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Day is christmas - Alec Duffy
> Reframe rejection as redirection.
가장 취약한 상태의 인간은 자신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믿는 인간이다. 누구나 당장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맞닥뜨릴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불가능한 것을 영원히 불가능한 것으로 해석하고 포기해 버리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다.
당장의 거절에 상처받고 좌절감에 허우적거리며 염세주의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앞으로 내 인생에서 무언가를 도전하는 것에 회피하게 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 사실은 할 수 있는 게 너무나 다양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는 - 사람에 가까워지게 된다. 이래서 회복탄력성, 아무리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고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는 오뚝이 정신이 각광받는 것 같다.
> 과거의 불편함을 개선해서 현재는 좀 편리해진 상황.
가임기의 여성들은 생리를 한다. 생리를 한다는 건 한 달 간격으로 팬티에 생리대 - 생리대를 잘 모르신다면 기저귀를 떠올리셔도 무방하다. - 를 붙여야 한다는 말이다. 개인마다 생리주기도 다르고, 생리 기간도 다르겠지만 아무튼, 최소 삼일은 서있어도, 앉아있어도, 누워있어도 자궁에서 만들어진 생리혈이 질을 통해 왈칵 쏟아져 나오는 불쾌한 경험을 해야 한다.
나는 생리통이 없는 편이고, 생리 기간도 3~4일로 짧은 편이다. 그럼에도 생리를 할 때 생기는 몸의 증상이 있다.
1. 몸이 붓는다. 아랫배가 집게손가락으로 잡힐 만큼 튀어나오고, 가슴이나 다리도 붓는다.
2. 약간의 근육통도 있고, 전날 운동회에서 계주선수로 활약한 다음날 마냥 몸이 피로하다.
3. 느려진다. 빠르게 달리고 싶어도 평소 운동신경의 50% 정도가 최대출력이 된다.
4. 관절이 늘어난? 풀려있는 느낌이 있다.
5. 감정변화가 다이내믹하다. 평소엔 그냥 지나갈 일에도 화내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예민해진다. 충동적인 행동도 나온다.
생리를 할 때 가장 귀찮은 건 자다가 피가 새어 나와서 이불에 묻었을 때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이불을 둘러메고 주물럭거리며 핏물을 빼야 한다. 세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오염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가능한 한 빨리 세탁하는 것, 그리고 피는 따뜻한 물보다 차가운 물로 세탁해야 잘 빠진다. 안 그래도 손가락 관절이 빳빳하고 배는 욱신거리는데 찬물로 이불을 조물거리고 있자면 마음 깊은 곳에서 빡침이 올라온다. 아침부터 화나는 건 생리 때 흔히 있는 일이다.
*
현대의 여성이 생리하듯 과거의 여성도 생리했을 것이다. 그나마 현대에 와서는 생리의 뒤처리를 간편하게 만들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팬티에 생리대를 붙이고 서너 시간마다 교체를 해주면 그나마 깔끔하게, 매번 손빨래를 할 필요가 없다.
나의 어머니가 중학생 때는 면으로 된 천 생리대를 차고, 고무로 밑이 마감되어 있는 빨간 팬티(애초에 빨간색으로 나온 팬티라고 한다)를 입고 다녔어야 한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궁금한 점이 하루 일과 중 학교에서 생리대를 교체해야 할 때가 있을 텐데, 그때 피 묻은 생리대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물어봤다. 학교에서 손빨래를 하는 건가? 싶어서. 그런데 엄마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떻게 처리하고 다니긴 했다.라고 매듭지었다.
> 효율적인 기록의 방식을 찾아서 - 뇌를 백업해 두기?
요즘 기록물을 저장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무언가 읽거나, 보거나, 듣거나 한 것에 영향을 받는 것을 간단히 기록해 나가는 것을 하고 싶은데 도구도 다양하니 선택하면 될 일인 것 같다.
즉흥적인 아이디어 > 아날로그 노트 / 휴대폰 메모
정리된 자기 서사 > 브런치
일정/할 일 > 노션
지식, 정보, 통찰 및 학습 내용 > 아날로그 노트 / 아이패드 굿노트 어플
현재는 이 정도로 활용하고 있는데 노션이나 아이패드의 굿노트 어플은 잘 사용하지 않게 된다. 그 이유는 내 루틴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도구가 아니라서, 그리고 아날로그 노트보다 사용성이 떨어진다. 화면을 보는 게 피로하기도 하고, 페이지를 물리적으로 넘기며 확인하는 것에 익숙해서(=도구를 잘 활용하지 못해서) 그렇다.
과거에 어떤 시점에 얻었던 정보를 다시금 떠올릴 필요성을 느낄 때가 있는데(글을 쓸 때 인용문구를 떠올리고 출처가 필요해진다던지, 정보와 정보를 연결할 때 문맥을 파악하기 위해 더 디테일한 내용이 필요해질 때) 그것을 위해서 라도 도구를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둘 필요가 있겠다.
