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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의 무게.

Roy - Ambrose Akinmusire

by 이오십

연말이 다가온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주변에 내년 다이어리를 샀는지 묻게 된다. 아날로그 다이어리부터 디지털 다이어리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아이패드가 과거 노트북이 점유하던 역할을 갈아치우면서 아이패드로 작성할 수 있는 다이어리 포맷을 판매하는 시장도 생겼다.


나는 디지털 다이어리 파는 아니고, 강경 아날로그 다이어리파 이긴 하다. 종이에 볼펜 또는 연필로 사각사각 하루 있었던 일들을 써 내려가는 게 좋다. 화면에 글자를 적을 때와 종이에 글자를 적을 때의 차이는 책과 전자책 차이만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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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를 쓰는 방식에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누군가는 플래너로 미래 계획을 미리 적어두고, 누군가는 있었던 사실을 기록하는 일기장으로 사용한다. 여기서 나는 극히 후자이다.


계획을 세운다는 것에 대해서 몹시 회의적인 편이다. 그 말은 내 일상이 루틴적이고 계획적인 삶과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이게 좀 부끄러워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미래 없는 사람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왜 계획을 세우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1) 계획을 세운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2) 계획을 지키지 못했을 때 스스로 피드백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워서

이렇게 두 가지 이유이다. 다만 계획을 다이어리에 시간 별로 정리해두지 않는 것일 뿐, 머릿속에는 그날 해야 할 일이 들어있긴 하다. 그마저도 가장 중요하게 떠오르는 일을 산발적으로 처리하는 편이긴 하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효율적이지 않다. 그래서 요즘 플래너를 써야 한다고 느끼고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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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너무 멀어 보인다. 특히 시간을 더해, 더해, 더해 가야 하는 최종 장의 미래는 더 거대하고, 멀어 보이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요즘 글을 굉장히 미루고, 미뤄서 쓰고 있었는데 요즘 나를 보면서 ‘내가 도달하고 싶은 미래’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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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은 행운을 바랄 수 있는 것도 무언가 세상에 내놨을 때에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요즘 실감한다. 청년도전지원사업에 체험수기를 써서 냈는데 ‘글을 너무 잘 써줘서’ 그 수기를 사업단 책자에 써도 되겠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잘 쓴다’는 칭찬에 나는 기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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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기고하는 작가던, tv에 나오는 연예인이던, 유튜브에 나오는 유튜버건 가끔 혼자 실망하고 돌아서는 경우가 있다. 내가 상상하던 사람과 다를 때 멀게 느껴지는 경우다.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는데 그게 나의 상상과 다르다면 왠지 모르게 실망감이 든다. 그 사람이 잘못한 건 없지만, 일부러 감춘 것도 아니겠지만. 그래서인지 누군가 내게서 멀어지려 한다는 걸 느끼면 그냥 받아들인다.


내가 가장 실망하고 멀어지는 경우는 '내가 느낄 땐' 별거 아닌 일인데 '그 사람은' 특별한 일을 한 듯 호들갑을 떨 때.


친구와 수다 떨다가 본인(친구)은 구독하던 유튜버가 갑자기 인기가 많아지면 구독취소를 누르게 된다는 말을 꺼냈다. 왜 그런 것 같냐, 물어보니까 '원래 나만 알던', 약간 미숙하지만 알찬 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게 된 것 같아 그렇다고 한다. 연예인 브이로그도 안 보는데 그 이유는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으로 연관성이 떨어지고, 유료광고 때문에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요약하자면 이미지가 친근하지 않아 져서.


나도 연예인 브이로그를 잘 안 보고, 예전엔 자주 보던 나 혼자 산다를 지금은 아예 안 보는데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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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은 사회의 새로운 고급 신분증 같다. 그들이 젊은 날 얻은 재력과 성공, 인기, 스포트라이트.


손쉽게 데뷔시절부터 1위를 주구장창한 서사를 가진 그룹보다 서서히 빛을 발하며 느리지만 확실히 1위를 한 서사를 가진 그룹을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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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아이돌의 실력 논란에 대해서.

