비행을 저지르는 동료의 배신으로 교도소에 들어가서 ‘갱생 요법’을 받는다. 워낙 악행을 무차별하게 저지르고 다니는 화자가 1부 마지막에 교도소에 들어가게 됐을 땐 통쾌하기도 했고, 사회질서를 혼란스럽게 하는 인물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걸까, 궁금증이 컸다.


책에 묘사된 갱생 요법은 혈관에 폭력을 혐오하게 되는 약물을 주입한 뒤, 억지로 폭력 상황을 시청하게 만들어서 폭력을 일삼던 인간에게 폭력에 무조건 반사적인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폭력을 보기만해도, 비도덕적인 생각을 해도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파괴하는 주인공에게 알맞는 참 좋은 방법이란 생각을 했지만 ,이어서 정부는 화자와 같은 수용자들을 갱생시켜 교도소 밖으로 내보낸 뒤 사상범을 더 많이 수감시킬 계획이란 내용을 읽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너는 착한 아이로 만들어질 거다. 6655321번, 얘야. 결코 다시는 폭력을 휘두르고 싶거나 국가의 평온을 해치는 어떤 일도 저지를 욕망이 일어나지 않을 거다. 난 네가 그것을 모두 고려하면 좋겠다. 그 점에 대해 네 스스로 진짜 분명하게 하면 좋겠구나. 그 점에 대해 네 스스로 진짜 분명하게 하면 좋겠구나.” 내가 말했지.


“오, 착하게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겠죠.” 여러분, 난 속으로는 진짜 큰 소리로 웃었지. 놈이 말했어.
“착하게 되는 것이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6655321번. 착하게 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일 수도 있어. 말하고 보니 자기모순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번 일 때문에 며칠 동안 잠 못 들어 할 거야. 신은 무엇을 원하시는 걸까? 신은 선 그 자체와 선을 선택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을 원하시는 걸까? 어떤 의미에서는 악을 선택하는 사람이 강요된 선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보다는 낫지 않을까? 심오하고 어려운 질문들이구나, 6655321번.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윤리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제거당하겠다는 선택을 내릴 때, 넌 진짜로 선을 선택한 것이겠지. 난 그렇게 생각하고 싶구나. 신이 우리 모두를 돌보시겠지, 6655321번, 난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114 - 115p


교도소로 알렉스를 보내어 갱생요법을 받게 한 것은 국가가 알렉스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이었다. 기분이 이상해졌다. 국가의 폭력. 간담이 서늘해졌다. 알렉스는 내내 무자비한 폭력배로 그려졌기 때문에 그에 마땅한 벌로 폭력을 당하는 건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파친코에서 선자의 남편인 이삭이 사회운동을 하다가 감옥에서 온갖 고문을 받고 8년 뒤 초주검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장면을 봤을 땐 마음이 아프고, 국가가 폭력을 행사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국가에서 선을 판단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사회에서 죄 없는 사람들을 파괴하는 폭력배들에 대해서는 강력한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순이다. 어쨌거나 국가가 폭력을 행사하는 건 남용으로 인한 또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또 다시 생각해보면, 타인의 권리를 짓밟고 훼손하는 무뢰한에게는 그 사람의 권리 역시 누군가 지켜줄 거란 기대도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사회질서의 덕을 보면서 자신은 엉망으로 살겠다는 게 무뢰한이지… 알렉스는 너무나도 무뢰한, 쓰레기 그 자체라서 이 책을 읽을 때 ‘저런 파렴치한 새끼… 너는 온갖 불행 다 떠안고 살아라.’라는 생각만 하게 되더라.


