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ya Harding(Eb major) - Sufjan Stevens
날씨가 확연히 달라졌다. 아침 7시면 천변에서 뛰는 재미가 있었는데 그것도 이젠 추위 때문에 각오를 해야 한다. 나는 추운 게 너무 싫다. 그래서 추워진 이번 주 내내 실내 체육시설에서 러닝머신을 탔다.
러닝머신의 단점은 정말 내가 그만큼 뛴 게 맞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계가 말해주는 정보는 다양한데 - 달린 거리, 시간, 소모칼로리 - 러닝워치가 말하는 정보와 좀 동떨어져있기 때문이다. 워치로는 4.8km를 달렸다고 하는데 러닝머신은 5.6km를 달렸다고 한다. 동시에 시작버튼을 눌러서 뛰었는데 차이가 난다. 체감상 4.5km 뛴 것 같다고 느끼는데, 도대체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워치? 러닝머신? 체감?
아무튼 워치에 보정값을 입력했다. 대충 5.2km 정도 달린 셈 쳤다. 야외러닝이 좋은 점은 대충 어디서 어디까지 가면 객관적인 거리감이 있다는 것.. 역체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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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할머니댁에 자주 가기 위해 새로 차 한 대를 샀다. 주문은 9개월 전에 했고, 이제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다. 평일에는 내가 타고 다녀도 된다고 하는데 어디 좋은 곳에나 다녀와야겠다.
청년도전지원사업에서 받은 아기어피치 쿠션을 엄마에게 드렸다. 어쩐지 쿠션을 받고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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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도시계획에서 왜 도심 공동화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그 대안을 이야기하곤 한다. 도시가 형성, 발전하면서 어떤 과정으로 마을 공동체가 사라지고 핵개인주의가 발전하게 되었는지… 도시 생활자들(특히 1인가구)이 느끼는 외로움, 끊어진 유대에 대해서.
가장 큰 이유는 직주근접이 불가능해져서라고 생각한다. 마을을 구성하고 마을 생태계가 건강하려면 주민들이 그곳에 살고, 그곳에서 일하고, 그곳을 가꾸면서 살아가는 게 꽤 전통적이고 효과적이다.
하지만 그게 어려워진 이유는 모두가 아시다시피 선호하는 일자리가 서울, 서울, 서울에 밀집되어 있고, 적어도 인프라가 풍부한 도심에서 살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히 돈으로 커트라인을 만들고 울타리를 만든다. 아무튼 서울의 생태계는 굉장히 밀집되어 있고, 그 외의 지방도시는 - 특히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각 지방도심지에서 떨어져 있을수록 - 한적하다.
직장과 주거가 코앞에 있어서 누가 그 가게의 주인이고, 그 집에 누가 살고, 새로운 주민이 하는 일은 무엇이고, 어떤 집에 가면 무엇을 살 수 있는지 등 정보교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한다면 이유 없는 경계심이 조금은 수그러들지 않을까 싶다.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을 했냐면 아무리 봐도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 서울 월세를 내면 아마 월급이 1/3, 혹은 1/4 이 사라지는 셈이니. 작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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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은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동네 장사. 왜 그렇게 이야기하냐면 주 고객들은 여전히 전화번호로 전화해서 일을 맡기거나 직접 방문해서 일을 맡기신다.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나이 대의 분들이 부모님께 명함이나 전단지, 의뢰서, 명세서, 메뉴판, 책자 등 디자인을 맡긴다.