+) 대중은 독기에 왜 그렇게 열광하는가.


아이돌 그룹이 데뷔 후에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되는 것 자체로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나아가려면 그 누구도 까지 못할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실력 없이 얻은 자리면 금세 탄로 나기도 쉽고, 비웃음이나 밈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꼭 아이돌에게만 적용되는 말은 아니다. 어떤 산업이나 그렇긴 하다. 그러나 유독 아이돌 산업은 댓글이나 커뮤니티에서 피드백이 빠르게 이뤄지기 때문에 실력의 요구가 더 도드라져 보인다.


아무튼, 취향엔 안 맞을지언정 ’ 음정/박자가 이상한데?‘, ’ 춤이 디테일이 없는데?‘과 같은 기본실력에 대한 의심이 없게끔 해야 욕먹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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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데뷔하자마자 1위를 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룹이 '실력'이 확실한지 대중들이 점검하는 이유가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는지', '배 아프지만 (당신의 커리어 성공을) 인정해야 할 부분인지'를 응답받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


좋게 말해서 ‘대중들이 점검한다’라고 표현한 것이지, ‘지켜보고 평가한다’에 가깝다고 느낀다. 사실 아예 무관심한 사람들도 많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관심 가지고 지켜보는 사람들 마저도 ‘응원’이라기보다 ‘제대로 하는 거 맞아?’라는 식의 날카로운 평가를 한다는 게 아이돌 입장에서는 긴장되고 불편할 것 같다.


정말 망한 무대를 만들어버리면, 특히 그게 의도하지 않은, 온전한 실력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곧장 피드백이 온다.

‘우우우… 거기 있을만한 사람이 아닌데 왜 거기 있냐’., ‘걔보단 얘지.‘ …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시도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직접 끌어내리려는 과정에서는 비겁한 행동(루머, 악플,...)도 발생한다.

애초에 '그 사람에게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는지', '내가' 판단한다,라는 건 '갑 중의 갑'의 행동이다. 살면서 무료로 '갑'의 위치에 있을 수 있는 기회다. 여기서 정말 ‘갑질’을 하게 되면 악플러가 되는 것이다. 이런 공짜를 좋아하면 탈이 난다. 비난과 비판은 다르다.


혹자는 비난이 아니라 비판이라면 개인이 갖는 표현의 자유 아닌가?라고 말씀하실 것 같다. 하지만 비판도 한 명에게서 정중히 들을 때나 귀담아듣게 되지, 비판을 다수가 한 명에게 쏟아부으면 그건 다구리가 된다. 그래서 커뮤니티나 sns 같은 곳에서 댓글달기를 통해 한 사람에 대한 비판을 다 쏟아내는 행태도 잔혹한 것 같다. 아무리 온라인 세상이어도, 그게 홍보수단이 된대도, 다 다른 사람이 단 댓글이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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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에 안 맞으면 안 보고 안 들으면 되는 것이고, 실력이 부족하면 알아서 사라질 텐데… 생각하긴 한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 평가를 하게 되는 걸까 그 심리를 생각해 봤다.


우선 앞서 말했듯이, 밖에 나가면 나는 평가당하는 입장인데, 무대를 감상하는 관객 입장이 되어 내가 그들을 평가할 수 있는 ’ 역할 바꾸기‘가 가능해진다. 너무 슬픈 현실이다. 그냥 응원하고 좋아하기만 해도 시간이 부족한데 사랑스러운 구석이 다분한 사람을 두고서도 평가하고 까내릴 점을 찾는다. 왜냐하면 내가 평가를 당하기 때문에, 무대를 보며 즐거워하기만 하면 되는데 오히려 나 역시도 그들을 깐깐하게 바라보고 평가하는 자세를 적용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난 그들의 다음 앨범에도 참여할 자격이 없는 일개 방구석 관객 1일뿐인데.