*
어떻게 보면 하이퍼링크랑 유사한 구조의 기록을 원하고 있다. 그런데 내 뇌에 있는 구조와 시간성이 담겨있지 않기 때문에 아날로그 방식의 메모를 한참 뒤지거나 디지털 색인을 찾아낼 땐 피로감을 느끼게 되고 기존의 기록물에 의존하기보단 AI나 검색창으로 정보를 재확인하게 되기 마련이다.
Zettelkasten 제텔카스텐은 독일어로 '노트상자'를 뜻하는데, 단일 아이디어를 담은 짧은 메모를 서로 연결하여 지식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메모법이다. 이런 방식의 메모를 원하고, 결국엔 키워드가 마인드맵 형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단순하게 표현된 구조가 만들어져 있길 원한다.
참고로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을 읽어보면 정보를 어떻게 구성해 나가는지 그분의 방법을 알 수 있다.
*
요즘 퍼플렉시티를 통해서 내가 궁금한 점을 많이 물어보고 있다. 확실히 각 AI마다 대답해 주는 방식이 많이 다르긴 하다. 이전엔 Chat GPT를 많이 썼었는데 내 성향에 맞춰서 이야기를 지어낼 때가 많아서 정보에 대해 물을 땐 출처도 함께 표시해 주는 퍼플렉시티를 그나마 신뢰하게 된다.
아무튼, 퍼플렉시티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쓸모 있다고 느끼는 정보를 간단히 요약해 메모해두려고 하는데 위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탬플릿을 만들어볼까 싶기도 하다. 물론 AI에게 방금 알려준 정보를 요약해 달라고 하면 편리하긴 하겠는데, 내가 직접 요약을 생성하는 과정이 더 나은 것 같다. 간단히, 핵심만 요약한다면.
결국은 다양한 정보를 읽어내고 연결하는 과정이 중요한데 요약이 너무나 장황해지거나 베끼기에 급급해진다면 시간은 시간대로 걸리고 수단이 목적이 되기 십상이다.
> 패션에 대해서.
요즘 내 스마트폰 쇼핑어플은 온통 블랙프라이데이로 통 큰 할인을 제공한다고 광고가 한창이다.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나는 옷을 차려입는 행위를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이런 할인행사가 있을 때 눈 여겨보던 옷을 두어 벌 마련하곤 한다. 요즘 옷 값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이런 할인 행사가 아니면 터무니없도록 비싸게 여겨진다. 소위 '시즌이 지난 옷', 그러니까 유행에서 멀어져 가는 옷에 대해서도 관대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 어차피 유행은 돌고 도는 것. - 나에게 잘 어울리고 품질이 괜찮은, 가성비 훌륭한 옷이라면 구매한다.
*
나는 인터넷으로 옷을 사는 데에 실패한 적이 적다. 그만큼 인터넷 쇼핑을 많이 해봤다는 뜻인데, 대충 상세페이지만 읽어봐도 그 옷의 만듦새가 괜찮을지 아닐지가 대충 감이 온다. 누워서 쇼핑을 할 수 있다는 편리성 때문에 종종 쇼핑몰 페이지를 스크롤하곤 하는데, 내 지갑사정에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구경만 해야지, 하고 들어갔다가 '이건 꼭 사야 돼.' 하면서 꼭 하나씩 구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뭔가 외로움을 느낄 때, 혹은 보상심리 때문에 샀던 것 같다. 그리고 후회했다. 맘에 들긴 하지만 꼭 필요한 소비는 아니어서, 충동소비에 돈을 함부로 사용했다는 죄책감이 잔여물처럼 남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후드집업을 좋아했기 때문에 대학생이 되어서 하나둘씩 모은 후드집업이 지금 생각나는 것만 해도 여섯 벌이다. 사람이 하루에 입을 수 있는 옷의 양이 정해져 있고, 솔직히 그렇게까지 필요한 옷은 아니었다고 반성한다.
왜 그렇게 샀는지 생각해 보면, 나는 옷을 살 때 '나의 멋진 미래'를 상상하면서 옷을 구입했다.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할 때 입고 갈 외투, 도서관에 갈 때 편하게 입을 바지, 바닷가에서 추울 때 걸칠 카디건, 재킷과 함께하면 어울릴 쁘띠 목도리,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할 때 입을 블라우스, 전문적이고 지적으로 보이게 할 파란색 셔츠.... 그 옷을 입으면 내가 조금 더 멋져 보일 것 같았다. 추레해 보이지 않고, 세련되어 보이고 싶어서.
