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er - 히사이시 조
해가 지날수록 여름의 무더위는 더해간다. 한낮 아스팔트 위를 걷다 보면 진득하게 녹아내려 바닥에 납작 엎드린 풍선껌이 될 것 같다. 앞으로의 여름은 계속 뜨거워지기만 한다고 한다. 오늘의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다. 믿기지 않지만, 믿어지게 될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인간은 적응해서 살아가겠지만 그럴수록 내가 알던 여름은 점점 잊혀 갈 것이다. 처음엔 감각에서부터 멀어져 가고, 소리와 풍경마저도 기억에서 사라져 갈 것이다.
*
여름은 나가서 뛰어놀 수 있는 날씨였다. 땀을 뻘뻘 흘리긴 하지만, 하교 후 공원에서 들려오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술래잡기를 하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콩벌레 시체를 밟지 않기 위해 까치발을 들고 다닌다. 희한하게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콩벌레 개체가 참 많았다. 몇몇 친구들은 콩벌레를 주워다가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려 콩벌레가 움츠러드는 모습을 관찰했다. 거미줄 구조 정글짐에 걸터앉아 학교 앞 문구점에서 산 콜라 슬러시를 먹었다. 긴 종이컵은 800원, 보통 종이컵은 500원. 보통 콜라맛과 포도맛이 있었다. 그렇게 앉아있으면 멀리서 가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렇게 친구와 나란히 앉아서 말없이 슬러시에 집중하다 보면 손바닥부터 혀끝, 머릿속까지 차가워진다.
가끔은 아파트 단지 놀이터 그네에 앉아서 인공적으로 바람을 만들어 쐬기도 했다. 철봉에 대롱 매달리다가 바닥에 낙하한 동그란 거스름 돈을 찾게 되는 운 좋은 날도 있다. 놀이터 모래는 모래사장의 흰모래보단 짙었고, 흙보다 옅었다. 바닷가 모래보다 부드러웠고, 밟으면 푹신했다. 발자국이 생기지 않고 발을 떼면 모래가 흘러내려 자연스러운 모래언덕을 만들었다. 어제 놀던 아이의 흔적, 오늘 놀던 아이의 흔적 모두 모여 아주 조그만 모래언덕이 조밀하게 만들어져 있다. 몽골의 고비사막, 이집트의 사하라 사막이 아주 작아진다면 놀이터의 모래사장일 것이다.
*
그러다가 지루해지면 피아노학원에 갔다. 오래된 벽지 냄새와 텁텁한 에어컨 냄새, 초등학생들의 땀냄새가 뒤섞여 있다. 그날 오후에 피구를 했다던지, 줄넘기를 하고 놀았다던지, 땅따먹기를 했다던지...
90cm도 안 될 것 같은 좁은 복도 양쪽에 피아노방 여섯 개가 줄지어 있다. 선생님이 들어가라는 방에 들어가서 체르니 100번을 10번, 하논 10번, 소나티네 10번씩 쳤다. 과일연습장의 사과가 반으로 잘리고, 포도송이가 반으로 잘리고, 바나나도 있었나? 체리도 있었나. 아무튼 연필로 슥슥 작대기를 그어 그 과일들을 자른다.
나는 소나티네가 제일 재미있어서 그건 다 연습했고, 대개 하논을 8번치고 2번은 서비스로 친 셈 쳤다.
*
학원을 마치면 대개 아버지가 날 데리러 왔다. 하지만 아버지가 날 데리러 오지 않는 날엔 내가 부모님 사무실로 걸어갔다. 학원에서 사무실까지는 완만하고 긴 언덕을 오르고 내리는 일을 포함하기 때문에 무성히 자란 가로수가 그늘을 드리워준대도 여름날엔 기피하고 싶은 여정이다.
파란색 콜렉트콜 전화부스에 동전을 넣고 긴급통화버튼을 누른다. 빨간색 긴급 표시는 전화를 걸면서도 '이게 그렇게 긴급한 용건인가..' 잠깐 고민하게 된다. 1,6,3,3... 누를 때마다 선명한 삑 소리가 난다. 연결신호음이 지나고, 달칵 전화받는 소리가 나면 나의 용건을 급하게 말한다.
"엄마, 나 친구 E 집에 가서 놀고 있을 테니까 거기로 데리러 와?"