두 번째로는 부러워서, 다. 멋진 외모, 부드러운 목소리, 쌓여가는 팬, 늘어나는 재력, 인맥, 여유로운 시간관리, 도와주는 사람들… 이런 모든 게 대부분 매체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화려한 삶의 모습을 질투하기 편리해졌다.

예를 들면 한 명 한 명 개인을 비교하긴 어려워서 아이돌 중에서도 탑 아이돌 혹은 수입 상위 10%가 가진 소득만 보고 부러워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되거나. 또 해외를 자주 나가는 것을 보고, 단순히 그것만으로도 질투할 수도 있다.

아무튼 부러워하고 질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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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되었냐면 최근에 아이돌 무대 영상을 보는데 노래의 가사와 콘셉트가 창법이나 스타일링과 전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한 적 있다. ‘전엔 되게 잘했는데 지금은 그냥 그렇네?’


댓글창을 열었는데 내 생각을 그대로 옮긴 듯한 댓글이 있었다. 조회 수가 많은 만큼 그 댓글에 달린 공감 수도 많았다. 댓글에는 그 외의 비판의 글이 다수였다. 약간 조롱하듯이 비난한 글도 있었다.

그 댓글창을 보고 내 안의 죄책감을 느꼈다. 나 역시도 속으로 그 댓글에 공감했기 때문에 마치 험담에 참여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그 아이돌그룹이 아직도 인기가 많구나, 생각됐다. 더 나아가서 굳이 댓글창은 보지 않아야지 싶다. 남을 평가해지는데 익숙해지는 건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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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함'에 대한 기준을 가져다 댄다면 '그 자리에 있는 게 부끄러운지', '당당한지'에 대해서 누구나 양심상 판단할 수 있다. 정당 함이라는 게 엄정하게 느껴지고,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 지점이 가장 매혹적이고 위험한 부분이다. '왜 그렇게 정당하길 요구하는데!' 싶을 수 있다. 내가 처한 사회가 나에게 '그 자리에 네가 있는 게 맞아?'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던지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에서 이따금씩 '나도 살면서 받는 질문인데, 왜 너는 엄살이야?'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그들이 얻는 막대한 수익도 그 질문에 한몫한다.


그래서 그렇게 실력 좋은 아이돌에 열광하고, 그런 독특한 구조에서 만들어진 특유의 '독기'라는 것에 열광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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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분 중 한 명은 포르셰 매장에서 일하는데, 고객을 보면서 비교적 돈이 없는 스스로의 처지를 불행해한다. 아는 사람 중 하나는 사회복지사로서 양로원에서 일하는데, 아직 건강을 가진 것만으로도 비교적 운이 좋다고 여긴다.

이 이야기를 친구가 해줬는데 인상 깊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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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욕망하는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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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 알아낸 나의 특성이 있다. 허영심 많은.

허영은 자기 분수에 넘치는 외관상의 영화(榮華) 또는, 필요 이상의 겉치레라고 한다. 확실히 나는 내 허영심을 안다. 내 주변엔 늘 물건이 많다. 책, 가방, 옷... 필요 이상으로 많다. 특히 책의 경우엔 읽지 않고 사 모은 책만 해도 지금껏 읽은 책의 500%는 될 것이다. 읽지 않을 책을 사는 건 아니고, 읽고 싶었는데 당장은 읽지 못해서 그렇다고 변명할 수 있다. 하지만 가방과 옷의 경우에는.... 아니다. 애초에 책도 그렇게 변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언젠가 입을 것이기에, 언젠가 사용할 것이기에 사모은다는 건 아주 보편적인 호더(hoarder)의 변명이다. 아무래도 호더와 허영심은 연결지점이 있다.


허영도 많고 그래서 질투도 곧잘 한다. 내가 느낀 최근 나의 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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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의 구축.

책 읽는 지적인 나의 모습의 구축...

파도에 떠밀려가는 모래성을 붙들듯이. 하지만 늘 손에 담긴 건 모래 알갱이뿐이다.

내 방에도 책이 많지만 내 머리에 담긴 건 별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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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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