이후 3부에서 알렉스는 다시 교도소를 나온다. 집으로 돌아갔지만 알렉스의 방은 새로운 하숙인 조의 차지가 되었고, 갈 곳이 없어서 이곳 저곳 과거와 똑같이 폭력이 난무하는 거리를 떠돌다가 과거에 자신이 폭력을 행사했던 작가의 집에 도달하게 된다. 알렉스는 교도소에서 반성을 한 적이 없다. 국가의 갱생요법에 의해 그저 자신의 몸이 변화하게 되어버린 것이고, 폭력을 보면 너무 아파서 빌고 싶어지게 되니까 나쁜 짓을 못하게 된 셈이다. 그런 상태에서 과거 작가를 팼고, 작가의 아내를 강간하고, 작가의 아내를 끝내 죽게 만든 범인인 알렉스가 그 집에서 환대를 받게 된다. 나는 여기서 정말 기분이 이상해졌다. 알렉스는 뉴스 2면에서 갱생 불가능할 것 같던 초강력 범죄자가 지금은 법을 두려워하는 시민이 되었다는 기사에 실렸다.


“넌, 내 생각에도, 죄를 저질렀어, 그렇지만 그에 대한 처벌이 너무 심했어. 저들은 너를 인간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만들었어. 착한 일만 할 수 있는 작은 기계지. 이제 똑똑히 알겠구나, 조건반사 기법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음악이나 성적인 행동, 문학과 예술,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을 주는 근원인 게 분명해.“

“예, 맞아요.” 이 친절한 사람이 준 필터 담배를 피우면서 내가 대답했지.

“저들은 항상 도가 지나치게 일을 벌이지.” 마른 행주로 접시를 닦으면서 멍한 듯이 말하더군. “그러나 본질적인 동기는 죄 그 자체야. 선택할 수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닌 거야.”

“그게 신부 놈이 말한 거지요. 제 말은 교도소 담당 신부요.”

“그렇게 말했어? 그래, 그렇게 말했겠지. 그래야만 해. 그렇지, 기독교인이니까 말이야. 그렇지? 자, 그러면 말이야, 이제.“ 십 분 전부터 닦고 있던 같은 점시를 계속 닦으면서 그가 말했지. ”내일 너를 보러 올 사람이 몇 명 있을 거다. 내 생각으로는 네가 소용이 될 것 같구나, 이 불쌍한 애야.

183p


1부 마지막에서는 역시나 평소 살던대로 알렉스 자신의 무리들과 가정집을 털고 폭력을 행사하고 다니다가 그 집 주인 할머니를 조각상으로 내려쳐 죽게 만들고, 도망치려다가 무리들 중 하나였던 ‘딤’의 배신으로 혼자 경찰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알렉스를 보면서 동료의 배신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정확히는 살인을 했기 때문에 교도소로 간 것이었다.


자신의 아내를 죽게 만든 범인인지도 모른 채 알렉스를 환대한 작가는 자신이 당파적인 사람이 아니고,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기 때문에 알렉스에 대한 기고문을 쓰고 현 정부의 범죄 대응 정책에 대한 비인간적인 면모를 고발하기 위해 자신이 아는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모은다.


“우리 중 누군가는 싸워야만 해. 지켜야 할 위대한 자유의 전통이 있어. 난 당파적인 사람이 아니란다.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을 뿐이야. 정당의 이름들은 아무 의미가 없어. 자유의 전통이 무엇보다 중요해.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이게 사라지게 내버려 둘 거야. 암, 그렇고말고. 사람들은 보다 더 평안한 삶을 위해서라면 자유를 팔아버릴 거야. 그게 바로 사람들이 자극을 받아야 하는 이유지, 자극을 받아야 한다고.” 이러게 말하면서, 여러분, 녀석은 포크를 빼 들어서 벽에 대고 두세 번 찔렀고 포크는 구부러졌지.

“그러면 나는 이 일로 무슨 득을 보나요? 지금의 상태가 치료가 되나요? 내가 다시는 속이 메스껍지 않고도 ‘합창’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오나요?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나요? 나한테는 어떤 일이 생기나요?“

여러분, 녀석은 거기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처럼 나를 바라보더군, 뭐 하여튼 그건 자유니 뭐니 그런 것들과 비교해서 별게 아니겠지. 내 말을 듣고 녀석은 마치 스스로를 위해 뭘 원한다는 게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듯 놀란 것처럼 보였지. 그런 다음 녀석이 이렇게 말하더군. “아, 내 말대로 너는 산 증인이다, 가엾은 아이. 아침을 다 먹고 내가 쓴 것을 보렴, 그 글은 ‘주간 뉴스‘에 네 이름으로 나갈 테니까, 이 불행한 희생양.“