사실 내 집은 친구 E 집보다 가까웠다. 하지만 학교가 끝나고 곧장 집에 가면 아무도 없어서 심심했다. 혼자 TV를 보거나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대개 흥미 없는 방송만 했다. 그래서 친구 E 집에 가서 같이 놀았다.
횡단보도의 흰색만 밟으면서, 분홍 보도블록만 밟으면서.. 그렇게 같이 규칙을 정하며 전진하는 게임을 하면서 친구 E 아파트 단지로 갔다. 아파트 공동현관 복도까지만 가도 훨씬 시원했다. 나는 아파트 공동현관과 지하실을 잇는 계단을 무서워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가장 가까운 공간이어서 온갖 상상력의 배경이 됐다. 저 지하실 아래에 유령이 있을지도 몰라, 모종의 이유로 살해당한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을지도 몰라... 계단의 끝은 어둠에 싸여 보이지 않았다. 무서우니까 혼자 저 끝까지 가볼 생각조차 안 했다.
어둠에 덮인 지하로 가는 계단을 빨리 지나쳐 엘리베이터를 탄다. 엘리베이터는 창문이 있다. 친구와 괴담을 나눴는데, 그 괴담 중에 하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를 한 뒤 현재 있는 층에서 1층 버튼을 누르면, 엘리베이터 창 너머로 사람 형체가 점점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다.'였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얼마나 빠르게 계단을 타고 내려와야 하고, 1개 층마다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미세한 조정을 해야 하는가... 논리는 없지만 상상으로 그려지는 이미지는 팔에 소름이 돋을 만큼 으스스했다. 그 괴담을 들은 이후로 친구네 아파트를 방문할 때는 꼭 아파트 1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달라고 부탁했다.
*
친구 E가 열쇠로 문을 열면 E네 거실 풍경이 보였다. 가끔 E의 어머니가 계실 때가 있었는데, E 어머니는 시원한 보리차를 한 컵 가득 따라주시곤 했다. 그러면 쭉 들이키고, E와 거실에 앉아서 책장에 꽂힌 만화책 - 그리스로마신화를 읽으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지루해지면 TV를 켜고 만화를 봤고, 그러다 출출해지면 E가 주방 하부장에 있는 코코볼 시리얼 혹은 오레오 시리얼을 꺼내와서 씹어먹었다. 그때 에어컨 바람이 켜져 있는지도 몰랐다. 온도가 적당히 시원해서, 춥지도 덥지도 않고 편안했다. 거실이 북향이어서 그랬나.
더위가 식으면 E와 함께 그 위층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친구 J네 집을 방문했다. E는 초인종을 누르고, 나는 현관문 아래에 있는 우유배달구멍을 신기해했다. 이 구멍으로 나쁜 사람이 침입하면 어떡해. 누가 쳐다보면 어떡해.. 이런 걱정 어린 상상과 함께.
조금 기다리면 J의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셨다.
"안녕하세요, J 지금 집에 있어요?"
우리보다 5살은 어린 J의 동생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신기하다는 듯이 나와 E를 쳐다봤고, J는 자기 방에서 천천히 나왔다. J의 동생은 어린이도 아닌 아기와 어린이 사이, 그 어딘가의 조그만 체구여서 참 귀여웠다.
"J랑 놀러 왔어요."
J네 집은 옥색이 많았다. 체리색 장롱에 옥빛 리놀륨 바닥. 내가 경험한 이제까지의 바닥과는 판이한 느낌의 바닥이었다. 색 때문인가 묘하게 더 시원한 느낌이었다.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우리는 같이 J가 좋아하는 한국드라마를 봤다. J네 집에는 무서운 게 딱 좋아 시리즈가 있어서 오후엔 재미있게 읽고 집에 돌아가는 저녁길에 혼자 공포와 맞서 싸워야 했다. 가끔은 스티커 코디북을 가지고 놀기도 했고, 어떤 날은 J가 새로운 불량식품을 가져와서 시식평을 내리기도 했다. J의 동생과 종이접기를 하고 놀기도 했고, 비눗방울이 있는데 나가서 불어보자고 하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한창 시간을 보내다 보면 우리 집에서 전화가 온다. 정확히는 E어머니께, 우리 엄마가 "S(나) 돌봐주셔서 감사해요, 고생 많으세요. S 지금 데리러 갈게요.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의 통화를 했던 것 같다. 그러면 E 어머니는 현관문을 열고 비상구 계단을 향해 "S야, 어머니 10분 뒤에 오신대. 1층으로 가봐~"라고 전달해 주셨다. 놀랍게도 J네 집 거실에서 놀고 있어도 그 소리는 잘 들렸다.