옷을 단정하게 입는 건 생활태도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서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스타일'에 대해 욕심을 내기 시작하고, '브랜드'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돈을 모으기 어렵다. 왜냐하면 겨울 옷의 경우, 옷 하나에 5만 원 이상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쇼핑 어플에서 각종 브랜드 페이지의 룩북(새로운 시즌에 맞춰 내는 패션제안 이미지)을 살펴보면 정말 조화롭고, 색도 다양하고, 따뜻해 보이고, 완전해 보인다. 물론 그런 옷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는 한 브랜드에서 모든 옷을 사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정작 내가 가진 옷들과 섞어 입으면 룩북에서 본 그 느낌이 나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유행도 변하고,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옷 스타일도 변화하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옷을 사는 건 낭비다. 당시에 유행하는 특정 색깔, 특정한 핏의 옷들 중에서도 가장 나에게 어울리고, 최대한 기본에 가까운 옷을 사면 그나마 오래 입을 수 있게 된다.
*
올해에는 옷을 열 한벌 샀다.
반팔 티셔츠 3벌,
트레이닝 윈드 브레이커 1벌,
패션용 바람막이 1벌,
패딩점퍼 1벌,
겨울용 블레이저 1벌,
플리스 조끼 1벌,
겨울용 바지 1벌,
청바지 2벌(회색, 청색)
많이 샀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의류에만 70만 원 정도 쓴 것이다. zara, 29cm, 무신사에서 구입한 옷이다.
*
생각해 보면 새 옷을 입을 때 새롭게 변한 나의 모습을 기대하고 거울을 보게 된다. 기대감, 설렘. 하지만 정작 나는 변한 게 없고 그냥 걸친 옷만 계속 바뀔 뿐이다. 나 역시도 조금씩 변화하는데 내가 과거에 비해 긍정적으로 변화했는지, 좀 별로인 상태가 됐는지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사실 이마저도 착각일지도 모른다. 변한 건 하나 없고 단지 나를 보는 내 시선만 바뀐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얼굴의 형태만 보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지위', '명성', '재력', 등 덧붙여진 것들까지 보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볼 때도 그런 효과가 나타나는데 스스로를 볼 때 그러지 않길 바라는 건 쉽지 않다.
*
어떻게 보면 자꾸만 새 옷을 사서 나에게 입히는 건 얕은 속임수였던 것 같다. "난 아직 (이 옷을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살만한데?", "난 앞으로 잘 될 수도 있는 사람인데?", "이 정도 스타일을 입어볼 수 있는 사람인데?", "옷도 입어봐야 제대로 입을 줄 알지"... 적당히 본인을 속여주는 것도 필요할 때는 있지만 과해지면 옷장만 터져나간다. 옷이 옷장에 쌓여가기 시작하면 관리하는 것도 일이 된다. 내가 중세시대 귀족이라 하인이 있어서 내 옷장을 관리해 주면 상관없겠지만, 나는 스스로 옷을 정리해야 하는 현대 소시민이기 때문에 알아서 옷을 정리해야 한다. 옷이 많아지면 나는 점점 옷의 하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
본인이 잘 어울리는 옷의 디자인을 알고 있다면 가장 기본적인 디자인의 깨끗한 옷을 '적당히' 가지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적당히,라는 게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서운한 지점이 될 수도 있다. 관리하긴 어려운데 더 다양하게 입고 싶은 욕심, 그 욕심을 누군가는 채우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다 그렇게 욕심껏 사는 것은 아니며, 내가 가질 수 있는 적당함이라는 것조차 누군가에게는 넘칠만한 것임을 기억하고 살아야겠다.
원래 사람 욕심에는 끝이 없다. 산업이라는 게 물건을 팔아야 하는 것이고, 대중들에게 욕망을 주입시키고,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소비를 유도한다. 매력적으로 보이게 사진을 찍고, 어필하고, 이런 이미지를 너도 가지고 싶지 않느냐,라고 유혹한다. 누군가는 내가 내는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정말 필요한 것을 사고, 거울 속 내가 괜찮은지 감정을 돌아보는 게 필요하다.
*
이번에 나는 또 블랙프라이데이라는 유혹에 빠져서 겨울용 블레이저, 플리스 조끼, 겨울용 바지를 샀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됐다.
8월에 시즌오프로 패딩점퍼를 샀던 이후로 3개월 만의 쇼핑이다. 물건을 구매하고 택배가 오기까지 기다리는 설렘은 확실하다. 하지만 솔직히, 겨울용 블레이저 빼면 살 필요가 없는 옷들이긴 했다. 난 이번에도 따뜻하고 세련되게 겨울을 지내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충동구매를 해버렸다.
가지고 있는 옷을 잘 조합해서 깨끗하고 단정하게 잘 입는 습관을 새롭게 들이고 싶다. 물건을 살 때도 더 신중하게 고민하고 구입하는 습관 말이다. 우리 집안사람들 중에서 유독 나는 물건을 험하게 다루고 쉽게 바꾸는 것 같다.
*
생각해 보면 겉으로 보이는 옷차림은 자주 바꾸는데 속옷 교체주기는 긴 편이다. 해질 때까지 입고 버리기 때문에 완전히 상반된 위치에 있다고 본다. 차라리 피부에 가장 먼저 닿는 속옷을 신경 쓰는 게 더 낫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된다.