그런데 여러분, 녀석의 글은 아주 길었고 눈물을 자아낼 정도였지. 그 글을 읽으면서 나는 자신이 무슨 고통을 받았고 정부가 나의 의지력을 어떻게 빼앗아버렸는지, 그리고 이렇게 썩어 빠지고 사악한 정부가 다시 들어서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달렸다고 이야기하는 이 불쌍한 녀석이 참 안됐다고 느꼈지. 물론 그 때 나는 이 끔찍한 수난을 당하는 녀석이 다름 아닌 이 여러분의 화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지. “아주 훌륭해요.“ 내가 칭찬했지. ”진짜 기똥차요. 참 잘 쓰셨네요, 선생님.”

189 - 190p


하지만 위 문단을 읽어보면 그 작가조차 알렉스 개인의 권리에는 크게 관심 없고 결국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현 정부의 범죄에 대한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구조를 보면 일단 타인의 권리를 마구 짓밟는 알렉스가 있고, 그런 알렉스를 통제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 국가가 있고, 자신의 아내가 알렉스 일당에 의해 죽음을 당한 피해자인 작가가 있다. 작가는 국가를 비판하지만 사실 작가에게 복수의 대상은 알렉스여야 한다. 하지만 복면을 쓰고 범죄를 저지른 알렉스를 한번에 알아보지 못하고 이후에 알렉스를 정책의 피해자로써 선전하기 위한 사람들에게 넘겨줌과 동시에 그 범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알렉스는 음악감상 취미가 있다. 클래식을 좋아하는데 교도소에서 폭력인지 치료인지 갱생요법을 겪고 나서 좋아하는 클래식을 들으면 토가 나올 것 같이 구역질이 나게 된다. 오토 스카델릭의 교향곡 3번 1악장을 듣고 빌고 싶어질 정도의 고통을 겪고, 죽으면 이 고통이 끝난다는 걸 우연히 느끼고 창밖으로 뛰어내린다. 그리고 치료를 받는다. 알렉스는 여전히 폭력적이고 파괴하려는 자신의 본성을 느낀다. 하지만 더이상 그런 생각을 해도, 클래식을 들어도 고통스럽지가 않은 원래의 상태가 되었다.


1부의 알렉스는 온갖 피해를 주고 일탈을 일삼고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이었고, 그에 죄책감 같은 건 느끼지 않는다. 2부에서도 그렇다. 자신의 선택으로 선을 택한 것이 아니라, 갱생 요법에 의해 선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다르게 보면 그렇게 강력 범죄를 저지르고 다녔으니 인과관계로 그건 알렉스가 더이상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을 수 없는 상태로 자기 자신을 만든 것이라고 생각된다. 3부에서는 다시 본성을 되찾은 알렉스가 나온다.


본성이 그렇게 야만적, 폭력적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그 사람을 바라보고 사회에서 받아들여야하는지 묻게 된다.

3부에서 알렉스는 웃기게도 여전히 또다른 무리를 만들어서 술집을 전전한다. 바뀌지 않을 것 같았는데 웬 아기 사진을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들키자 종이를 박박 찢고 무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어쩐지 기분이 내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을 빼고 어울리라고 이야기하고,여전히 저속한 말을 하면서 술집 밖으로 나간다.

듣는 음악도 심장을 울리는 엄청 큰 교향악에서 낭만적인 가곡으로 바뀌고,어쩐지 자신이 늙은이가 되어버린 기분이라고 이야기한다. 길거리를 걷다가 교도소에 가기 전 같이 무리를 이루고 다녔던 피트를 만나 이야기를 한다. 피트 옆에는 어떤 여자가 있었는데, 피트는 자신의 아내라고 소개한다. 3부에서 알렉스 나이가 나오는데 열 여덟 살이었다. 피트는 더이상 해롭게 노는 이들이 아니라 조촐하게 파티를 열고 포도주를 마시며 낱말 맞추기 놀이를 하는 무리가 되어있었다. 열 여덟이란 나이가 어린 나이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다른 예술가들이 그 나이 때 이룬 업적을 바라보며 자신은 무얼 해야할지 고민한다. 철이 든다는 것…