"E야, 내일 또 놀자. 어머니, 물 감사합니다 담에 또 놀러 올게요! 안녕히 계세요."
E집에 들러 E 어머니께 인사드리고 E와 함께 1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해 질 녘 붉은 하늘일 땐 날이 훨씬 선선해져 있다. 더운 바람인데 시원했다. 매미가 우는 소리도 조금은 사그라져있었다. 조금 더 늦게 부모님이 오는 날엔 귀뚜라미 소리, 풀벌레 소리가 더 많이 들렸다.
이렇게 잔뜩 친구들과 놀고 난 날에는 집으로 가는 길이 홀가분하다. 이후에 나는 조금 더 먼 동네로 이사를 갔고 집으로 가는 길은 더 멀어져서 아예 친구들 집에서 쉬고 놀다가 집에 가는 날들이 많아졌다. 좋은 날들이었다.
*
친구들과 노는 날이 전부인 건 아니었다. 부모님 사무실로 하교하는 날도 있었다.
사무실로 가는 방법은 2가지였다. 하나는 앞서 말했듯 완만하고 긴 언덕길을 올랐다가 내려가는 지름길이고, 다른 하나는 평평하지만 빙 에둘러가는, 도로의 차가 빠르게 달리는 시끄러운 길이다.
나는 첫 번째 길을 좋아했다. 정감 가는 주택이 언덕에 옹기종기 앉아있어서 여러 대문을 구경하는 게 재미있고 평화로웠다. 각 집마다 입구가 다르게 생겼는데, 파란 창살이 있는 집도 있고 장미덩굴이 무성한 담장이 특징인 집도 있었다. 담장을 따라 이름 모르는 여러 꽃들을 심어놓은 집도 있었고, 가끔 어떤 집 앞에는 그늘 내린 곳에 의자를 내놓고 부채질하는 할아버지가 앉아계시기도 했다. 목청 좋은 개가 인기척을 느끼고 집을 지키는 소리가 나기도 했고, 그 집을 지날 땐 빨리 뛰었다.
그렇게 여러 문 앞을 지나다 보면 이제 우리 집이 보인다. 엄마 아빠가 있는 곳이 다 우리 집이어서 부모님 사무실도 우리 집이었다. 우리 집 앞에는 엄청 큰 로즈메리 화분, 국화 화분이 놓여있었다. 아빠는 종종 로즈메리를 쓰다듬으며 손에 묻은 로즈메리 향을 맡았다.
이마에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사무실 문을 열면 문에 달린 맑은 종소리가 났다. 엄마는 에어컨 앞에서 바람 쐬는 나에게 비타오백 음료수를 갖다 주실 때도 있었고, 휴지를 이마를 닦아주시기도 했다. 땀을 엄청 많이 흘린 날에는 곧장 사무실에 딸린 작은 주방 구석에서 물을 받아 등목을 시켜주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엄청나게 시원해지고 나른해진다. 등에 있는 물기를 닦고 사무실에 붙어있는 작은 방에서 나는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숙제를 하기도 하고, 컴퓨터로 주니어네이버 게임을 하기도 하고, 동물농장 게임을 하기도 하고, 파니룸 게임을 하기도 하고...
가끔 아빠가 DVD를 빌리러 가자고 하면 따라가서 내가 보고 싶은 만화를 빌려오기도 했다. 가끔은 아빠가 서점에 데려가서 책을 사주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은 모험하는 내용의 책이었다. 이후에 과학책도 좋아하긴 했는데, 그 이전에는 미지의 세상을 모험하는 내용의 책들이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홍초 음료수를 마시거나 미숫가루를 마시면서 나만의 세상에 누워있었다.