생각해 보면 내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필요한 물품들, 서비스가 있으면 거의 다 핸드폰으로 해결가능할 것이다. 카카오맵이나 네이버지도로 음식점 후기를 찾아본다던지, 제미나이나 chatGPT에게 컴퓨터 에러를 바로잡는 방법이라던지, 과일을 먹고 싶으면 쿠팡으로 주문한다던지, 간식이 필요하면 배달의 민족으로 주문한다던지… 아마 부모님이 하시는 일도 아마추어티가 날 수는 있지만 AI나 미리캔버스, 혹은 직접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로 작업해서 인쇄업체에 출력을 맡기면 20대 대부분은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부모님에게 일을 맡기는 건 방법을 몰라도 30년 간 합리적인 가격에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네이버 리뷰이벤트를 작성하는 마케팅을 한다면 부모님 매출이 좀 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튼. 부모님은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 한 곳에서 계속 근속하셨던 분들이다. 저기 골목길 세탁소가 문을 닫아도, 맞은편 공간인테리어 사업을 하던 김 씨 부부가 딸에게 일을 물려줬어도, 옆집 피자가게의 주인이 과거 그 피자집을 인수, 인수의 과정을 거쳐 세 번째 주인이 되었어도, 또 다른 옆집에 미용실이 문을 닫고 재개발협의회 사무실이 들어왔어도.
나는 30년이라는 세월을 그 한 자리에서 보낸 부모님이 정말 존경스럽다. 어떻게 그 자리에서 그렇게?
솔직히 말하자면 난 어릴 때 잠깐 엄마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맨날 출근해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똑같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새‘인데, 정작 엄마는 새장 안에 갇힌 새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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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사무실과 우리 집의 거리는 직선거리로 2.3km 정도이다. 걸어서 40분, 자차로 8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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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에 가면 도심에는 4~5층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있고 1층에는 상가건물, 2층 이상부터는 주거건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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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직업을 물려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면, 나는 너무 감사한 기회지만 물려받고 싶지 않다.
그 이유는, 나도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근속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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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물려받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은 점은 있다.
부모님이 만들어 놓은 기반 - 두터운 고객층, 이미 필요한 자재가 구비되어 있음 - 위에서 닦아나가면 되기 때문에 훨씬 수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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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최근에 나의 눈부신 친구들을 읽어서 그런가, 내가 릴라처럼 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아, 물론 나는 그 모든 시리즈를 끝까지 읽진 못했다. 하지만 나는 대학에 가서 고등교육을 받은 그 친구를 부러워했다, 물론 릴라가 똑똑했었어도 말이다..
요즘 책을 읽는 것에 대해서도 인식이 바뀌었다. 책은 꼭 읽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 실재 삶에 다 녹아있기 때문에. 사랑을 배우고 싶다고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것보다 실제로 연애를 해보는 게 더 도움이 되는 것처럼.
그럼에도 나는 습관처럼 버스 안에서나 잠시 짬이 나면 책을 펼쳐서 단락을 읽는 습관이 있는데, 움베르토 에코라는 유명한 기호학자이자 소설가이자… (하여간 온갖 똑똑한 수식어를 붙이면 된다. ) 아무튼 그분이 한 말이 떠오른다. 인용하려고 다시 책을 펼쳤다.
내가 아이였을 때, 이웃에 사는 한 부인이 매년 성탄절 선물로 책을 한 권 주곤 했어요. 어느 날 그분이 내게 물었죠. ‘움베르토야, 넌 이 책 안에 있는 내용을 알려고 읽는 거니, 아님 그냥 읽는 게 좋아서 읽는 거니?’ 나는 내가 읽는 내용에 항상 큰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어요. 나는 그저 읽는 게 좋아서 닥치는 대로 읽고 있었지요. 그건 내 유년기에 깨달은 가장 큰 진실 중의 하나였답니다!
책의 우주, 움베르토 에코, 장클로드 카리에르, 임호경 옮김, 열린 책들, 306p
그야말로 활자 중독자스러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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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필로소퍼 vol.32 : “나는 연결되었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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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수학문제를 또 계속 풀고는 있는데 느끼는 점이 있다. 20분 이상 문제를 풀고 있으면 오히려 기분이 나빠지는 효과가 있다. 수험시절의 기억이 떠오른 걸까.. 빠르게 풀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서 생각 없이 손으로 풀게 되는 경우가 생겨난다. 그래서 요즘은 문제집에 있는 모든 단원의 문제 하나씩만 풀고 있다.
쓸데없는 행동일까? 모르겠다. 과거를 그리워하며 수험 가능성을 타진하는 행동일까? 모르겠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그런 말이 있다 하더라.