가게에서 나와 염병하게 어둡고 추운 겨울 거리를 걸어가면서 난 무슨 신문에 나오는 만화 같은 환영을 계속 보았지. 거기서는 여러분의 겸손한 화자인 알렉스가 일을 마친 후 뜨끈뜨끈한 저녁식사가 차려진 집으로 돌아오고, 어떤 계집애가 아주 사랑스럽게 반기며 인사를 하더군. 그러나 그게 누군지는 잘 보이지 않았어, 여러분, 도대체 누군지 생각을 할 수가 없었어.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확 드는 거야, 난롯불이 타오르고 따뜻한 저녁이 차려진 곳의 옆방으로 들어가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거라는. 이제는 확실해졌지, 신문에서 오려낸 사진이나 피트를 그렇게 만났던 일 등 이 모든 게 다 연결되어 있다고 말이야. 즉 그 집의 옆방에는 옹알거리는 내 아들이 누워 있었던 거야. 그래, 그래, 여러분, 내 아들이야. 그 때 난 몸속에 텅 빈 자리를 느꼈고 스스로도 놀랐어. 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된 거야, 형제 여러분. 철이 든다는 것이겠지.

그래, 그래, 바로 그거지. 청춘은 가 버려야만 해, 암 그렇지. 그러나 청춘이란 어떤 의미로는 짐승 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아니, 그건 딱히 짐승 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아니, 그건 딱히 짐승이라기보다는 길거리에서 파는 쬐끄만 인형과도 같은 거야. 양철과 스프링 장치로 만들어가지고 바깥에 태엽 감는 손잡이가 있어 태엽을 끼리릭 끼리릭 감았다 놓으면 걸어가는 그런 인형. 일직선으로 걸어가다가주변의 것들에 꽝꽝 부딪히지만,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청춘이라는 건 쬐끄만 기계 중의 하나와 같은 거야.

221 - 222p


작가의 이름은 2부 후반 쯤 나온다. 알렉산더. 또다른 알렉스였던 것이다. 범죄의 피해자도 알렉스, 범죄의 가해자도 알렉스… 그리고 작가 알렉스가 쓰고 있던 글의 제목은 1부 초반에 나온다. ‘시계태엽 오렌지.’


1부에서 나온 내용이 너무나 폭력적이고 자극적이었고, 그 주체가 알렉스여서 3부에 갑자기 철이 들어버린 알렉스가 적응이 안 됐다. 읽으면서도 지금 내가 맞게 읽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청춘..? 경악스러운 폭력을 일삼던 주인공이 솔직히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역겨웠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결국 성숙해진 인간이 사회의 질서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춘이라는 단어는 한자로 보면 푸를 청에, 봄 춘, 푸른 봄이다. 그래서 유독 나는 철이 들이 들어서 ‘청춘’ 타령을 하는 알렉스가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청춘이라는 해설을 보면 ‘십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시절.’, ‘왕성한 정열과 힘찬 기세와 기백으로 나아가는 상태를 비겨 이르는 말.’. 무언가 이해가 되는 지점이 있다. 청춘이라는 단어에 가진 긍정적이기만 한 편견어린 시선이 나에게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방황이라는 것에도 큰 격차가 있어서 그렇지…


이 작품을 그냥 읽기만 했을 땐 무슨 이야기인지 도무지 몰랐다. 뭐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하는 건가, 자유의지 없이 선한 선택을 종용하는 것이 옳은 건가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건가… 근데 뭐 비판적인 내용이 아니라 3부까지 보고 나니까 철 없을 적에 그 모든 청춘의 이야기도 성숙을 겪고 변화한다는 내용으로 받아들였다. 애초에 범죄에 대해 분노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현상을 보면서 그게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면서 읽게 되면 3부의 내용이 영 생뚱맞다고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청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한다고 성숙이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직장을 가지고, 가정을 꾸리고… 알렉스는 그렇게 됐다. 계기같은 건 안 나와 있다. 좀 당혹스러운 결말인데 그런가보다. 나중에 한 번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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