*
두 번째 길은 조금은 번잡하고 시끄러운 길이었다. 차가 빵빵대고, 아스팔트의 열기가 더 뜨겁게 느껴지는, 아직은 어린 가로수가 널찍하게 줄 서 있는 시가지였다. 아파트 단지의 붉은색 벽돌 담장을 지나서 떡볶이 가게, 한의원, 이비인후과, 김밥천국, 안경매장, 스마트폰 통신매장, 은행, 빵집, 국밥집 등을 지나가야 했다. 도로의 차가 내뿜는 열기가 후끈했다. 바람마저도 더웠다.
*
하교하는 길에 죽은 새를 본 적 있다. 손에는 500원짜리 과일향 나는 부채를 들고 사무실에 가는 길이었다.
멀리서 봤을 때 어떤 물체가 납작하게 도로 위에 있다는 것을 알았고,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 물체는 입체였음을 알 수 있다. 털도 있고, 살도 있고, 뼈도 있는 생명이었단 걸 알았을 땐 충격받았다.
검은색 깃털을 가진, 내 발보다 큰 크기의 새였다. 그땐 까마귀였다고 생각하는데, 그 새는 뭐였을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납작해진 생명이었던 것. 내장이 튀어나오고 피 흘리는, 그 새는 차가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길에 가만히 서 있다가 정확히 바퀴에 밟혀 몸 전체가 납작해졌나. 대형 트럭이라도 지나간 걸까.
그때 나는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는데 그 새였던 것을 보고, 새였던 것을 알고 나서 화들짝 놀라서 그 옆을 빠르게 뛰어갔다. 묻어줘야 하는데, 묻어줘야 하는데... 그러면서 도망쳤다. 징그러워서? 무서워서?.. 만지고 싶지 않아서?.. 뭔가 미안해졌다. 그 새였던 건 신경도 안 쓸 텐데. 여름이라서 묻어주지 않으면 구더기가 꼬일 텐데..
한동안은 그 길을 지날 땐 내 발로 시선을 집중하고 다녔다. 그 흔적이 있나, 없나 확신하지 못해서 한참 그렇게 고개 돌리고 다녔었다.
*
초등학생 때 막 2G 폰 열풍이 불었고, 중학생 때 스마트폰이 인기였다. 2G 폰 이전에는 mp3가 있었다.
나에겐 하늘색 3GB 아이리버 mp3가 있었다. 아버지와 하이마트에 가서 샀다. 온전히 내가 소유하게 된 첫 전자물품은 파스텔 톤 mp3였고,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이 되었다. 집에 가는 길에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달을 쳐다봤다. 어디에 있어도 달은 계속 쫓아왔다. 특히 명절을 지내고 집에 가는 길엔 오래 그 시간을 가졌는데, 그 시간이 평화롭고 좋았다.
추석이 지나면 여름도 끝나간다는 말이었다.
추석이 지나면 더위도 한풀 꺾였다. 그때만 해도 이 더위의 기간이 끝나간다는 게 아쉬웠다. 6월은 조금씩 더워지는 시기, 7월은 매미가 온몸으로 진동하는 시기, 8월은 장마와 짧은 방학이 지나가는 시기였다. 그리고 9월 중순이면 바람이 시원해졌다.
*
나는 이 찌는 듯한 여름을 처음 겪는다. 내가 알던 여름은 조금 더 포용력 있고 그 계절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싱그러웠던 것 같다. 지난 2,3년 전부터 겪는 여름은 끝도 없이 화내는 것 같다. 6월부터 화내기 시작해서, 7월도 불쾌하고, 8월은 사람을 마르게 하는 것 같다. 9월도 역시 분노해 있고, 10월 중순까지도 덥다.
그때의 여름을 다시 느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여름은 정말 아름다웠다. 아마 감수성 여린 성장기의 어린이 눈으로 본 여름이어서 더 풍요로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손에 들고 있는 게 mp3 뿐이라서 더 풍부했나?
쓰고 보니까 새삼스레 다양하고 풍부한 유년기를 보낸 것 같다. 닳아 없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현재의 여름이 화가 나 있는 것 같다,라고 표현했는데 이것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리 나쁘지 않을 수 있을까? 앞으로 여름을 더 화나게 하지 않도록 인간들이 노력해도 우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지난 게 아닐까?
잔뜩 분노한 더위 안에서 나는 또 어떤 걸 추억하고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