어떤 길을 가더라도 정해진 지도는 없고 네가 완성해야 하는 텅 빈 지도는 있다고. 또 책 이야기를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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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중세 배경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서문 페이지만 읽는데 30분이 걸렸다. 누가,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왜를 살펴가며 읽으니 그렇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 페이지 한 문단, 한 문장에서 제공하는 정보량이 꽉 차있어서 그렇다.
한 문장에서 제공하는 정보량이 꽉 차있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면 아래 두 문장을 살피면 된다.
1968년 8월 16일, 나는 발레라는 수도원장이 펴낸 한 권의 책을 손에 넣었다. 1842년 파리의 라 수르스 수도원 출판부가 펴낸, <마비용 수도사의 편집본을 바탕으로 불역(프랑스어로 번역)한 멜크 수도원 출신의 (베네딕트회 수도사) 아드송의 수기>였다.
- 장미의 이름 1권, 움베르토 에코, 이윤기 옮김, 열린 책들 발행, 13p
처음만 이렇게 더듬거리다가 정보가 충분히 쌓이면 속도가 붙어서 재미있을 것 같다. 배경은 중세 수도원이고 서문에서만 밝혀진 내용을 요약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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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수도원장이 펴낸, 마비용 수도사의 편집본을 바탕으로 불역 한 아드송의 수기를 대학노트에 ‘나’는 번역을 해뒀다. 거기에는 엄청난 이야기가 담겨있었기 때문에 지적 흥분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행하던 친구가 발레 수도원장의 책을 가지고 가버려서(이유는 경황없이 자연스럽게 헤어지던 와중에 가져간 것으로 추측.) ‘나’에게 남은 건 한 뭉치의 번역본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몇 달 뒤 그 책의 족보를 캐어보다가 생 트 주느비에브 도서관에서 <고문집성>이라는 책을 찾아냈다. 주느비에브 도서관에 소장된 <고문집성>은 르베크 출판사에서 1721년에 발행한 판본이고, 현재 내 손에 남아있는 대학노트에 적힌 번역본에 남아있는 참고 도서 목록에 적혀있는 <고문집성>은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회의 몽탈랑이 1723년에 발행한 판본으로 달랐다.
그러나, 중세학자에게 상의한 결과 ‘나’가 생트 주느비에브 도서관에서 본 <고문집성> 이외에는 다른 <고문집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발레 수도사라는 사람이 라 수르스 수도원 출판부에서 책을 낸 적이 없다는 것을 ’나‘의 친구인 아르네 라네슈네트 수도사에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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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위 내용이 2장의 내용을 요약한 정보인데, 참 미스터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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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망설이다 하루가 다 갔다>라는 샐리 M 윈스턴, 마틴 N 세이프가 쓴 책도 도움 되었다. 범불안장애에서 나타나는 걱정 가운데 ‘만약에‘로 시작되는 부분이 예기불안이라는 것인데, 위 책은 우리가 자꾸 회피하고 싶고, 머뭇거리게 되고, 즐거움을 망치게 되는 이런 예기불안의 작동방식을 ’ 사례‘를 들어 상세하게 알려준다.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불안을 다루는 기술을 익히는 방법이나 요령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자꾸만 망설이고, 알고 있음에도 그 일을 하지 못하는 두려움 - 불안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과정들-을 설명한다. 예기불안의 경우 사고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이 중요하기에 책의 2/3을 그 작동방식과 사례서술에 투자한 느낌이다.
아직 7,8,9,10장을 읽지 않았는데 그 부분은 ‘그래서, 어떻게?’를 알려줄 것 같다. 6장 - 완벽주의, 확실성에 대한 갈망, 후회에 대한 두려움 이 가장 필요한 내용이었다.
어쩌면 내가 책을 읽는 것도 예기불안을 다루는 방식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읽으면서 은근하게 느끼는 책의 요지는 경험하고 행동해서 자신감을 쌓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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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냥 살아있는 것 자체로 감사하다고 느꼈다. 뭐가 아니어도, 내가 스스로 별게 아니어도.
참 희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